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중반 '전격 Z 작전'이라는 TV 외화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이 외화의 백미는 주인공이 자동차 '키트'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이 손목시계에 '빨리 와! 키트'라고 말하면 어디에선가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왔다.
외화가 방영된 지 3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IT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여전히 말로 자동차를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시계에 대고 말해 다른 장치를 작동시키는 건 가능해졌다. 바로 '웨어러블 기술(Wearable Technology)'이 적용된 '웨어러블 디바이스' 덕분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정의는 단순하다. 말 그대로 '웨어러블(입을 수 있는)+디바이스(IT 기술이 탑재된 기기)'다. 옷, 시계, 안경 등 우리가 몸에 착용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첨단 IT 기능이 추가되면 통상 '웨어러블 디바이스'라 불린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더 이상 '꿈의 기기'가 아니다. 주요 IT업체들은 일찌감치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에 주목하고 웨어러블 상용화에 나섰다.
이 같은 트렌드는 지난 1월 개최된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 2015'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씨넷, 매셔블 등 주요 해외 IT 매체들은 CES 시작 전부터 'CES 2015의 키워드는 웨어러블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증명하듯 삼성, LG, 소니, 모토로라, 인텔 등 주요 글로벌 IT업체들은 웨어러블 기능이 탑재된 디바이스를 줄지어 선보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CES 2015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스마트폰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도 빼놓을 수 없다. 양사는 오래전부터 웨어러블 시장을 염두에 둔 제품 개발에 몰두해왔다. 이미 출시된 몇몇 제품은 벌써 웨어러블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업계에선 올해를 기점으로 이른바 '웨어러블 빅뱅'이 본격화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기업들의 움직임에서 이 같은 예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삼성, LG, 애플, 구글 등 주요 업체들은 서로 짠 듯이 핵심 기술 역량이 집적된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줄지어 출시할 예정이다.
포춘코리아가 IT업계의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웨어러블 기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올해부터 본격화될 웨어러블 빅뱅의 미래를 전망해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연구는 지난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미국 매사츄세츠 공과대학(MIT)의 이반 슈터랜드 Ivan Sutherland 교수는 지난 1968년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ead Mount Display, HMD) 방식의 기기 '다모클레스의 칼(The sword of Damocles)'을 개발했다.
이 장비를 머리에 착용하면 가상세계가 첨가된 실제 환경을 볼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요즘 상용화되고 있는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눈으로 보는 현실 세계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 기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실험실이나 특정 장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신체에 착용하는 컴퓨터라는 점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태동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지금의 휴대용 형태로 등장한 건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웨어러블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티브 만 Steve Mann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이던 지난 1981년,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컴퓨터를 운용할 수 있는 이른바 '배낭형 PC'를 개발했다. 배낭형 PC의 구성과 작동원리는 단순했다. 전력을 공급하는 배터리를 내장한 컴퓨터를 등에 메는 식이었다. 작동에 필요한 각종 배선은 의복 안감에 넣고, 실로 꿰매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 했다. 얼핏 보면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스티브 만 교수가 '웨어러블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현재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개념을 정립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스티브 만 교수는 연구논문을 통해 "미래의 웨어러블 컴퓨터는 시각적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기 시작했다. 초기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군사용 목적으로 연구됐다. 위성항법장치(GPS) 시스템을 활용한 위치 탐색, 전장 내 군인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장비가 그 시발점이었다. 이후 HMD 기술이 적용된 각종 군사용 기기는 야간 작전 수행과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데 널리 활용됐다. 그리고 미국의 꾸준한 노력은 마침내 2001년 미군에 보급된 군사용 웨어러블 컴퓨터 '랜드워리어 (Land Warrior)'로 꽃을 피웠다. 15년간 약 1,000억 원이 투입된 '랜드워리어' 시스템은 GPS와 무선통신장치 등이 군복과 결합한 형태였다. 헬멧 디스플레이를 통해 위치 파악과 공격 명령 하달이 가능해 '미래병사'의 모델로 평가받았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민간 업체의 연구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지난 2002년 미국의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업체 자이버넛 Xybernaut은 보급형 웨어러블 컴퓨터를 표방한 '모바일 어시스턴트 (V Mobile Assistant V)'를 출시했다. 허리 벨트에 부착 가능한 손바닥 크기의 데스크톱 본체와 머리에 쓰는 안경 형태의 디스플레이로 구성된 기기였다.
