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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의 끝을 향해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올해로 4년째 역대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정확한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산타크루스 캠퍼스의 고기후학자인 리사 슬로안 박사는 놀라운 예언을 하나 했다. 녹고 있는 북극의 빙하 때문에 미국에 엄청난 가뭄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빙하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북미 대륙을 지나는 겨울 폭풍의 진로가 바뀔 경우 알래스카에는 기존보다 많은 비가 내리는 반면 미국 서부지역의 강우량은 30%나 줄어든다.


당시 이 전망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사회적 이슈가 됐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그렇게 영원히 잊힐 뻔한 그녀의 논문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로 인해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앞서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캘리포니아주는 어떤 기준으로 봐도 사상 최악의 가 뭄에 시달리고 있다. 2011년 시작된 가뭄으로 연간 강수량은 최저, 연평균기온은 최고를 찍고 있으며 토양수분이나 지하수의 수위는 처참하리만치 낮다. 이에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지난 4월 제한급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미 국립가뭄완화센터(NDMC)의 자료를 보면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약 절반이 가장 심각한 등급인 ‘이례적 가뭄’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또한 적어도 올 연말까지는 지금의 등급이 유지될 전망이다. 앞으로 가뭄이 더 악화될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다.




현장 상황 역시 가히 묵시록적인 수준이다. 물을 주지 못해 정원의 잔디밭들은 갈색으로 변했으며, 주민들은 운하와 샌와킨 삼각주에서 물 을 훔치고 있다. 심지어 소방서의 물을 훔치는 좀도둑들도 있다. 농부들이 작물 경작을 포기하면서 농가의 손실이 최대 20억 달러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사라져 캘리포니아주 전체가 주저앉고 있다. 호황을 누리는 것은 오직 인조 잔디 업계뿐이다.

이토록 극심한 가뭄의 원인은 뭘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고, 기후변화는 절대로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블롭(blob)’이라 불리는 거대한 온수 덩어리를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과 슬로안 박사의 연구를 매치시켜 보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미래를 거의 정확히 예측했음에도 왜 그 원인을 확실히 모른다는 것일까.

현 위기의 가장 직접적 원인이 터무니없이 회복력 강한 기압능, 약칭 ‘트리플 R’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트리플 R이 형성되면 고 기압에 의해 정상적인 바람의 흐름이 차단되기 때문에 일명 ‘블로킹 기압능’이라고도 불린다. 시냇물에 큰 바위를 던져 넣었을 때 물이 바위 옆으로 돌아나가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트리플 R도 시냇물 속 바위처럼 세계 각지로 태풍을 실어 나르는 기류를 막아 태풍의 방향을 바꿔놓는 것이다.

트리플 R은 최근에 툭 튀어나온 기상현상은 아니다. 꽤 정기적으로 형성된다. 이따금씩 수천㎞ 상공을 뒤덮을 만큼 크기가 커질 때도 있다. 하지만 수주일 내에 신속히 소멸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주에 영향을 미친 녀석은 달랐다. 훨씬 오랜 기간 생존했다. 처음 관측된 것은 2012년~2013년의 우기 하반기 때였는데, 2014년 1월까지 소멸되지 않고 세력을 키워나가 캘리포니아주와 알래스카를 가로막았다. 그로 인해 제트기류는 물론 태평양에서캘리포니아를 향해 다가오던 모든 태풍의 경로가 북 쪽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북극권에 기록적인 비가 내린 반면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워싱턴주 는 바싹 말라 붙었다.

스탠퍼드대학 지구과학부 다니엘 스웨인 박사과정생에 의하면 이 트리플 R은 여전히 건재하며, 앞으로도 당분간 그 자리에 머물 확률이 높다. “이는 기상관측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또한 태풍이 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비껴가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트리플 R이 캘리포니아주 가뭄의 범인이라면 과연 트리플 R의 원인은 뭘까. 바로 이 시점부터 일이 복잡해진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2004년 슬로안 박사가 지목한 북극해 빙하의 용해다. 북극해의 빙하는 바다의 열기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을 막는 이불 역할을 하므로 빙하가 얇아지거나 없어질 경우 많은 열기가 대기 중에 유입된다. 그리고 이 열기가 트리플 R 같은 뜨거운 공기의 벽을 생성, 태풍의 방향을 변경시킴으로써 가뭄이 생길 것이라는 게 그녀의 예측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북극해의 빙하 용해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며, 지구온난화는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 상승의 산물이다. 그리고 스웨인과 그의 지도교수인 노아 디펜바우 박사의 2014년 연구논문에 따르면 현재의 온실가스 농도에서 트리플 R과 유사한 비정상적 고기압대의 발생이 용이해진다.

