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 트로트 Byron Trott는 버핏 Buffett, 월턴 Walton, 프리츠커 Pritzker 같은 저명인사들의 오랜 신뢰를 받아 온 재무 및 투자 자문가다. 신중하기로 정평 난 트로트가 이제 고객들과 함께 투자에 참여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By Adam lashinsky
Photographs by Robyn twomey
바이런 트로트는 워런 버핏의 투자 은행가로 채용된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2002년 2월, 트로트는 당시 골드만삭스 CEO였던 행크 폴슨 Hank Paulson의 전화를 받았다(트로트는 골드만삭스 시카고 지사장이었고 폴슨은 그의 전임자였다). 골드만삭스에서 은퇴할 예정이었던 베테랑 미디어 거물의 아들이자 버핏의 오랜 친구인 톰 머피 주니어 Tom Murphy Jr.의 후임을 찾기 위해서였다. 폴슨은 버핏의 오마하 Omaha 집무실에서 은행가 식 말투로 그에게 “트로트가 톰 머피의 일을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집무실을 나오자마자 트로트에게 전화를 걸어 “버핏을 찾아가 보게”라고 말했다.
트로트는 버크셔 해서웨이 Berkshire Hathway의 연말 결산서를 빠짐없이 읽어보며 버핏과의 미팅을 준비했다. 그는 “잘 긴장하는 편이 아닌데 버핏 사무실에 들어갈 땐 떨려서 죽을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자리에서 버핏과 트로트는 잘 통했다. 예정된 한 시간짜리 미팅이 3시간으로 길어질 정도로 서로에 대한 탐색을 계속했다. 사실 버핏은 투자 은행가 고용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트로트는 미팅이 끝나기도 전에 그로부터 ‘유급 업무’를 따냈다. 그는 “평소 고객을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말했다. 당시 버핏은 한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트로트 외의 다른 은행가들은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버핏은 일반 대출과 정반대로, 대출 기관이 오히려 차용자(예를 들면 버크셔)에게 돈을 지급하는 증권을 만들려고 했다. 대신 해당 대출 기관이 차후 버크셔 주식을 일반 전환사채 발행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얻는 조건이었다. 일명 ‘네거티브 전환사채(negative coupon convertible)’였다. 트로트는 골드만삭스에서 자본시장 분석을 담당하던 전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를 설득해 네거티브 전환사채 개발에 참여시켰다.
(마이너스 0.75% 스퀘어즈 SQUARZ라고 표시된) 이 네거티브 전환사채는 4억 달러가량 팔리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버핏의 예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트로트는 “채권이 주식으로 전환된다는 점이 리스크였다”고 네거티브 전환사채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말했다. 버핏의 파트너 찰리 멍거 Charile Munger는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버크셔 주식가치를 희석하는 아이디어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멍거가 두려워한 것처럼 결국 채권은 (주식으로) 전환됐고 골드만 삭스는 이후 네거티브 전환사채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버핏은 “네거티브 채권을 발행하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찌 됐든 이 일을 계기로 트로트의 커리어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버핏이라는 거물 고객의 요구를 신속하고 훌륭히 처리한 덕분에 트로트는 버핏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버핏이 2004년 (신문 헤드 라인을 장식하기도 하는)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서신’에서 트로트의 이름을 언급했을 정도였다. 버핏은 당시 ‘트로트는 우리가 함께했던 어떤 은행가보다 버크셔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는 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썼다. 하루아침에 미드웨스턴 Midwestern *역주: 일리노이, 인디애나 등 미 중북부 12개 주를 아우르는 지역으로 대표도시는 시카고다의 무명 은행가가 버핏과 함께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작 트로트 본인은 적극 나서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후 10년간 트로트는 버핏을 도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다수 추진했다. 금융 위기가 절정일 때 현금 50억 달러를 골드만삭스에 투입한 것도 그중 하나였다. 골드만삭스 부회장까지 오른 트로트는 2009년 회사를 떠나 시카고에서 사모펀드 BDT를 설립했다.
