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푸틴의 역설

COLD WAR ON BUSINESS:RUSSIA<BR>THE PUTIN PARADOX

서방세계가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제재하면 할수록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모스크바를 방문해 상황을 살펴보았지만, 그가 미국 기업들이 사업하기 쉽도록 양보할 것이란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By VIVIENNE WALT


러시아 국적기 아에로플로트 Aeroflot를 타고 러시아로 비행하면 약간의 향수를 느낄 것이다. 승무원들은 소련을 연상케하는 붉은 색 복장을 하고 있다. 재킷과 모자에는 지난 100년 동안 철권(Iron Fist)으로 구소련을 통치했던 공산당의 상징물인 망치와 낫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항공기의 복고풍 브랜드에 속아선 안 된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에선 구 소련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고속도로를 따라 세워진 수십 개의 대형 광고판은 공산당 선전구호가 아니라 현실적인 꿈을 1억 4,300만 러시아인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멋진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럽 고급 승용차,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이 있다. 환영한다! 당신은 공산주의가 붕괴된 지 23년이 지난 러시아에 착륙했다. 서방세계와 다시 한번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강대국에 발을 디딘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미국 및 유럽의 지도자들이 핵무기 버튼에 손을 올릴 정도로 첨예한 대립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두 진영을 갈라놓은 증오심은 실제로 피부로 와 닿는다. 이런 적대감은 수십억 달러의 거래와 향후 몇 년 동안의 기업 관계를 크게 악화시킬 것이다. 석유 생산업체부터 투자은행까지 수없이 많은 미국 기업들의 이익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올해 커지고 있는 긴장감으로 암담한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하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이후 공격과 반격이 계속해서 뒤따랐다. 미국의 러시아 관료에 대한 제재조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자 지원, 러시아에 대한 더 많은 제재조치, 그리고 러시아의 반격 등이 잇달아 일어났다. 러시아는 미국, 유럽연합, 노르웨이, 호주, 캐나다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과일, 채소, 생선, 육류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 밖에도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말레이시아 국적 항공기가 격추된 사건이 있었다.

푸틴이 제공한 로켓을 사용한 반군이 저지른 명백한 실수였다. 이 사건으로 298명이 사망했고 러시아에 대한 또 한 차례 경제제재 조치가 내려졌다. 일부 러시아 국영 기업과 은행에 대한 여신이 제한되면서, 결과적으로 러시아 국영 기업 로스네프트 Rosneft와 서방 기업 엑손 모빌 Exxon Mobil의 북극 탐사 같은 다수의 거래가 중단됐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러시아 국민들은 이번 갈등이 소련 붕괴 이후 누렸던 안락한 삶에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올지 걱정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의 30%를 수입하는 유럽을 어렵게 이번 제재조치에 동참시켰기 때문에, 러시아는 강경책을 외치면서도 서방세계 지도자들이 조용히 제재조치를 완화할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많은 러시아 국민들이 믿고 있듯이, 미국과 유럽 28개국 사이의 견해 차이로 제재조치가 지속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러시아인들의 생각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매우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또 다른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4,650억 달러의 외환과 금을 가진 푸틴이 앞으로 수년간 제재조치를 무시하고, 서방세계에 대항한 리더로 더욱 강력하게 부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의 지지도는 80%를 상회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정치 컨설턴트 스타니슬라프 벨코프스키 Stanislav Belkovsky는 “푸틴은 미국과 유럽연합 어느 측도 유럽에서 전쟁(Hot War)을 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푸틴은 갈등이 두렵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도 결국 푸틴이 승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푸틴은 그동안 서방세계 기업들에 대한 압박을 계속 강화해 왔다. 지난 여름 러시아 내 12곳의 맥도날드 매장에 들이닥친 식품위생 조사관들은 사소한 식품 위반 사유로 3개 매장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번 폐쇄 명령에는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위치한 대표적인 맥도날드 매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곳은 1990년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러시아에 세운 미국 최초의 패스트푸드 매장으로 수많은 인파가 몰린 명소였다.