특히 일반인에게 익숙한 윈도XP, 윈도2000, 윈도98 등의 운영체제를 도입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이버넛은 이 제품의 상용화에 실패했다. 문제는 '심미성(審美性)'이었다. 기능은 특별했지만, 일반인이 착용하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따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제품은 군사 및 산업 분야에 한정해 사용되었다.
이때부터 주요 IT기업들은 성능과 심미성을 두루 갖춘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상품가치가 있고 상용화가 가능한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개발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들어온 적당한 기기가 있었다. 대다수 사람이 실생활 속에서 널리 사용하는 제품, 작은 크기에 미적으로도 나무랄 데 없는 제품, 바로 '시계'였다.
웨어러블 상용화의 첫 단추 '스마트워치'
전자기능이 탑재된 손목시계가 처음 출시된 때는 1977년이었다. 휴렛팩커드(HP)가 개발한 손목시계 'HP-01'은 간단한 계산 기능이 탑재된 최초의 손목시계 계산기였다. 이후 시계 제조업체 세이코가 지난 1984년 연산과 프로그래밍 등 컴퓨터 기능이 탑재된 최초의 손목시계 'UC-2000'을 출시했다. 최대 26K 램(RAM)을 지원한 이 시계는 전용 키보드가 별도 구성품으로 포함됐다. 키보드 형태의 확장기기에 시계를 연결하면 베이직 프로그래밍을 비롯한 간단한 프로그램 구동이 가능했다.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사용하는 현재 스마트워치의 효시는 지난 2003년 출시된 파슬 Fossil의 손목 PDA(Wrist PDA)였다. 손목 PDA는 미국 PDA 업체 팜소스에서 개발한 팜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기본적인 시간 알림 기능과 스케줄 및 연락처 확인, 간단한 게임서비스를 제공했다. 특히 다른 PDA와 적외선을 통한 자유로운 데이터 교환이 가능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상용화의 길은 여전히 멀어 보였다. 손목 위에서는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손목을 벗어난 작업은 불가능했다. 인터넷 등 통신환경과 접속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나 이종 기기(heterogeneous instrument)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스마트워치에 날개를 달아줄 디바이스가 등장했다. 바로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의 무선통신 기술은 스마트워치의 상용화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휴대폰과 연동된 첫 번째 스마트워치는 지난 2006년 10월 출시된 소니에릭슨의 'MBW-100'이었다. 블루투스 기반의 스마트워치로 피처폰과 연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음악 재생, 발신자 확인 등 단순한 기능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
휴대폰 기능을 탑재한 첫 번째 스마트워치를 내놓은 곳은 국내 기업 LG전자였다. LG전자는 2008년 11월 '프라다링크'라는 이름의 스마트워치를 출시했다. 프라다링크는 당시 선보인 프리미엄 피처폰 '프라다2'의 번들 형태로 판매된 제품이었다. 휴대폰에 걸려온 전화를 시계를 통해 받을 수 있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한편 삼성은 이보다 한발 늦은 2009년 7월 '울트라 슬림 워치폰'을 출시했다. 음성통화뿐 아니라 문자메시지 전송, 음악 재생, 이메일 확인, 음성 메모 등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주요 글로벌 IT기업들은 다양한 스마트워치를 출시하며 시장의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웨어러블 시장은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높은 판매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출시 당시 책정된 프라다링크와 울트라 슬림 워치폰의 판매가격은 60~80만 원 수준.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한 고가의 가격정책은 스마트워치 시장을 여는 데 실패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스마트워치 시장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던 2009년, 또 다른 곳에서 조용히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변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애플'이었다.
애플 아이폰, 웨어러블 시장을 깨우다
애플의 아이폰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처음 연 주인공이다. 지난 2009년 6월 출시된 애플 '아이폰 3GS'는 단순한 스마트폰을 벗어나 애플리케이션 시장이라는 새로운 생태계를 탄생시켰다.
아이폰이 활짝 연 스마트폰 시장은 이후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했다.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모토로라 등 국내외 기업들의 강력한 대항마로 등장했다. 경쟁적으로 첨단 기능을 탑재한 신형 스마트폰 기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경쟁도구는 기기 제조사 간 경쟁을 넘어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양분하고 있는 iOS의 애플과 구글 안드로이드의 구글 간 진영 대결로 확산하기에 이르렀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생존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경쟁은 수년간 계속됐다. 그 사이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태블릿PC, 패블릿(폰과 태블릿의 합성어로 태블릿 기능이 포함된 스마트폰)으로 시장을 확장하며 새로운 제품군 확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기술력은 이미 확 보된 상황이었다. 그동안 축적된 첨단기술 노하우를 뽐낼수 있는 혁신적 무기가 필요했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한 번의 실패를 맛봤지만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시장, 바로 웨어러블 디바이스 '스마트워치'였다.