BDT는 머천트 뱅크 *역주: 어음인수·증권발행을 주 업무로 하는 은행라는 오랜 사업모델을 개선해 수익성 높은 틈새 사업-유력 고객들에게 자문을 해주며 그들과 함께 투자도 하는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BDT는 흔히 ‘억만장자 사업가’라고 불리는 고객들만 상대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돈만 많은 부자에겐 관심이 없다. 기관 고객이나 대형 금융기관의 전문 관리를 받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단정하고 늘 미소를 머금고 있는 트로트(56)는 버핏의 신임을 얻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월튼, 프리츠커, 리글리 Wringley 같은 유명 일가의 신뢰를 얻어왔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그들의 개별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트로트는 자신의 접근 방식을 이렇게 요약했다. “당신과 회사의 현 상황, 장기 목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단기적 아이디어에 갇혀 돈만 밝히는 은행가가 되고 싶진 않다. 대신 당신 편에서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조언가가 될 수 있도록 해 달라.”
독특한 고객들 외에도 트로트가 지닌 차별점은 협상 테이블의 양쪽에 앉을 수 있는 능력이다. 트로트와 그의 동료들은 신중함, 비밀엄수, 인내를 강조하며 각기 입장이 다른 거래 당사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다른 은행가들이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는 장점이다. 그는 이렇게 달성시킨 거래 중 일부에는 직접 투자를 하기도 한다. BDT는 이런 식으로 5년 만에 총 80억 달러에 달하는 펀드를 2개나 조성했고, 토리 버치 Tory Burch, 피츠 커피 Peet’s Coffee(고속도로 휴게소 체인), 파일럿 플라잉 J the Pilot Flying J 등의 지분을 매입했다. 필요 자금은 거의 BDT의 직원들이나, BDT 네트워크 내 부자 일가가 충당하고 있다.
이들은 인내심이 필요한 장기 투자금을 서로 주고받는 핵심 주체들이다. 월가 등 다른 곳에서 이런 행동은 대개 ‘이해관계의 대립(a conflict of interest)’으로 비친다. 하지만 트로트가 만든 최상위 클럽에선 ‘회원만의 특전(a privilege of membership)’으로 인식된다. 지금까지 보여준 트로트의 타이밍은 완벽했다. 기업 가치가 떨어지고, 훌륭한 조언이 귀해진 금융위기 직후에 골드만을 퇴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은행가로서의 명성에 비하면 투자주체(Principal Investor)로서의 명성은 아직 미약하다. 때문에 더 많은 잠재 투자 파트너들에게 존재를 알려야 한다. 지금까지 비밀스러운 행보를 고집하던 그가 포춘의 취재를 허락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포춘은 그의 전략과 최상위 네트워크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을 들여다보았다. 이름만으로 수많은 고객을 유치해 온 그이지만 한 가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었다. BDT를 ‘바이런 트로트 원맨쇼’ 이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BDT는 바이런 D 트로트의 이니셜이다). BDT의 고위 자문가인 리 스콧 Lee Scott 전 월마트 Wal-Mart CEO는 “지금 시점에선 의심할 여지 없이 트로트가 핵심 인물이다. 그의 첫 번째 임무는 훌륭한 투자성과를 내는 것이고, 다음 임무는 BDT를 성장시켜 그를 뛰어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지만 화창했던 지난 12월 시카고의 어느 날, 태양이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행크 폴슨의 머리 뒤로는 랜드마크 윌리스 타워 Willis Tower가 배경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재무부 장관 출신 행크 폴슨은 BDT 바로 위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그는 BDT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지만 어떠한 비즈니스 관계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요즘 폴슨의 주요 관심사는 환경정책과 미-중 관계이다. 후배 트로트와도 가깝게 지낸다. 무명이었던 트로트를 골드만삭스 세인트 루이스 지점으로 영입한 폴슨은 “바이런 같은 인물은 둘도 없다. 그는 대인관계에 뛰어난 은행가이자 조언가다. 훌륭한 투자자이자 탁월한 세일즈맨인 그는 세 방면에 모두 출중한 3관왕이다”라고 치켜세웠다. 트로트는 (자신의 돈이 아닌) 남의 돈을 운용하는 투자 은행가로서 하기 힘든 모험적인 투자도 수차례 감행해왔다. 폴슨은 “골드만삭스를 운영할 당시 트로트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는 프리 세이프티 free safety *역주: 풋볼에서 특정 공격수가 아닌 여러 사람을 방어하는 수비수처럼 일했기 때문에 업무 효율성을 높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트로트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미주리 주 유니언 Union에서 자랐다. 1남 3녀 중 장남이었다. 아버지는 벌지 대전투(the Battle of the Bulge)에 참전했던 전화선 수리공이었고, 어머니는 드레스 가게를 운영했다. 트로트는 10대 때 유니언에서 청바지 사업을 시작했다. 더 좋은 청바지를 사기 위해 대도시로 나가야 하는 젊은 친구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트로트는 야구에도 재능이 있었다. 한때 메이저리거를 꿈 꿨지만 집 근처 대학의 장학금 제안을 뿌리치고, 학문적으로 더 유명한 시카고 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를 선택했다. 캠퍼스를 방문할 때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다.