지난 9월 말에는 러시아 의회가 외국자본이 소유할 수 있는 방송 매체의 최대 지분을 20%로 제한하는 표결을 단행했다. 러시아 TV 채널을 보유한 디즈니 Disney 같은 미국 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또 민간 소유의 러시아 경제 신문 베도모스티 Vedomosti를 강제 매각하도록 하는 조치였다. 현재 뉴스콥 News Corp.의 다우존스 Dow Jones와 피어슨 Pearson이 이 신문사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며칠 후에는 푸틴과 하산 로하니 Hassan Rouhani 이란 대통령이 더 이상 양국간 교역에서 달러 결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음 날 러시아 관료들은 ‘미래지도자 교환 프로그램(Future Leaders Exchange Program)’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러시아 10대들이 상대방 국가에서 1년간 체류하는 프로그램이다. 러시아 정부는 한 러시아 게이 학생이 미국에 망명 신청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 결정은 미국 정부와의 또 다른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로 비쳤다. 공산주의가 붕괴될 때 일곱 살이었던 필자의 통역사는 그 소식을 듣자 실망감의 표시로 자신의 주먹을 내리치기도 했다. 그녀는 “내 아들이 그 교환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가서 영어 공부를 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건 잘못된 결정!”이라며 울먹였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글로벌 라이프 스타일에 익숙한 모스크바 젊은이들은 실제로 서방세계와의 단절 가능성 때문에 힘겨워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38개 스타벅스 매장에는 아이패드로 검색을 즐기는 도시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구소련 스타일의 고립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지만 나이든 러시아 국민들은 현재의 위기 속에서 과거 고립의 메아리를 듣고 있다. 실제 냉전 시대인 1980년대 KGB 요원이었고, 현재는 은행과 미디어 재벌인 알렉산더 레베데프 Alexander Lebedev(영국 인디펜던트 Independent와 이브닝 스탠다드 Evening Standard 신문사의 대주주이다)는 “우리가 신냉전 시대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다소 어색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스크바 고층 건물들의 현란한 밤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최고층 고급 사무실에서 앉아 “푸틴이 경제 압박 때문에 자신의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의 1년간 계속된 갈등과 제재조치의 영향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IMF는 수년간 높은 성장을 누렸던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 러시아 경제가 연 0.5%의 성장률에 그치며 내년에는 경기 침체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루블화도 문제다. 지난 10월 1달러당 40루블을 기록해 1년 전 대비 20%나 폭락했다. 환율이 급락하면서 러시아 국민들이 해외로 돈을 빼돌리고 있어 올해 1,200억 달러가 러시아를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서방세계 기업들의 피해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산 치즈, 스페인산 햄, 그리고 다른 먹거리들이 슈퍼마켓 선반에서 사라졌고, 터키산이나 벨라루시안산으로 위장돼 더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푸시킨 광장 근처에 있는 미국 스타일의 시카고 프라임 Chicago Prime 스테이크 레스토랑은 더 이상 가재를 판매하지 않는다.

미국 기업들도 양국의 대립에 따른 여파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난 9월 말 포드 Ford는 올해 3억 달러 가치의 러시아 사업을 잃게 될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기업들이 신규 법에 대처하려고 허둥대는 동안, 수백 건의 거래가 동결되고 있다. 러시아 태생으로 모스크바에서 투자 조언가로 활동하는 조지 코건 George Kogan은 많은 기업 공개(IPO)를 포함해 수년간 “멋진” 거래들이 말라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헤지 펀드 모두가 ‘러시아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며 “모스크바에서도 직장과 계약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서방세계 사람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알렉스 로드지안코 Alexis Rodzianko 러시아 미상공회의소(American Chamber of Commerce) 의장은 “미국 투자회사들이 상황을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스크바에서 영업하는 대부분 미국 대기업들이 양국의 민감한 관계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포춘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농기구 제조업체 디어 Deere의 최고경영자 새뮤얼 앨런 Samuel Allen은 드문 경우다. 러시아 출장을 마치고 미국에 막 돌아온 그는 “제재조치가 우리 기업 활동에 분명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일부 고객들이 자금을 지원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업무 진행도 상당히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앨런은 푸틴의 지지도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모스크바 사무실에 300명의 직원이 있다. 젊은이들을 포함해 러시아인의 80%가 푸틴이 옳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고학력자들은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잘못된 것을 제대로 바로잡는 행위로 보고 있다. 여기서 잘못된 점이란 구소련 지도자였던 니키타 흐루시초프 Nikita Khrushchev가 1954년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양도했던 결정을 말한다”고 전했다.

