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블루오션으로 불리던 소셜커머스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5조 원대 규모의 거대 유통채널로 성장한 소셜커머스 이면에서 다양한 문제가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을 놓고 업계에선 매출부진보다 고객에 대한 신뢰 추락이 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소셜커머스 업계는 이를 극복하고 다시금 성장의 고삐를 죌 수 있을까.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소셜커머스 업계에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바로 ‘영업이익 비공개 원칙’이 그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업계에선 돈과 관련된 수치의 공개를 꺼렸다. 왜 그랬을까? 일종의 눈치 보기, 그리고 경쟁심리 때문이었다.
소셜커머스 시장은 지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빅2를 형성하고 있던 티켓몬스터(이하 티몬)와 쿠팡의 뒤를 위메이크프라이스(이하 위메프)와 글로벌 소셜커머스 업체 그루폰이 바짝 뒤쫓는 형국이었다. 당시 소셜커머스 업계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신선하다’ 그 자체였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음식점, 미용, 뷰티, 레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워 중소형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우후죽순 탄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티몬과 쿠팡, 위메프는 초기 시장 선점에 성공하며 성장의 기반을 닦고 있었다.
하지만 외형상 잘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이 업계에선 매출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은 커졌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수치가 없었다. 이따금 각 사가 매출을 공개하긴 했지만, ‘구색 맞추기’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특히 영업이익은 대다수 업체가 노출을 기피했다. 심지어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는 발표에서도 얼마의 흑자가 났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의미 있는 수치’의 흑자가 났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적인 얘기였다.
기자는 그 이유를 소셜커머스 시장이 가장 잘나갔던 2012년, 대형 소셜커머스 업체에서 고위직으로 재직했던 한 관계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모든 업체는 다 적자를 보고 있다. 유의미한 흑자를 달성했다는 것도 사실상 보여주기 식의 발표다.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그 요인 중 가장 심한 부문이 마케팅이다. 소셜커머스 업체는 매출의 절반 이상을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2~3년 후 소셜커머스 시장은 규모의 측면에서 엄청나게 커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속은 곯아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마케팅에 목숨 거는 지금의 운영 방식을 지속하면 어디에서든 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3년 전 그 담당자의 말은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티몬, 쿠팡, 위메프 3사가 이끄는 소셜커머스 시장은 올해를 기점으로 거래규모 5조 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200억 원대 규모로 처음 집계가 시작된 2010년 이후 불과 5년 만에 25배가량 시장이 커진 셈이다. 물론 이는 여전히 정확한 수치가 아닌 외부에서 보는 ‘추정치’다.
하지만 규모의 성장만큼 질적인 성장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평가다. 특히 소셜커머스 대표 3사는 마케팅 부문에서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적인 예가 과거부터 계속되어 온 톱스타 모델의 기용이다.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김태희, 비, 수지, 전지현, 신민아, 이승기 등 톱스타를 앞다퉈 모델로 기용하며 막대한 금액을 마케팅과 홍보에 쏟아 부어 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홍보 효과가 아닌 마케팅 비용 지출이다. 업계에 따르면, 소셜커머스 업계 선두 진영에 있는 3사는 1년 평균 300억~400억 원을 홍보 및 마케팅 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빅3의 연평균 매출 500억~2000억 원을 감안하면, 많게는 매출의 절반가량을 홍보 마케팅에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통상적으로 소셜커머스 업계의 이익률이 10%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익을 전혀 창출할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도 한 달 기준 흑자달성은 종종 있었지만, 1년 기준으로 3사 모두 흑자를 달성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5조 원의 진실, 그리고 3색 악재
마케팅 출혈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소셜커머스 업계는 안정적인 사업 전개를 위해 다방면에서 치열한 경영 전략을 펼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소셜커머스 업계는 연초부터 각종 악재로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다소 엉뚱한 곳에서 논란이 생기면서 각 업체의 사업 전선에 연초부터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위메프였다. 잘 알려진 ‘갑질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입사 지원자에게 2주간 정직원 수준의 업무를 시킨 후 전원을 탈락 조치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리고 이후 미숙한 대처가 사건을 더욱 확대시켰다. 위메프는 사과문에서 ‘달을 가리켰지만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을 봤다’고 언급하며 자신들에 대한 비난이 정당치 못하다는 뉘앙스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또 탈락한 입사 지원자들이 계약한 점포의 상품을 판매하며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사태가 커지자 위메프는 더 이상의 해명 대신 탈락 인원의 정직원 채용이라는 수습안을 발표했지만 소비자는 위메프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위메프 탈퇴 러시가 이어졌고 순 방문자 수도 급감했다.
온라인 트래픽 분석업체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갑질 논란이 이슈화된 후인 지난 1월 12일부터 1주일간 위메프의 순 방문자는 236만 8,525명으로 줄어 전주 대비 6% 감소했다. 같은 시기 경쟁사 쿠팡과 티몬의 방문자는 각각 7.2%, 8.7% 증가했다. 그 결과 업계 2위였던 위메프는 3위로 밀려났다. ‘땅콩 회항’으로 불거진 이른바 ‘갑의 횡포’가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위메프 사건이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분석된다.