대학 졸업 후 트로트는 골드만의 주식중개 사업부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부자 고객들을 위한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가 그의 주 업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고객들이 투자보다는 주로 사업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폴슨은 트로트의 업무를 주식매매에서 고객 금융거래 자문으로 전환시켰다. 흔치 않은 기회였기에 트로트도 이를 놓치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트로트는 폴슨에게 (기존 부서에서 상대하던) 고객들을 골드만의 은행 플랫폼에 편입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트로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 52명의 타깃 명단 중 골드만삭스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은 한 명도 없었다. 때문에 폴슨은 잃을 것이 없었고 나는 얻을 것이 많았다.”
트로트는 천천히 틈새시장을 공략해 나갔다. 처음에는 다행히 증권판매 성적이 좋았다. 그리고 점점 가족 사업자들 쪽으로 방향을 맞춰갔다. 시어스 Sears, 퀘이커 오츠 Quaker Oats 같은 골드만의 기관 고객은 이미 전담자가 있었기 때문에 월튼 일가 같은 가족 고객들을 주로 공략했다. 그는 세인트 루이스, 캔자스 시티, 시카고 같은 미드웨스턴 지역을 담당하며 엔터프라이즈 렌터카 Enterprise Rent-a-Car를 소유한 테일러 Taylor 일가, 신문업계 거물 퓰리처 일가 등을 고객으로 유치했다.
트로트의 고객들은 극도로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경향이 있었다. 그들의 사업은 설립 초에 비해 상당히 달라진 경우도 많았다. 고객들은 (부드러운 판매술의 대가) 트로트가 골드만의 매출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함께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2007년 하얏트 호텔 Hyatt Hotel 그룹의 자금조달을 위해 트로트를 고용한 톰 프리츠커 Tom Pritzker는 “트로트는 스스로 우리를 담당하는 골드만 직원이라기보단 골드만 내부에서 우리의 계약을 대행하는 인물로 여겼다”고 말했다. 트로트는 자신만의 ‘윈윈 전략’에 따라 하얏트에 두 명의 투자자를 연결해 주었다. 월 마트 회장 롭 월튼 Rob Walton이 관리하는 펀드와 골드만삭스가 자체 운용하는 사모펀드였다.
금융 시장이 붕괴 직전까지 갔던 2008년은 트로트의 커리어 측면에서 최고의 한 해였다. 그해 초 버핏은 연례 서신에서 다시 트로트를 언급했다. 그는 트로트를 ‘고객 입장을 십분 이해할 줄 아는 보기 드문 투자 은행가’로 소개했다. 트로트는 그 후 6개월간 프리츠커가 소유한 마먼 Marmon 그룹을 버크셔 해서웨이에 매각하기 위한 작업에 매달렸다(그는 골드만에서 버핏을 위한 투자 중개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캔디 회사 마스 Mars의 추잉검 회사 리글리 인수도 주선했는데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가 주효했다(마스와 리글리는 모두 트로트의 고객이었다). 당시 리글리의 회장 겸 CEO이자 현 BDT 고문인 윌리엄 ‘보’ 리글리 주니어 William “Beau” Wrigley Jr.는 “트로트는 거래 때 모든 당사자와 함께 일한다. 이사회는 트로트가 마스와도 접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10년간 쌓아 온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2009년 봄 트로트는 골드만삭스를 떠나 BDT를 설립했다. 그는 시카고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늘 무언가를 이루고나면 또 다른 것에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사무실에는 그가 업무 과정에서 받은 각종 상패들이 진열된 책장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구석이 많은 트로트는 자신의 유명 고객들처럼 거물 투자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시카고 시내에 자리 잡은 인기 레스토랑 웨버 그릴 Weber Grill의 주방에서 훈제 바비큐 향이 퍼져 나왔다. 웨버 바비큐 그릴-레스토랑 브랜드를 포함해 거대한 웨버그룹을 탄생시킨 상징적인 주전자 모양 바비큐 그릴-발명가의 12자녀 중 한 명인 짐 스티븐 Jim Stephen은 웨버 그릴의 편안한 분위기를 음미하며 그의 가족사와 BDT와 관계를 맺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시카고 교외에 위치한 웨버-스티븐 프로덕트 Weber-Stephen Products의 CEO를 수년간 역임했다. 스티븐과 그의 형제자매에게 유동자금이 필요했을 때, 한 기업가가 그들에게 (골드만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트로트를 소개해 줬다. 몇 가지 안에 대해 조언한 것으로 시작해, BDT는 웨버-스티븐의 지배지분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스티븐 일가를 계속 고객으로 유지함과 동시에 그들이 아끼는 레스토랑 브랜드에 대한 지배권도 보장해 준 것이었다.
