좀 거칠게 표현하면 예전 직원들은 당나귀 같다. 당근과 채찍만 있으면 움직이는 존재로 인식됐다. 요즘 직원들은 다르다. 당근과 채찍으론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직도 변하고 리더도 변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직원이 변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뿔났다. 더 이상 리더를 믿지 않는다. 승진도 싫다 한다. 그냥 내버려 두라 한다. 일만 하고 싶어 한다.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대신 간섭받기 싫어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건 더 싫어한다. 직원들이 너무 이기적인 걸까? 그렇다면 그런 이기적인 직원을 왜 뽑은 걸까? 잘못 뽑았다면 뽑은 사람이 잘못한 것이다. 만약 뽑기는 잘했는데 어느 순간 변한 것이라면 조직에게도 책임은 있다. 그들의 리더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예전에 당근과 채찍을 잘 활용하면 노련한 리더라고 인정받았다. 그 시절을 경험한 지금의 리더들은 옛날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젠 리더가 변하지 않으면 리더십은 더 이상 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 잘못하면 리더가 오히려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그것도 치명적인 함정 말이다.
리더십을 회복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리더가 변하는 것이다. 리더만 변하면 많은 걱정거리는 해결된다. 리더가 조금만 포기하면 조직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리더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 조직에 대한 ‘긴장감(Tension) 조성’의 함정이다. 긴장감은 조직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종종 조직 내부의 사고는 직원들의 긴장감이 떨어져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직원들의 긴장감을 적절히 유지하는 리더의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런데 리더가 긴장감을 지나치게 조성하면 직원들은 경직되고 조직 분위기는 살벌해지기 쉽다. 리더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의 감정표현에 직원들은 민감해진다. 조직의 침체된 분위기는 언젠가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 2000년 초 추락을 거듭하던 일본의 닛산 Nissan 자동차는 르노 자동차에서 새로 부임한 카를로스 곤이라는 CEO의 리더십으로 회생하게 된다. 적자에 허덕이던 닛산은 2005년까지 눈부신 흑자를 기록하며 또 하나의 성공사례로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2006년에 이르러 닛산의 실적이 다시 곤두박질쳤고 조직은 얼어붙었다.
카를로스 곤 회장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조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았다. 문제는 ‘공포 경영’에 있었다. 곤 회장이 취임한 후 구원투수로 영입된 경영자들은 구시대적 경영방식을 고수했다. 경영개선을 위해 허리띠만 바짝 졸라맸다. 고통스러운 원가절감, 강도 높은 구조조정, 부담스러운 책임감 등으로 직원들을 압박했다. 직원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했고 결국 얼마 못가 그 상처가 곪아 터지고 말았다.
이전까지 곤 회장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직원들의 침묵을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직원들의 자발적 동참으로 이해했다. 닛산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한 곤 회장은 ‘공포 경영 중단’을 선언했다. 더 이상 직원들에게 긴장감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곤 회장은 강압적인 긴장감보단 코칭을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닛산의 성공한 CEO로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긴장감은 단기적으론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지나치면 직원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고통스러워하는 직원들의 불안감이 종국에는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결국 일은 직원들이 한다. 때문에 리더의 눈치를 살피는 데 집중하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도와주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야 리더 자신도 살아남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리더가 지닌 ‘독선(獨善)’의 함정이다. 리더의 강인함과 결단력은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직원들도 힘 있고 실력 있는 리더를 믿고 따르기 마련이다. 본인들을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리더가 자신의 강인함과 결단력을 조직 외부가 아닌 내부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리더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간섭하고 고집을 피우는 리더 앞에서 용감하게 나설 직원은 없다. 리더의 간섭으로 일이 다행히 잘되면 좋겠지만 일이 잘못되거나 행여 그 책임이 직원들에게 전가된다면 리더에 대한 신뢰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더 이상 누구도 나서지 않는 건 물론, 직원들 모두가 방관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걸까? 그건 바로 그동안 리더가 너무 잘해왔기 때문이다. 성공경험이 많을수록 까딱하면 ‘나 아니면 안된다’는 자만을 가질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를 부추기는 측근들이 존재한다면 그 수준은 가히 정신병에 가까워진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본인의 뜻을 거스르는 직원이 독선적인 리더의 눈에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지난 1984년부터 2005년까지 디즈니를 이끌었던 아이스너 회장은 디즈니 파크 왕국을 세우고 ABC와 미라맥스 인수를 하는 등 재임 기간 동안 디즈니를 18배 성장시킨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취감이 그를 독선으로 이끌었다. 2000년 초에 많은 임원들을 이유 없이 해고하고, 픽사나 미라맥스와도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다. 사방에 적들이 가득했다. 결국 ‘라이온 킹’을 성공시켰던 카젠버그 사장도 해고했다. 자신의 권위에 위협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억울하게 디즈니에서 쫓겨난 카젠버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창업을 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세운 회사가 바로 ‘슈렉’시리즈와 ‘쿵푸 팬더’를 히트시킨 드림웍스였다. 디즈니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을 아이스너 본인이 만든 꼴이었다. 아이스너 회장은 결국 디즈니 일가와 법정 다툼까지 벌인 후 임기를 1년 남겨둔 시점에서 디즈니를 떠나게 된다. 결국 그의 독선은 20년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불행으로 이끈 셈이었다.
성공경험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추억이고 자신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자기 과신은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법이다. 성공한 리더가 실패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스스로 무너지는 사례가 가장 많다. 여기에 직원들의 침묵까지 합해지면 독선적인 리더의 운명은 더욱 빨리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사람을 잃고 성공한 리더의 사례는 없다. 리더의 가치는 직원들이 먼저 알고 판단한다. 그들은 자신의 리더를 관찰하며 자신의 미래를 점친다. 자신들의 리더를 따라야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직원들은 현장에 가장 가깝게 있기 때문에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잘 안다. 때문에 리더의 판단과 행동을 정확하게 판단한다. 바로 이점이 직원의 생각을 읽는 리더가 세상을 읽는 리더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이다.
신제구 교수는…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상무이사) 겸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주요 기업 등에서 리더십, 팀워크, 조직관리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한국리더십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크레듀 HR연구소장, KB국민은행 연수원 HRD컨설팅 팀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