소셜커머스 업계의 악재는 위메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쿠팡도 자체 배송서비스 ‘쿠팡맨’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쿠팡맨은 쿠팡이 자체 배송인력으로 소비자에게 상품을 운송하는 배송서비스다. 쿠팡은 ‘로켓배송’ 서비스를 위해 쿠팡맨 1,000여 명을 고용하고 1톤 차량 1,000여 대를 구입, 1인 1차량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쿠팡맨 논란은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글에서 시작됐다. 게재된 글에 따르면, 회사 측은 쿠팡맨을 6개월 계약직으로 운영해 정직원 채용을 하고 있지 않으며, 밤 11시까지 일해도 월급은 250만 원 남짓만 주고 있다. 이에 대해 쿠팡은 ‘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 자료를 내고 진화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들도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은 글”이라며 쿠팡 측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쿠팡맨 논란은 배송서비스의 적법성 여부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통합물류협회 측은 “화물 운송인 로켓배송 과정에서 개인차량을 상징하는 하얀색 번호판 차량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쿠팡이 제품 생산자가 아닌 유통사인 만큼 여타 쇼핑몰과 마찬가지로 택배사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쿠팡 측 관계자는 “로켓배송 대상 제품은 쿠팡이 직접 구매한 상품에 한정된다”며 “타 업체와 마찬가지로 타사 제품의 경우 택배 업체를 통해 배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에게 이번 로켓배송 논란은 매우 중요한 이슈다. 쿠팡은 지난 2012년 자체 물류센터를 구축한 후 택배업체들과 손잡고 ‘당일배송’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원하는 배송 속도와 서비스 품질을 얻지 못했다는 자체 평가가 나온 후 ‘로켓배송’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쿠팡은 지난해 미국 블랙록을 포함한 투자사로부터 3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해 이 배송 서비스의 강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로켓배송의 효과는 상당했다. 지난해 11월 쿠팡의 월 거래액은 2,000억 원을 돌파했다. 로켓배송 대상 제품인 유아제품과 생활용품의 경우, 거래액 기준으로 전년 대비 10배 이상 증가했다. 입점 업체도 꾸준히 증가해 로켓배송은 쿠팡 성장의 핵심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쿠팡이 로켓배송을 놓칠 수 없는 이유이다. 현재 자체 배송인력을 운영하는 업체는 쿠팡이 유일하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불법 판정을 받는다면 지금까지 진행한 막대한 투자가 허공으로 날아갈 수 있다. 쿠팡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부 문제로 풍파를 겪고 있는 쿠팡이나 위메프와는 달리, 티몬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벌써 세 번째다. 업계는 세 번째 주인을 맞는 티몬이 국내 소셜커머스 시장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설립된 티몬은 이듬해인 2011년 8월 미국 기업 리빙소셜에 지분 100%를 주식교환 형태로 매각했다. 이유는 단순명료했다. 글로벌 소셜커머스 업체인 리빙소셜의 지원하에 국내 소셜커머스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빙소셜은 티몬 인수 이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티몬을 포함한 대규모 해외기업 인수합병이 그 원인이었다. 당시 리빙소셜은 자금난에 시달려 티몬에 대한 투자 여력을 상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티몬은 리빙소셜 매각 후 2년 만인 2013년 11월, 약 2억 6,000만 달러(한화 약 2,700억 원)라는 거금에 또 다른 글로벌기업 그루폰에 인수된다. 당시 티몬과 그루폰의 야심은 대단했다. 그루폰 본사는 한국시장에서 진행했던 그루폰코리아 서비스의 종료까지 선언하며 ‘티몬 띄우기’를 공격적으로 전개해나갔다. 하지만 기대했던 합병 시너지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적 마케팅 전략을 펼친 쿠팡과 위메프에 밀려 방문자 수 기준 3위로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최근 그루폰은 투자금 확보 명목으로 티몬의 지분 매각을 결정했다. CJ오쇼핑에 이어 LG유플러스가 인수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경영권 확보가 가능한 수준인 인수가격 1조 원이 발목을 잡았다. 최근 LG유플러스가 티몬 인수전 불참을 선언하며 CJ오쇼핑에게 기회가 왔지만, 오너 공백 상황에 놓인 CJ가 쉽사리 큰돈을 풀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성공적인 모바일쇼핑 시장 안착을 위해 필요한 포석임에는 분명하다”면서도 “하지만 TV홈쇼핑과 소셜커머스의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만큼 시너지 효과가 나올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기회. 재도약 가능할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2015년 소셜커머스 3사에 불어닥친 위기 역시 곧 반전의 기회로 바뀔 수 있다. 이미 소셜커머스 3사는 과거 ‘가품 판매’ 논란 당시, 자체 검수 강화와 직접 상품을 구매해 확인하는 ‘미스터리 쇼퍼’ 제도 등을 운영하며 위기 탈출을 경험한 바 있다. 업계 전문가들도 이번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소셜커머스 시장이 한층 성숙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커머스(Commerce)’가 아닌 ‘소셜(Social)’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동희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과 교수는 “소셜커머스 업계가 소비자와의 관계 개선이 아닌 커머스 기능에만 집중한 것이 지금의 위기를 불러온 근본적 이유”라며 “소셜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고객과의 관계 회복과 소통만이 시장의 성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