웨버-스티븐과의 딜은 2010년 BDT의 첫 거래이자 BDT의 특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거래였다. 트로트와 스티븐은 대화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거래를 체결했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입찰자를 찾기 위해 경매를 하지도 않았다. 구조적 조정을 통해 재정적으로, 감정적으로 모든 이해관계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했다. 트로트는 리 스콧을 웨버-스티븐의 이사회 멤버로 추대했다. 스티븐은 이에 대해 혼자서는 꿈도 못 꿀 조치였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스티븐은 자기 회사의 지분을 조금 더 비싼 가격에 매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선친의 유산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히 보장받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말한다. “웨버가 성공한 이유는 어떻게든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가격 선이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주인의식을 필요로 하는 비공개 기업의 특징이다. 트로트와 BDT가 웨버-스티븐의 소유주가 되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일반 투자은행이 고객으로부터 이처럼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다. 에너지바 브랜드 킨드 Kind의 설립자 대니얼 루베츠키 Daniel Lubetzky는 지난해 사모펀드로부터 수없이 많은 구애를 받았다. 약 5년 전 VMG 파트너스 VMG Partners로부터 투자를 받은 뒤에는 타 회사의 투자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개 큰 이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고객에 갖가지 조건을 제시하곤 한다. 하지만 트로트는 달랐다. 그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루베츠키를 오마하로 초대해 버핏과 함께 만나려 했다.
루베츠키는 “내가 갈 수 없어서 대신 그를 초대했다”고 말했다. 트로트는 곧 뉴욕에서 루베츠키를 만났다. 그는 “트로트는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옛날 방식대로 직접 나를 찾아왔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 후 BDT는 결국 킨드의 소수 주주가 되었다.
BDT는 구조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투자은행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첫째, 금융서비스와 소비자 금융상품 판매 등 전통적인 은행활동을 하지 않는다. BDT의 모든 투자 전문가들은 가족 고객들을 상대하기에 적합한 제너럴리스트들이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일회성 거래를 넘어 상당히 깊고 포괄적이다. 둘째, BDT의 은행가들은 자문과 투자를 모두 담당한다. 일반 금융기관에선 이 두 가지 영역이 엄격히 구분된다. 트로트는 BDT의 은행가들에겐 세 가지 기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투자은행 업무의 고수가 돼야 한다. 다음으로 투자의 고수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족 고객 및 기업 오너들을 상대하기 위해 그들의 심리를 읽는 데 달인이 돼야 한다.” 이 점은 고객뿐만 아니라 BDT의 젊은 인재를 채용하는 데에도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칼슨 왜건리트 트래블 Carlson Wagonlit Travel, 래디슨 호텔 Radisson hotels 등을 소유한 칼슨 일가의 3대 회장 다이애나 넬슨 Diana Nelson은 골드만 삭스 시절부터 트로트 팀에 투자를 자문해왔다. 최근 패밀리 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 것도 그들과 함께 결정한 사안이었다. 넬슨은 “BDT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경청한다. 가족 비즈니스 특성상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랫동안 지속하게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투자은행가들은 직업 특성상 인맥관리의 고수들이다. 트로트는 자신의 수다 능력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 2년에 한 번 9월 시카고에서 개최되는 BDT 정상회의에서 이런 능력들이 곧잘 발휘되고 있다. 청중들은 BDT 네트워크에 속한 부자 가문 사람들이다. 부모와 성인 자녀들이 함께 오는 경우도 많다. 점심 때 베타니 맥린 Bethany McLean 기자는 ‘호랑이 엄마(Tiger Mom)’로 유명한 예일대 법대 교수 에이미 추아 Amy Chua와 육아법 관련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매들린 레빈 Madeline Levine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즐거워야 할 점심 식사 자리에서 ‘부, 특권, 가족의 의무 같은 부담 아래서 어떻게 자식들을 키워야 하나’ 같은 매우 심각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레빈은 정상회의 말고도 BDT가 더 많은 가족들을 위해 주최하는 소규모 좌담회에 참석해왔다. 그는 “대개 부자들은 주변에 재정적·심리적 문제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선입견이 없는 안전한 환경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큰 위안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네트워크 형성이야말로 BDT가 성공한 비결이다. BDT 펀드 투자자들은 대부분 회사 직원이나 부자 일가들이다. 이 둘은 재정적·사회적으로 BDT라는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BDT가 주최한 모임은 매우 사적이고 비밀스럽다. 