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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향한 과학의 여정

과학이 가진 최대 아킬레스건은 과학의 최대 강점이기도 하다.

* 이 글을 쓴 앨런 라이트먼은 미국 MIT의 실용 인문학 교수이자 물리학자, 소설가, 수필가다. 그의 작품 중에는 미국 최고의 문학상인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Award)'의 결선에 오른 것도 있다.


40년 전 6월 캘리포니아공대 졸업식날.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필자를 포함한 애송이 생물학자와 화학자, 물리학자들은 검은색 가운을 입은 채 교정 잔디밭의 의자에 앉아 땀을 비 오듯 쏟고 있었다.

그때 연단 위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역사로 초빙된 전설적인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박사였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파인만 박사는 앞으로 새로운 과학적 성과를 창출했더라도 세상에 알리기 전에 그것이 잘못되었을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는 실로 어려운 요구였다.

최근의 사례를 예로 들면 2014년 3월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에 의해 '인플레이션 이론(the theory of inflation)'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가 발견됐다. MIT의 앨런 구스 박사, 스탠퍼드대학 안드레이 린데 박사 등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1980년대 초에 주창한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 직후 '10의 36승 분의 1초'만에 기하급수적 속도로 팽창했고, 이 급팽창은 빅뱅 후 '10의 33승 분의 1초' 또는 '10의 32승 분의 1초'에 멈췄다. 그 이후 우주의 팽창 속도는 표준 빅뱅 모델에서 말하는 한층 여유 있는 속도로 느려졌다.

쉽게 말해 인플레이션 이론은 빅뱅 후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빅뱅 모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의 설명이 가능해 물리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던 수년 전 인플레이션 이론에 의거해 먼 우주에서 지구로 유입되는 전파, 즉 우주배경복사에 특정한 꼬임 패턴(편광)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리고 작년 봄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연구팀이 남극의 '바이셉2(BICEP2)' 전파망원경을 활용, 무려 3년 동안 연구할 분량의 방대한 데이터를 찾아냈다. 당시 이 연구팀에는 존 코박 센터장을 필두로 5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소속돼 있었다.

연구팀의 성과는 즉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코박 센터장에 의하면 한 언론은 '우주 인플레이션에 대한 최초의 직접적 증거'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 신호를 탐지함으로써 현대 우주론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달성됐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스탠퍼드대학은 연구팀원들이 노벨상 수상을 확신하는 분위기 속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자축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영상 속 한 연구자는 흥분된 어조로 린데 박사에게 "우주 인플레이션의 결정적 증거를 찾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 1월 유럽의 한 천문학 연구팀이 유럽우주국(ESA)의 '플랑크(Planck)' 위성이 관측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주배경복사의 편광은 우주 탄생 시의 독특한 과정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편광의 원인은 다름 아닌 '성간(星間) 먼지'였다.

이 오류는 코박 박사팀이 연구를 엉성하게 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잘못이 있다면 파인만 박사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연구팀은 금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해내겠다는 흥분 때문에 다른 과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던 성간 먼지의 영향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

열정적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성과를 너무 일찍 발표한 이런 사례는 과학사에 차고 넘친다. 암 정복의 기대를 높였던 1970년대의 '레이어트릴(Laetrile)' 항암제, 1975년 발견됐다고 발표된 자기 홀극, 그리고 1989년 미국 유타대학의 마틴 플라이슈만 교수와 스탠리 폰즈 교수의 상온 핵융합 성공 발표가 그 실례다. 이들은 모두 후일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오류가 입증됐다.

역사가와 과학 철학자들은 더러운 비밀을 알고 있다. 개별 과학자의 연구관행 속에서는 과학계가 수없이 강조하는 '과학적 방법'이나 진실을 찾아가려는 '과학의 목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과학자 개개인은 열정과 편견, 감정에 이끌린다는 점에서 비과학자와 다르지 않다. 과학적 방법과 목적은 학계의 여러 학자들이 힘을 합쳐 꾸준히 타인의 연구를 검증하고 비판할 때에만 유효하다.


이와 관련 프랜시스 베이컨은 4세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이해는 '편견 없는 견해'가 아니다. 거기에는 의지와 감정이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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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해는 주목할 만한 연구들이 다수 진행되고 있어 베이컨의 이 말을 더욱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실제로 올 3월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인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가 2년의 공백 끝에 기존보다 2배 더 강해져서 재가동됐다. 2012년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 입자(Higgs boson)'를 발견해낸 LHC는 올해 우주의 약 27%를 이루고 있다는 신비의 아원자 입자인 '암흑 물질(dark matter)'을 찾는데 활용된다.

또 다른 곳에서는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팽창을 가속화시키는 일명 '암흑 에너지(dark energy)'의 존재 확인을 위해 4건 이상의 대규모 실험을 준비 중이다. 천문학자들의 경우 ESA의 로제타 탐사선을 통해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67P/C-G)' 혜성과 명왕성, 세레스 소행성의 모습을 최초로 자세히 확인함으로써 태양계 생성의 비밀에 다가설 기회를 잡게 된다.

덧붙여 뇌의 신비를 파헤치기 위한 미국의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와 유럽연합(EU)의 '인간 뇌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가 올해 본격화될 예정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올해는 연구자들의 비(非)이성성이 과열될 개연성이 높다.

다만 이 시점에서 짚고 넘어갈 것이 하나 있다. 비이성성의 과열은 분명 위험하지만 필자는 비이성성이 과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성을 넘어서는 열정이 없다면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우거나 하나의 프로젝트에 수년~수십년 이상 매달리는 과학자들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연구의 긴장감을 견뎌내기도, 실패의 부담감을 떨쳐내기도 어렵다.

필자 역시 오랜 기간 천체물리학을 연구하며 눈을 뜨고 있는 매 순간마다 연구상의 문제를 고민했고, 중요한 계산을 할 때면 책상에 앉아 땅콩버터를 바른 빵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 계산에 모든 에너지와 사고력, 자아, 정체성, 자부심을 모두 걸었다. 이러한 헌신이 없으면 과학은 발전하지 않는다.

한 예로 물리학자 조셉 웨버는 작고하기 전까지 수십 년간 자신이 개발한 음향 실린더를 사용해 중력파를 관찰했다고 주장했다. 학계의 비판에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연히 그의 연구를 신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창안한 개념과 장비들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중력파 감지기의 기반이 됐다.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열정은 행운도, 불행도 가져다 줄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과학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연료인 동시에 시야를 가리는 안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과학과 예술, 인문학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는 한다. 과학은 원자와 분자로 이뤄진 외부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며, 예술과 인문학은 감정 및 감성으로 이뤄진 인간의 내부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과학자나 비과학자나 개인의 마음속에서는 이처럼 깔끔하게 뭔가를 구분 지을 수 없다. 그런 구분이 유용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과학의 근간에는 인간의 노력이 있다. 과학의 강점과 약점은 인간의 강점과 약점인 셈이다. 과학자는 진실만을 받아들이기 위해 파인만 박사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인류 전체를 수용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과학자이자 인문학자로서, 주체이자 객체로서, 이성적 인간이자 감정에 좌우되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세상과 자신을 알기 위해 애쓰면서 이 기묘한 우주를 여행하는 여행자로서 말이다.

10의 30승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급팽창(인프레이션)이 일어난 찰나의 순간 동안 '10의 20승' 또는 '10의 30승'배로 커졌다.

자기 홀극 (磁氣홀極, magnetic monopole) N극과 S극이 공존하는 일반적 자기(磁氣)와 달리 N극 또는 S극만을 지닌 자기 입자.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며, 실제 관측된 적은 없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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