제2의 스마트워치 대전의 시동은 애플이 먼저 걸었다. 애플이 이른바 손목형 아이폰 '아이워치(iWatch)' 개발에 나섰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주요 경쟁사들은 애플 아이워치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시장 선점을 위해 재빨리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시작은 삼성전자였다. 2013년 9월 선보인 '갤럭시 기어'가 그 주인공이었다. 갤럭시 기어는 같은 시기 공개된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3'보다 더욱 주목을 받았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갤럭시 스마트폰과의 연동, 카메라와 피트니스 기능 탑재는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거 '워치 폰' 때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는 듯 출고가 역시 40만 원대로 낮췄다. 이후 삼성은 2014년 '갤럭시 기어'의 후속작 '기어2', '기어 핏', '기어2 네오'를 잇달아 선보이며 웨어러블 시대의 선두 기업임을 과시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이 같은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지산 키움 증권 애널리스트는 말한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앞선 기술로 시장에 먼저 발을 들여놓았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삼성은 그동안 꼬리표처럼 달고 있던 '애플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라는 오명을 벗고 웨어러블 시장에서만큼은 '퍼스트 무버(Fisrt Mover, 선도자)'로 인식을 바꿀 수 있었어요."
LG전자도 수수방관만 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LG전자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라이프 워치 밴드'에 이어 'G워치'를 선보이며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과 LG, 애플이 이처럼 '스마트워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전 세계 스마트폰 OS 점유율 1위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보유한 구글은 시계가 아닌 웨어러블 안경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었다. 바로 '구글글래스(Google Glass)'였다. 구글글래스는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안경이다. 안경테 오른쪽에 카메라 렌즈를 포함한 하드웨어 부품을 부착한다. 사용법도 단순하다. 전원을 켜고 안경테 부분에 위치한 터치패드를 움직여 안경에 보이는 화면을 조작할 수 있다. 조그만 마이크를 통해 음성인식으로도 제어할 수 있다. 화면은 앞서 언급한 HMD 기술로 구현된다. 안경에 부착된 프로젝터에서 프리즘으로, 다시 프리즘에서 착용자 안구로 영상을 뿌린다. 그 과정을 통해 착용자는 HD급 디스플레이로 각종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구글글래스는 스마트워치로 압축되는 듯했던 웨어러블 시장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구글글래스 사용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할 필요없이 눈으로 보는 것을 목소리만으로 제어할 수 있다. 구글글래스는 과거 웨어러블의 개념이 모호하던 시절, 일부 과학자들이 정의한 '핸즈 프리(Hands Free) 디바이스'를 현실화시킨 유일한 기기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미 시작된 웨어러블 빅뱅
IT업계에선 올해를 기점으로 웨어러블 시장이 폭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른바 '웨어러블 빅뱅'의 원년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대다수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 역시 웨어러블 시장에 대해 낙관적인 예측을 쏟아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올해 글로벌 웨어러블 기기 출하량을 7,971만 대로 전망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1,200만 대 증가한 수치다. 또 다른 조사기관 스태티스타는 올해 웨어러블 시장 규모가 71억 달러(한화 약 7조 8,000억 원)에 육박할 것이라 예측했다. 이는 전년 대비 18억 달러 이상 증가한 수치. 이 같은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오는 2018년에는 126억 달러(한화 약 13조 8,100억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웨어러블 빅뱅의 조짐은 연초부터 관측되고 있다. 웨어러블 시장에 뛰어든 주요 기업들이 처음으로 동시에 제품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애플의 스마트워치 '애플워치'가 존재한다.
지난 4월 10일(현지시각) 미국, 영국, 호주 등 9개 국가에서 온라인 예약판매가 시작될 애플워치는 예약판매 시작 6시간 만에 전 모델이 품절될 정도로 폭발적 반응을 보였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주요 외신은 예약판매 첫날 애플이 판매한 스마트워치가 100만 대에 육박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는 삼성, LG, 모토로라 등 주요 기업의 지난해 스마트워치 판매량 72만여 대를 가뿐히 넘어서는 판매량이다.