고객들은 이곳에서 공통된 걱정거리에 대해 속 시원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투자은행가 어스킨 보울스 Erskine Bowles-현 BDT 고문이기도 하다-는 “이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솔직한 모습을 보였다. 고민의 여지 없이 (모임을) 신뢰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BDT가 주최한 모임들은 일종의 집단심리치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루베츠키도 첫 모임을 경험한 이후 BDT 네트워크에 빨려들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 아이들이 바른 가치관을 지니도록 키우는 것이다. 처음 모임에서 재계 리더들과 자녀교육, 배려, 절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말 좋았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훌륭했다”고 말했다. 트로트는 골드만 삭스 시절부터 이런 모임을 주최해 왔다. 이제는 억만장자들의 조언에 그가 만나 온 재계 인사들의 황금 같은 지혜를 더하고 있다. 일례로 트로트는 월마트에서 은퇴한 리 스콧에게 BDT에서 전임으로 일할 것을 제안했다. 스콧은 이를 거절했지만 대신 BDT의 고문이 되는 건 승낙했다. 그의 주요 업무는 젊은 인재의 멘토 역할이었다. 그는 “젊은이들이 플로리다에 있는 내 집에 오면 커리어 개발과 진지함을 키우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트로트는 또 스콧을 설득해 웨버-스티븐과 파일럿 플라잉 J의 이사직, 토리 버치 이사회의 옵서버를 맡도록 했다. 스콧은 “그는 참 영리한 사람이다. 분명 전임직을 거절했는데, 어느 날 내 모습을 보니 그것 못지않게 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이사 보울스 덕분에 트로트는 실리콘밸리라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벤처 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리슨 Marc Andreessen은 “BDT처럼 우리는 재정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투자하고, 자문에 응하고, 네트워크 형성에 집중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울스는 같은 페이스북 이사인 앤드리슨을 트로트에게 소개해 주었다. 현재 앤드리슨과 그의 자선가 부인 로라 Laura, 그리고 기술기업 투자 전문가 짐 브레이어 Jim Breyer가 BDT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브레이어는 작년 가을 시카고에서 교육 사업가 세바스찬 스런 Sebastian Thrun과 혁신적인 혈액검사 기업 테라노스 Theranos의 설립자 엘리자베스 홈즈 Elizabeth Holmes가 참여한 패널토론을 진행했다). 브레이어는 “우리는 앞으로 사업을 어떻게 영위할지 논의했다. 이는 수세대에 걸쳐 사업을 이어온 기업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주제다. 우리 과제는 1~2년 만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초 트로트는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55시간 일정으로 암스테르담 Amsterdam을 방문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익명의 고객과 5시간짜리 미팅을 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 Bay Area로 날아갔다(그 고객이 누구였냐고 묻자 트로트는 “그걸 말하면 내가 당신을 죽여야 한다”며 상투적인 첩보영화 대사를 인용했다). 샤도네이 Chardonnay 와인 한 병을 곁들여 든든한 식사를 한 뒤, 그는 밤새 다시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가장 먼저 골드만 회장 행크 폴슨의 공식 초상화 제막식에 참석했다. 역설적으로 트로트의 열정적인 활동은 BDT의 가장 큰 도전과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BDT는 트로트 혼자 이끄는 기업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우선 3명의 파트너를 살펴보자. 골드만삭스에서 오래 근무했고 월튼 일가를 담당하는 산 오르 San Orr, 역시 골드만 출신으로 금융위기 동안 재무부에서 폴슨의 오른팔 역할을 한 댄 제스터 Dan Jester, 변호사이자 곧 은퇴를 앞둔 트로트의 절친 윌리엄 부시 William Bush(부시 가문과는 아무 관계없다)가 함께하고 있다. 중간급 직원의 상당수도 골드만에서 트로트의 팀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모든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꼭 BDT에 오래 머무는 것은 아니다. 골드만 출신 고위 직원 게리 카르디날레 Gerry Cardinale와 케빈 케네디 Kevin Kennedy는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BDT를 떠났다. 트로트는 고위급 직원들을 충원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10년간 내 연령층의 인력을 보충해야 한다. 그래야만 완전히 준비된 상태에서 세대교체를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BDT의 도전과제는 인력충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거래 건수가 많이 줄었다. 2014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두 건의 거래만 성사시켰을 뿐이었다. BDT는 설립 후 5년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와 상대적으로 많은 비즈니스를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버크셔는 마이너리티 인베스트먼트 Minority Investment *역주: 소액지분을 인수한 후 기업가치가 오르면 각종 옵션을 행사해 차익을 얻는 방식의 투자까지 시작했고, 이제 두 사람은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됐다. 트로트는 버핏과의 거래를 포함해 더 많은 거래를 앞두고 있다고 시사했다. 토비 코스그로브 Toby Cosgrove 클리블랜드 클리닉 Cleveland Clinic CEO는 BDT의 영향력 있는 고문 중 한 명이다. 그의 주도하에 BDT는 의료보험 관련 대규모 투자를 추진 중이다.