러시아 관료들은 이번 폭풍을 견뎌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정부 관료는 “고위 지도자들이 지난 봄에 모여 최악의 시나리오를 검토했다”며 “결론적으로 중국, 페르시아 만 국가,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 새로운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 서방세계에 대한 의존을 끝내기 위해 러시아 자체 제품생산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 달 후 푸틴은 중국에 향후 30년 동안 천연 가스를 공급하는 4,000억 달러 거래 계약을 체결했다. 계획은 낙관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제3의 로마(Third Rome)’라는 투자 그룹의 공동 회장을 맡고 있는 안드레이 모프찬 Andrei Movchan은 “만약 적절한 수입 대체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오래전에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에는 민간 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100% 실패했다.”

러시아 IT 경영자들은 지난 10월 초 모스크바에서 만나 수 년간 정체되고 있는 산업을 발전시킬 방법을 논의했다. 러시아가 주로 미국에서 필요한 것을 마구잡이식으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많은 러시아인들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다). 앞서 등장한 관료는 “석유가 우리를 망쳤다”고 지적했다. 지금 러시아는 혁신이 필요하다. 천연 자원 의존도를 줄이려는 많은 기업들의 노력의 결과는 (완곡하게 표현하면)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현재의 상황이 안 좋은 건 명확하다. 러시아 국민들에게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장소도 모스크바에 있다. 바로 냉전 박물관이다. 200피트 이상 파 들어간 지하 벙커를 개조해 몇 년 전 문을 열었다. 구소련 장교들이 이곳에서 한때 핵폭탄 통제실을 운영하며 미국 내 목표물을 파괴시킬 미사일 장전을 준비했다. 밤 늦은 시간에 벙커 주변을 지역민들에게 구경시켜주는 박물관 가이드 이리나 체레폰코 Irina Chereponko는 “박물관의 목적은 신세대에게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러시아와 서방세계의 갈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상황을 평가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30년 혹은 4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출장에서 막 돌아온 디어의 새뮤얼 앨런 CEO는 “젊은이들을 포함해 러시아인의 80%는 푸틴이 옳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고학력자들은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잘못된 것을 옳게 바로잡는 행위로 보고 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가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양도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떤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위험에 처해 있을까?
서방세계와 러시아의 관계 악화로 소비재 수요가 많은 러시아 시장이 폐쇄될 위기에 처해 있다. 루블화 가치 하락에 따른 저조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0.5%)에 우크라이나 관련 경제 제재조치까치 겹치면서 러시아 소비자들이 펩시 Pepsi부터 휴고 보스 Hugo Boss 양복까지 모든 제품에 대한 소비를 줄일지도 모르는 상황에 빠져 있다. 위험에 직면한 브랜드들을 살펴보자. - Phil Wahba

1. 펩시코
러시아는 미국 다음으로 펩시코에게 큰 시장이다. 2013년 매출은 49억 달러였다. 수십 년 전 펩시는 러시아에서 제조하는 최초의 서방세계 소비재 브랜드였다. 그러나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지난 7월 러시아 사업 환경이 매우 힘겨워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2. 다농
러시아는 지난 2010년 자국의 우니밀크 Unimilk를 인수한 프랑스 식음료 기업 다농 Danone의 최대 시장이다. 다농은 현지에 24개 제조시설을 갖췄기 때문에 이번 경제 제재조치의 영향을 덜 받았다. 하지만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판매에 타격을 입고 있다.

3. 칼스버그
덴마크 맥주업체인 칼스버그 Carlsberg는 올 여름 예상 매출액을 축소했다. 현재 러시아 최대 맥주업체인 이 회사는 현지 맥주 시장의 39%를 점유하며 10개의 제조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매출이 6~7%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 맥도날드
러시아 당국이 식품 검사를 진행하며 지금까지 8개의 맥도날드 매장을 폐쇄했다. 러시아는 맥도날드 전체 영업이익에 5% 미만을 기여할 뿐이지만 믿을 만한 몇 안 되는 유럽 시장 중 한 곳이었다. 회사는 지난 5년간 현지 매장 수를 두 배나 늘렸다.

5. 휴고 보스
독일 남성복 브랜드 휴고 보스는 러시아에서 프랜차이즈를 포기하고 직영점으로 전환하고 있다. 최신 유행의 모스크바 몰에도 새로운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러시아인 여행객이 줄면서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매장 매출도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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