사실 애플워치의 초반 흥행 성공은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애플이 그동안 고수해온 '신비주의 전략'을 과감히 깬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국내 IT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애플은 그동안 신제품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제품 공개 직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 왔어요. 그런데 이번 애플워치의 경우는 조금 달랐죠. 지난해 9월 애플워치를 미리 공개하고 출시 전까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을 지원하며 애플워치 생태계 조성을 준비했어요. 애플이 '앱스토어'라는 생태계를 기반으로 아이폰을 성장시켰듯, 애플워치 역시 아이폰의 성공방정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애플이 이번 애플워치의 홍보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TV 광고 조사업체 아이스팟 iSpot.tv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한 달간 애플이 애플워치 TV 광고비로 사용한 금액은 3,800만 달러(한화 약 416억 원)에 달했다. 이는 애플이 지난 5개월간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의 TV 광고비로 사용한 4,200만 달러(한화 약 460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 웨어러블 전문가인 알렉스 가우나 JMP증권 선임 애널리스트는 "아이폰6 시리즈는 충성고객을 갖고 있지만 애플워치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며 "아이패드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새로운 분야의 제품인 만큼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리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애플워치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존재한다. 바로 '혁신의 부족'이다. 사실 혁신의 부족은 팀 쿡 체제 출범 이후 애플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고 있다. 일부 외신과 IT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애플워치 출시 직후부터 제품의 혁신성 부족을 꼬집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애플은 사람들이 애플워치를 왜 사야 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성능뿐 아니라 그동안 애플의 강점 중 하나로 꼽혔던 디자인 측면에서도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도 애플워치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송은정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애플워치는 웨어러블 기기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며 "특히 기능 면에선 기존에 출시된 스마트워치와 차별점을 발견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김혜용 NH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애플워치에선 스마트폰을 대체할 만한 기술이나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기능에 비해 비싼 판매가격과 차별화 실패는 애플워치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현재 애플워치의 글로벌 판매가격은 최저 349달러(한화 약 38만 원)에서 최고 1만 7,000달러(한화 약 1,850만 원) 수준이다. 국내 판매가격은 아직 미정이다.
제품 자체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적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애플워치가 웨어러블, 특히 스마트워치 시장을 재편할 것이라는 의견에는 대다수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다. 파이퍼 제프리의 진 먼스터 애널리스트는 올해 애플워치가 총 800만 대 팔릴 것이라 전망했다. 이 경우 올해 애플워치가 거둬들일 매출은 44억 달러(한화 약 4조 8,25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투자사 소시에테 제네랄은 지금 같은 흥행세가 이어진다면 애플워치가 올해 글로벌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절반이 넘는 55%의 점유율을 기록할 것이라 내다봤다.
애플워치를 등에 업은 애플이 파상 공세를 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각각 신형 스마트워치를 출시하며 '웨어러블 전쟁'에 합류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히든카드는 프로젝트명 '오르비스'로 알려진 스마트워치 '기어A(가칭)'. 아직 삼성전자 측은 이번 '오르비스' 프로젝트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최근 갤럭시S6 월드투어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신종균 IM부문 사장도 차기 스마트워치에 대한 질문에 "머지않아 후속작이 나올 계획"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밝힌 바 있다. 다만 삼성전자가 지난 3월 스페인에서 개최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5'에서 오르비스를 공개하려 했다는 점에 비춰본다면, 어느 정도 개발은 완료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요 해외 IT매체를 통해 공개된 오르비스는 두 가지 모델이다. 자체 통화기능을 갖춘 3G 통신망 지원 모델과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모델. 통신기능을 제공하는 모델명은 SM-R730, 블루투스 기능을 지원하는 모델명은 SM-R720으로 알려졌다.
오르비스에 대한 기대치는 아이러니하게도 애플워치 출시 이후부터 커지기 시작했다. 바로 '배터리' 때문이다. 애플워치를 혹평하는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짧은 배터리 사용시간을 지적한다. 애플은 100% 충전 한 번으로 18시간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5시간도 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의 오르비스에는 갤럭시 S6에 최초로 탑재된 '엑시노스7420'이 그대로 이식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엑시노스7420은 14나노 공정 기술로 만든 64비트(bit) 옥타코어칩으로, 구동 속도와 전력효율 면에서 기존의 듀얼코어 칩보다 향상된 성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전력 소모량을 기존 대비 30% 이상 감소시켜 배터리 사용시간을 늘려준다. 그럴 경우 오르비스는 한 번 충전으로 4~5일간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전작인 기어S보다 1~2일 증가한 수치일 뿐만 아니라 애플이 공식적으로 밝힌 배터리 사용시간 18시간을 압도하는 수치이다.