트로트가 오랫동안 언론의 노출을 피해왔던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경쟁자들로부터 주목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상황 또한 변하고 있다. 블랙스톤 Blackstone, KKR 등 글로벌 투자사들이 BDT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또 BDT의 최대 강점-인내심이 강하고, 부유한 가족 고객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월가 기업을 고용하는 건 일회성 ‘저격수’를 고용한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BDT는 장기적인 상호이익 투자 거래를 추구하고 있다. 초기에 한 번 정도는 투자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때가 되면 BDT와 고객의 관계가 상당히 껄끄러워질지도 모른다.
트로트는 BDT가 상대적으로 작은 현 규모를 유지할 것이며, 또 자신이 없어도 지속 가능한 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BDT가 매각되거나 공개 기업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현재처럼 직원들이 지배하는 형태나 비공개 기업 형태로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BDT가 정성껏 모시고 있는 가족 고객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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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트로트 클럽의 핵심 인물들을 뽑아봤다. 이들은 서로 억만장자를 위한 귀중한 조언과 지혜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BDT의 고문도 있다. 트로트는 세계 전역의 부자 일가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지만, 아래 선별된 장기회원들은 모두 트로트와 같은 중서부 지역 출신이다.
에밀리 퓰리처 Emily Pulitzer
조셉 퓰리처 Joseph Pulitzer 3세의 미망인으로 BDT의 고문이다. BDT 설립 전, 트로트(골드만삭스 시절)와 공동 설립자 윌리엄 부시는 외부 법률 자문가로 퓰리처의 신문사 매각을 도왔다.
톰 프리츠커 Tom Pritzker
트로트가 프리츠커를 도와 세계적 산업자재 유통서비스 기업 마먼을 버크셔 해서웨이에 매각했다. 또 하얏트 호텔을 위한 자금조성을 도왔다. 현재 프리츠커는 BDT의 투자분쟁 심사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워런 버핏 Warren Buffett
골드만삭스 재직 시절 버핏의 은행 업무를 맡았던 경험은 트로트의 커리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수년간 버핏을 위해 다수의 거래를 중개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골드만 삭스에 거액의 투자를 한 것도 그중 하나다.
앤디 테일러 Andy Taylor
엔터프라이즈, 알라모 Alamo, 내셔널 카 렌털 National Car Rental을 소유한 앤디 테일러 CEO 겸 회장은 수년간 트로트의 조언을 구해왔다. 테일러는 BDT의 자금조성 고문단의 일원이다.
토리 버치 Tory Burch
그녀는 전남편의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 재정 자문가, 투자가, 그리고 대화가 잘 통하는 조언가가 필요했다. 트로트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현재 BDT는 토리 버치의 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윌리엄 ‘보’ 위글리 주니어 William “Beau” Wrigley Jr.
트로트는 1999년부터 추잉검 기업의 후계자 리글리에게 자문 서비스를 제공했다. 특히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를 받아 리글리를 마스에 매각하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리글리는 현재 BDT의 고위 고문단 일원이다.
롭 월튼 Rob Walton
샘 월튼 Sam Walton의 장남이자 월마트 회장인 그는 BDT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해왔을 정도로 트로트와 각별한 사이다. 트로트와 산 오르는 골드만 시절부터 오랫동안 월튼 일가에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