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무엇일까? 선진국은 ‘약자’에 대한 배려에 능하고 후진국은 ‘강자’에 대한 배려에 능하다. 그렇다면 선진기업과 후진기업의 차이는 무엇일까? 선진기업은 직원에 대한 ‘배려’에 힘쓰고 후진기업은 직원에 대한 ‘갑질’에 강하다. 다시 말해 선진기업은 일하기 좋은 일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후진기업은 일하기 힘든 일터를 만들기 위해 힘쓴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제프리 페퍼 Jeffrey Pfeffer 교수는 선진기업의 성공 비결이 ‘인적자본(Human Capital)’에 있음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그는 20여 년간 다수의 선진기업을 대상으로 성공비결을 분석했다. 그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장기적 성공에 이른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경영상황이 어렵더라도 구조조정이라는 치명적인 극약 처방에 의존하기보단 오히려 직원들의 고용을 안정화 시키고 그들의 자발적인 몰입을 유도했다. 직원들을 ‘비용’이 아닌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들을 소중한 자본으로 존중했던 것이다. 페퍼 교수는 기업 성공의 열쇠는 바로 ‘핵심인재 개발을 통한 직원들의 창조적 본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보고, 경영여건에 따라 변동하는 기술이나 전략보단 기업의 경쟁력을 일관성 있고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그 대안을 찾으라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2014년 미국 포춘이 매년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이 리스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5차례나 1위를 차지한 구글이지만, 그 외에도 비즈니스분석 소프트웨어 업체인 SAS가 최근 높은 평점을 받아왔다. SAS는 2012년 3위에 이어 2013년과 2014년에 잇달아 2위를 차지하며 ‘좋은 일터’의 모범을 꾸준히 보이고 있다.
SAS는 출근하고 싶어 안달이 난 직원들이 다니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직원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직원이 아프면 무기한 병가를 허락한다. 직원은 물론, 직원 가족들까지 회사의 의료센터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선 53명으로 구성된 SAS 전속 의료팀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회사 내에 몬테소리 같은 보육시설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녀를 데리고 출근할 수도 있다. 덕분에 자녀들과 함께 점심 식사도 할 수 있어 아이들 걱정으로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없다.
그 밖에도 이 회사에는 직원들을 위한 당구장이나 사우나실, 그리고 다양한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 있다. 직원복지와 관련해 일하는 정규직 직원만 2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직원들 대부분이 같은 크기의 사무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CEO도 같은 규모의 사무실을 이용하고 있어 직원들 스스로 공평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는 정년이 없기 때문에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도 없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선택했을 때에도 SAS의 짐 굿나이트 Jim Goodnight 회장은 단 한 명의 구조조정도 없이 모든 직원들을 지켜냈다.
이 같은 굿나이트 회장의 인간존중 경영은 바로 성과로 이어졌다. SAS는 창업 이후 지난 36년 동안 단 한 번의 적자도 낸 적이 없다. CEO와 회사를 신뢰하는 SAS 직원들이 더욱 업무에 몰입한 결과 지속적인 성장세가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SAS의 평균 퇴사율은 자연 감소를 포함해 불과 2.6%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소프트웨어 산업 평균 퇴사율이 22%라는 점을 감안 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직원들을 믿고 각별히 대해주면 성과는 나오게 마련’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굿나이트 회장의 철학이 직원들에게 신바람을 일으켜 지속 가능한 기업의 역동성과 굳은 토대를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존중 경영을 거론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경영자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파나소닉의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이다. 마쓰시다 회장은 직원의 성장이 곧 기업의 성장이라는 원칙을 꾸준히 지켜왔다. 그는 57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세계 20위권의 기업을 만든 일본의 ‘경영의 신’으로 오늘날까지 추앙받고 있다. 1929년 세계공황이 발생해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의 혼란 속에 빠져 있을 때에도 마쓰시다 회장은 단 한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1,000여 건에 달하는 대규모 노사분규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구조조정으로부터 자유로웠던 파나소닉 직원들은 회사를 믿고 일치단결해 불황을 극복하고 오히려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쓰시다 회장은 늘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기업문화를 조성했다. 때문에 마쓰시다 회장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는 매우 확고부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신뢰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를 하나 들어보자.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1946년 11월 일본에 주둔한 연합군 총사령부는 군수물자 공급에 참여했던 일본의 기업인을 대상으로 소위 ‘공직추방’을 선언해 많은 경영자들을 강제로 퇴진시킨 바 있다. 전쟁의 책임을 물은 것이었다. 이 조치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자리를 공석으로 만들어 많은 기업을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이에 대한 파나소닉의 대응은 여느 일본 기업과 달랐다. 노조가 중심이 되어 마쓰시다 회장의 구명운동에 적극 나섰다. 93%에 달하는 노조원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이를 연합군 총사령부에 제출했다. 당시 패전국이었던 일본 입장에서 연합군 총사령부에 탄원서를 낸다는 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마쓰시다 회장에 대한 구명운동은 목숨을 건 도박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결국 절박하고도 간절했던 파나소닉 직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마쓰시다 회장은 1947년 파나소닉에 복귀했다. 마쓰시다 회장이 지켜냈던 직원들이 오히려 회장을 구해낸 셈이었다.
굿나이트 회장과 마쓰시다 회장에겐 공통점이 많다. 적어도 직원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는 점이 일치한다. 그들에게선 경영자의 ‘갑질’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결국 직원들은 자신들을 존중하는 만큼 회사의 일에 헌신하고 상사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젠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조하기보단 주인부터 제대로 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주인이 주인답지 못한 상황에서 주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강조해봐야 그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실체가 없는 종교를 믿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우리 사회는 불평등이란 질병을 앓고 있지 않은가? 부자가, 또는 높은 사람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소위 ‘다움’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경영자가 직원을 믿지 못하고 직원은 경영자를 원망하는 기업이라면 작은 위기에도 흔들리기 십상이란 얘기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직원들의 자발적 헌신과 몰입은 바로 경영자의 배려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에 몰입하는 조직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경영자 스스로 직원에 대한 ‘갑질’이 아니라 ‘배려’에 나서야 한다
신제구 교수는…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상무이사) 겸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주요 기업 등에서 리더십, 팀워크, 조직관리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한국리더십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크레듀 HR연구소장, KB국민은행 연수원 HRD컨설팅 팀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