슬로안 박사와 디펜바우 박사팀의 발견을 종합해보면 캘리포니아주 가뭄의 원인은 기후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추가 질문이 하나 더 생긴다. 왜 가뭄이 멈추지 않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에 답을 얻으려면 작은 사고 실험이 필요하다. 가스레인지 위에 끓기 직전 온도의 물이 담긴 냄비가 놓여 있고, 물 중심에 참깨 하나가 떠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작은 공기방울들이 떠오르기 시작해 깨 주변에서 터질 것이다. 그때 가스레인지의 화력을 높이면 공기방울의 크기는 커지고, 상승속도도 빨라지게 된다. 그러다보면 공기방울 하나가 깨를 직접 타격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때 공기방울과 깨의 접촉은 화력을 높였기 때문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화력을 높이지 않았어도 공기방울이 깨와 충돌했을 수 있다. 가뭄과 폭풍, 혹서 등 모든 기상현상은 이 공기방울과 같다. 또한 지구온난화는 가스레인지의 화력을 높이는 손가락이라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가 기괴한 트리플 R의 탄생 확률을 높였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지구온난화가 없었다면 트리플 R도 생기지 않았다는 주 장은 어폐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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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말해 지구온난화에 의한 열기가 가뭄을 악화시켰을 수는 있다. 열기는 물의 증발을 촉진시키고, 땅을 건조하게 만드는 탓이다. 하지만 가뭄을 규정하는 특징은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지 기온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철에도 가뭄이 발생한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결국 우리는 기후학이 지닌 절망스럽지만 불변의 진실에 마주해야 한다. 각각의 기상상황을 지구온난화와 직결시킬 수는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기후라는 존재가 놀라울 정도로 복잡다단하다는 사실도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가뭄을 이해하기 위해선 비와 기온 외에 토지 이용도, 해류, 엘리뇨 현상, 북극 빙하의 용해도 등의 변수들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 이 모든 요소들이 가뭄의 악화나 완화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어떤 절대적 요인을 꼽을 수 없다는 현실은 과학자들을 난처한 지경에 빠뜨린다. 일례로 지구온난화가 심화될수록 미국 서부, 그중에서도 남서부 지방의 가뭄이 심화될 것이라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반면 기온상승이 강우량 감소를 초래한다는 명제에는 이견을 보인다. 이와 관련 최근 미 국립해양대기청( NOAA)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강수량은 1895년부터 현재까지 주 목할 만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가뭄은 장기간에 걸친 캘리포니아주 강수량 변화의 결과물이 아니다. 트리플 R은 자연스러운 대기-해양 내부적 변동성의 징후다.”



누군가는 이러한 태생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현상황을 오해하기도 한다. 실제로 올 4월일부 언론매체는 자연적 변동성이라는 논거를 바탕으로 가뭄의 책임이 환경운동가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미 서부의 건기는 전혀 새로울 바 없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에 충분히 잘 대처하고 있는 만큼 수자원 관리만 더욱 체계적으로 하면 가뭄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점에서 작금의 위기는 그동안 환경운동가들이 멸종위기 어류를 구하고자 댐과 저수지의 건설을 막으면서 농업용수 등으로 쓰일 수 있었던 수억ℓ의 물을 그냥 태평양으로 흘려보낸데 따른 결과라고 주 장했다.

이 주장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중 핵심은 캘리포니아주가 아무리 수자원 관리를 잘해도 물 수요 증가를 따라잡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부분이다. 천재들의 상으로 불리는 맥아더펠로우십 수상자인 피터 글릭 태평양연구소장에 따르면 언론에서 언급된 댐이 건설됐더라도 급속도로 줄고 있는 수자원 보유량의 단 1~2%밖에 늘리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어요. 가뭄의 원인과 혹독함을 잘못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혼란보다 질서를 선호한다. 따라서 기후와 관련해서도 기후 모델들을 이용해 미래를 예측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슬로안 박사는 기후모델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저는 기후모델을 애플파이 레시피에 비유합니다. 모든 애플파이는 바삭한 크러스트와 사과를 기본으로 삼지만 그 외에 어떤 재료들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완성품의 맛과 풍미는 완전히 달라지죠.” 그녀는 자신의 연구가 수많은 기후 모델 중 단 한 가지를 가지고 북극 빙하를 포함한 몇 가지 변수만 고려해 도출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제가 사용한 변수 외에도 토지 이용도, 인구 등 최소 10여 가지 요소가 가뭄에 영향을 미칩니다. 제 연구가 현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듯 보여도 모든 스토리를 완벽히 알려주지는 못합니다.” 과학자들이 진정으로 캘리포니아주의 가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지구의 기후시스템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데 기후시스템에는 아직까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예컨대 제트 기류의 속도가 느려지고 이동경로가 꺾였다는 얘기가 들리면 트리플 R이나 그 쌍둥이이자 올해 초 뉴잉글랜드주 한파의 배후인 ‘지독하게 오래가는 기압골’(트리플 T)이 떠오를지 모른다. 그 다음으로는 미 서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깊이 90m, 폭 1,600㎞의 온수층인 블롭도 떠오를 것이다. 트리플 R의 산물인 블롭은 육지로 불어가는 공기의 온도를 높여 가뭄을 악화시키고, 눈과 비가 내릴 확률 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컬럼비아대학과 코넬대학, NASA 공동연구팀이 향후 수십년간의 기후 예측을 위해 다양한 기후모델을 분석했던 사례를 보면 이런 단순한 결론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알 수 있다. 당시 연구팀은 기후변화 때문에 지속적인 대가뭄이 일어나 향후 30여년간 미 서부지역을 황폐화시킬 공산이 커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론만 보면 또 하나의 확고한 증거가 발견된 듯 보이지만 연구팀은 자신들의 예측이 결코 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확실히 밝혔다. 엘리뇨가 단 한번만 찾아와도 결과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캘리포니아주 가뭄 해결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를 사용하는 과학자라도 미래의 기후를 100%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정답을 향해 우리를 인도함으로써 최종 해결책을 찾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물이 모두 말라 버리기 전에 말이다.

트리플 R Ridiculously Resilient Ridge
사고 실험 (thought experiment) 실험에 필요한 조건과 장치를 단순하게 가정한 뒤 그 상황에서 일어날 현상들을 이론적으로 예측하는 연구.
트리플 T Terribly Tenacious Trough.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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