오르비스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차별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오르비스는 기존 사각형 디스플레이를 벗어난 원형 디스플레이와 회전식 다이얼 기능을 탑재한다. 또 삼성전자는 샤넬, 디올 등 글로벌 명품 패션 브랜드와 손잡고 차별화된 디자인의 프리미엄 스마트워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미 유럽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7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퍼스트무버'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히고 있다. 웨어러블 시장의 중심인 스마트워치 분야에서 우위에 있는 만큼 애플과의 경쟁에서도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 같은 자신감은 로리 오넬 삼성전자 유럽지사 모바일 부문 부사장의 발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따라 스마트워치 시장에 진출할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애플의 등장은 이 시장을 더욱 성장시킬 촉매제가 될 거예요. 우리는 그동안 스마트워치 생산을 반복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결론적으로 소비자가 기뻐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고,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달리, LG전자는 이미 차세대 스마트워치 제품을 공개하고 판매에 돌입한 상황이다. LG가 선보인 'LG 워치 어베인 Urbane'과 '어베인 LTE'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MWC 2015'에서 최초 공개된 어베인 시리즈의 가장 큰 강점은 디자인이다. 아날로그 시계와 유사한 디자인의 어베인에 대해 외신들은 "명품 시계업체가 만든 제품으로 착각할 정도"라며 호평을 쏟아냈다.
이 같은 찬사에는 조준호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본부 사장의 전략이 단단히 한몫했다. 조 사장은 일찌감치 스마트기기의 '스펙 경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디자인으로 승부를 낼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경쟁사들이 금속, 유리를 소재로 세련미를 강조하는 것에 착안해 오히려 복고풍 감성의 클래식함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그리고 그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LG 워치 어베인 시리즈는 지난 MWC 2015에서 해외 유력 매체로부터 9개의 상을 받으며 'MWC최고 스마트워치'로 선정됐다. 아직 어베인 시리즈의 해외 판매가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 같은 평가는 LG전자의 향후 글로벌시장 공략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술 측면에서도 어베인 시리즈는 차별화에 도전했다. 어베인 LTE는 세계 최초로 LTE 통신 모듈을 탑재했다. 스마트워치 단독으로 LTE 통화와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하도록 했다. 일반 무전기처럼 다자간 대화가 동시에 가능한 음성메시지 서비스 'LTE 무전기' 기능을 추가해 기능성을 한층 높였다. 조준호 LG전자 사장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웨어러블 기기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 톱3를 달성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애플, 삼성전자, LG전자와 달리 구글은 웨어러블 시장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 야심 차게 내놓은 구글글래스 프로젝트가 사실상 중단된 가운데 '구글 워치'도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구글이 유독 웨어러블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구글의 핵심 무기인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는 알려진 대로 오픈소스 형태의 운영체제다. 누구나 아무 제약 없이 안드로이드 OS를 수정하고 이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다(물론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일정한 로열티를 구글에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용 안드로이드와는 달리 웨어러블 디바이스 전용 OS인 ‘안드로이드웨어’는 오픈소스가 아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웨어에 대해선 애플 iOS와 마찬가지로 폐쇄적 운영을 고집하고 있다. 이유는 바로 수익성 때문이다. 애플은 자사의 iOS를 독자적으로 활용하며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 반면 구글은 스마트폰용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로 운영해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안드로이드웨어의 기능이 기존 업체들을 만족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안드로이드웨어는 블루투스를 제외한 결제, 통신 기능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마트워치 제조사는 통신기능이 필수인 스마트폰과의 연동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 결과 안드로이드웨어에 대한 수요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자사 스마트워치에 자체 개발한 타이젠OS를 탑재했고, LG전자 역시 'LG 웨어러블 플랫폼'이라는 독자 OS를 적용했다. 애플은 당연히 iOS 기반으로 애플워치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구글의 부진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구글은 여전히 스마트폰 시장에서 든든한 아군들을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폰용 안드로이드는 매력적인 운영체제다. 현실적으로 애플을 제외한 주요 제조사들은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OS를 상용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웨어의 폐쇄적 운영 기조를 수정할 경우, 아군들이 구글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글에는 웨어러블 시장을 한 차례 뒤흔들었던 비장의 무기 '구글글래스'가 있다. 구글글래스 프로젝트는 현재 시판이 잠시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에릭 슈미트 구글 CEO를 포함한 수뇌부가 여전히 구글글래스에 대한 믿음을 보이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수준의 구글글래스가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업계에선 새롭게 구글글래스 프로젝트의 지휘를 맡은 토니 파델의 마법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애플에서 혁신적인 디자인 개발로 명성을 높인 토니 파델이 지휘봉을 잡은 만큼, 구글글래스가 보다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웨어러블 빅뱅, 승자의 조건은?
