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연구결과
가장 대표적인 것이 1877년 리처드 덕데일 박사의 '주크 가(家)' 연구다. 덕데일 박사는 주크 가문 6명이 뉴욕의 한 구치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5대손까지 총 709명을 종단 조사했다. 살인범과 절도범이 67명이나 됐고, 알코올 중독과 매춘 등의 기타 범죄를 포함하면 무려 절반이 범법자였다. 이를 바탕으로 덕데일 박사는 범죄의 유전성을 피력했다.
독일의 범죄생물학자 요하네스 랑게 박사팀의 연구에서도 범죄의 유전 가능성이 확인됐다. 그는 범죄의 원인이 유전에 있다면 일란성 쌍둥이, 이란성 쌍둥이, 일반인 형제 순으로 범죄의 유사성이 나타날 것이라는 추측에서 출발해 13쌍의 일란성 쌍둥이와 17쌍의 이란성 쌍둥이를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이 범죄자였을 때 다른 한명도 77%가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었다.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 그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랑게 박사팀의 연구가 환경적 영향을 완벽히 배제하지 못했다면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입양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태어나자마자 입양된 아이가 양부모가 아닌 친부모의 범죄 경력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면 유전이 범죄의 원인이라는 가설이 입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구팀은 1927년부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출생한 143명의 입양아 범죄자, 그리고 그와 동일한 수의 입양아 비범죄자의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친부와 양부 모두 비범죄자(10.5%)거나 양부만 범죄자인 경우(11.5%)보다 친부가 범죄자인 경우에 입양아도 범죄자인 비율(21%)이 두 배가 높았다. 하지만 친부와 양부 모두 범죄자일 때는 입양아의 범죄 비율이 3배(36.2%)로 급증, 유전적 영향도 있지만 환경적 영향도 큰 것으로 밝혀졌다.
즉 '범죄자는 타고 난다'는 가설을 입증하려던 시도들의 대부분은 한정된 데이터와 일반화에 무리가 있는 사례 연구로 귀결됐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유전적 영향이 있지만 환경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회색분자 같은 중립적 결론에 도달했다. 때문에 부모에게 맞고 자란 아이가 커서 주먹을 휘두른다는 식의 상식은 더욱 공고해졌다.
유전자는 알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벨 생리의학상을 선정하는 유명 의과대학인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최근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니클라스 랭스트룀 교수팀이 성범죄의 가족력, 즉 유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1973년부터 2009년까지 스웨덴에서 발생한 2만 1,566건의 성범죄 기록을 분석한 결과, 성범죄와 유전의 연관성이 유의미한 수준에서 확인된 것이다.
연구팀은 성범죄의 유전성을 밝히기 위해 공식 자료를 대규모로 활용했다. 공익적인 연구라고 해도 성범죄자와 그 가족의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큰 일이었지만 스웨덴의 경우 전국적인 다세대등록제도(MGR)를 시행하고 있어 익명의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범죄기록과 가족의 관련성을 분석하는 게 가능했다.
연구는 성범죄자의 아버지와 아들, 함께 자라거나 따로 자란 형제들을 비교분석 함으로써 환경과 유전자가 각각 성범죄에 미치는 영향력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심증으로만 여겨졌던 성범죄의 부계유전이 나름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성폭행과 아동 성범죄의 두 항목에서 성범죄자의 남성 친족 중 약 2.5%가 유사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남성의 성범죄율은 단 0.5%였다. 아버지나 형제가 성범죄자인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성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5배나 높다는 얘기다.
그렇게 연구팀은 성범죄의 40% 정도가 유전적 요인과 관련 있었으며, 환경적 조건에 의한 영향은 2%로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랭스트룀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는 성범죄자의 아들이나 형제가 반드시 성범죄자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계 내에 위험 인자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들 고위험 가족군을 대상으로 바람직한 성적 행동에 대해 조언하거나 약물을 제공하는 등 예방적 조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유전적 위험이 과장됐다!
그러나 랭스트룀 교수팀의 결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다른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에 참여했던 연구자 중 일부도 몇 가지 한계에 대해 경고하며 연구결과의 해석에 앞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말한다.
먼저 범죄의 유전적·환경적 요인을 다룬 기존의 연구 대부분에서는 아동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경우 성인이 되어서 학대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도출됐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성범죄자의 어릴 적 경험을 상세히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성적 충동이나 성욕과 관련된 유전적 요인이 성범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연구팀은 관련성이 확실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분석 대상에서 배재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회의론자들은 성범죄자와 그 가족들에 관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패턴을 찾아내기에 충분한 데이터의 수집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랭스트룀 교수팀 역시 비교적 대량의 자료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부족이라는 상황에 직면하자 추가적인 데이터의 확보를 위해 아동 포르노물 소유자와 성기노출자에 이르는 광범위한 성범죄 유형을 뭉뚱그려 분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덧붙여 연구팀이 범죄기록에 의존한 부분도 한계로 지적된다. 사실상 많은 성범죄들이 신고 되지 않고 있으며, 법정 판결까지 가는 비율은 더욱 낮기 때문이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할 때 성범죄를 둘러싼 유전과 환경과의 책임공방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시간을 되돌려 범죄를 원천차단하려는 세상을 그렸다면 마이클 코디의 소설 '크라임 제로'는 인간의 범죄 유전자를 제거해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이들의 음모를 그리고 있다. 이 같은 발상이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지난 4월말 중국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했다는 소식이 지구촌 전역에 타전된 것. 유전자 편집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잠재적인 질병 유전자를 미리 제거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배아나 생식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하면 그 결과가 후세에 영구적으로 유전돼 예기치 못한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에 국제사회는 그동안 '인간의 생식세포를 변형시켜서는 안된다'는데 합의해왔었다.
그런데 루머로만 떠돌던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이 공식 확인되면서 전 세계 과학계는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찬성 측은 윤리적 문제나 잠재적 위험성 때문에 유전질환 치료를 가능하게 할 유전자 편집을 거부하는 것은 합병증 때문에 수술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펼친다. 한발 더 나아가 오직 연구만을 위해서라면 임상 적용과 무관하게 수많은 기초과학적 의문에 답할 수 있으니 생식세포 변형을 허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유전자 편집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이 기술의 미숙함을 고려해 인간 배아의 관련 연구를 일절 중단해야 하며, 유전자 편집의 위험성은 기존의 위험성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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