글로벌 웨어러블 빅뱅은 이미 시작됐다. 스마트워치로 촉발된 웨어러블 전쟁은 점차 다양한 분야로 확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웨어러블 빅뱅이 그들만의 전쟁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비자에게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고,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웨어러블 빅뱅은 공허한 IT전쟁으로 끝날 공산도 있다. 그렇다면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캐즘(Chasm, 높은 관심을 받은 신제품이 시장 진입 초기에서 대중적 보급이 이뤄지기 전까지 수요가 정체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배터리, 무게, 입력방식 등에서 기술장벽을 해소하고 경제성을 높이는 것을 꼽고 있다. 권기덕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웨어러블 기기의 경우 상시 착용' 이라는 특성상 배터리 용량과 무게 경량화가 매우 중요하다"며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같은 가벼우면서도 선명한 신소재의 활용과 저전력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웨어러블 기기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선 소비자가 수용할만한 수준의 가격이 책정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권 연구원은 말한다. "여전히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스마트폰의 부가기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문에 수용 가능한 수준의 가격책정 여부가 대중화의 관건이 될 겁니다. 그 밖에도 저비용으로 풍부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생태계의 활성화가 중요합니다."
디자인의 고급화와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 극복 역시 또 다른 승자의 조건으로 꼽히고 있다. 최보성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 연구원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전자제품이라기보단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창의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또 "구글글래스 사례에서 입증됐듯이, 웨어러블 디바이스 사용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안 및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노력도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눈에 띄는 웨어러블 중소 기업들]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은 글로벌기업과 대기업만의 격전장이 아니다.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국내중소기업들도 앞다퉈 웨어러블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국내 웨어러블 디바이스 중소기업들은 헬스케어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헬스케어 기업 인바디는 손목에 차는 형태의 웨어러블 디바이스 ‘인바디밴드’를 선보이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인바디밴드는 심장 박동 수와 체성분 분석이 가능한 웨어러블 체성분 분석기다. 이미 글로벌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인바디는 지난 1월 열린 CES 2015에 인바디밴드를 출품해 웨어러블 테크놀로지 부문 혁신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스타트업 쓰리엘랩스 3L-Labs가 개발한 ‘풋로거 FootLogger’는 신발 깔창에 내장한 압력센서로 발걸음을 분석해 건강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다. 풋로거 내부에는 8개의 압력센서, 3축의 가속도센터, 무선충전전지, 정보 저장장치가 탑재되어 있다. 풋로거 사용 후 무선 충전기술이 적용된 장치 ‘슈스테이션’에 올려놓으면 센서가 충전되면서 자동으로 저장된 걸음 정보가 블루투스를 통해 인터넷으로 전송된다. 쓰리엘랩스 역시 인바디와 마찬가지로 지난 CES 2015에서 ‘웨어러블 테크놀로지’ 부문 혁신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유즈브레인넷은 반지 형태의 웨어러블 장치 ‘모션링’을 개발해 호평받고 있다. 사용자는 반지를 집게손가락에 장착한 후 손동작으로 각종 전자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 예컨대 손가락을 움직여 TV 채널을 변경하거나 음량을 조절할 수 있는 식이다. 또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리모컨, 프레젠테이션, 웹 브라우저, 미디어 플레이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디바이스 호환성이 높아 TV, PC, 안드로이드 스마트폰·태블릿에서 모두 인식할 수 있다. 저전력 배터리를 장착해 연속 동작 6시간, 사용 대기 20시간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약 80여 가지 제스처 동작 인식을 개발한 유즈브레인넷은 개발자용 API를 공개하고 관련 응용프로그램도 추가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