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김승연 회장 - 김성근 감독 마리한화 리더십

3색 카리스마로 한화 도약 이끈다


지난 6년간 꼴찌를 5번 경험한 프로야구단이 있다. 이 구단은 시즌 개막 후 13연패를 당하는 보기 드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시즌 시작부터 패배를 밥 먹듯 했던 이 팀은 한때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하고 ‘만년 꼴찌’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문제는 단순히 성적 부진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거듭된 연패에 선수들의 패배의식은 심각해졌고, 타 팀 팬들로부터 ‘보살’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들으며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올해, 이 구단은 그야말로 환골탈태(換骨奪胎)했다.

경기에 들어서는 선수들의 눈빛에서 ‘질 수 없다’는 의지와 독기가 느껴지고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야구계 명언을 매일매일 경기장에서 연출하고 있다. 이 구단은 바로 올해 프로야구 흥행 돌풍의 중심에 서 있는 ‘한화 이글스’다. 한화 이글스의 변신은 놀라움을 넘어설 정도다. 신생팀을 제외한 9개 구단 중 최하위에 머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포스트시즌, 이른바 ‘가을야구’ 마지노선인 5위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한번 중독되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마약처럼 한화 야구의 중독성이 강하다는 의미인 ‘마리한화’가 야구계, 나아가 2015년 대한민국 사회를 관통하는 신조어로 떠오를 정도다.

이 같은 마리한화 열풍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야신(野神)’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다. 만년 꼴찌 한화 이글스가 끈끈한 저력의 팀으로 변신한 데에는 ‘성공은 결코 노력한 자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김성근 감독 특유의 리더십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은 한화그룹의 수장, 김승연 회장의 리더십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11월 경영일선에 복귀한 김승연 회장은 복귀 후 삼성그룹과 2조 원 규모의 ‘빅딜’을 성사시켰다. CEO 공백으로 사기저하에 시달렸던 한화 직원들도 김 회장 복귀 후 나타난 성공적 경영성과에 힘을 얻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태양광, 석유화학, 건설 등 핵심 사업군에서 잇달아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가장 최근에는 쟁쟁한 유통기업을 제치고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화 이글스 돌풍의 시발점이었던 김성근 감독 선임에도 김승연 회장의 결단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승연 회장과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에선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 탁월한 인사전략, 포기를 모르는 승부사 기질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두 거목(巨木)의 리더십은 호불호가 엇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김 회장과 김 감독은 특유의 리더십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 강력한 카리스마 ? 탁월한 인사전략 ? 포기를 모르는 승부사 기질을 앞세워 승승장구 하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의 ‘마리한화 리더십’을 꼼꼼히 따져보았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김승연 회장은 산전수전, 심지어 공중전까지 다 겪은 분입니다. 국내 10대 그룹 회장 중 최연소로 총수에 오른 인물이잖아요. 29세 청년 김승연이 한화그룹 회장으로서 기업을 이만큼 성장시킬 수 있었던 건 탁월한 경영 리더십 덕분이라고 봐요. 바로 김 회장의 좌우명 ‘필사즉생 (必死則生·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라는 의미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함을 일컫는 사자성어)’의 리더십이죠.”

과거 김승연 회장을 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한화그룹 출신 A 씨의 말이다. 그는 김승연 회장이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불가능할 것 같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저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의 기저에는 김 회장 특유의 ‘ 포기를 지양( 止揚)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력한 뚝심 리더십이 존재한다.



강력한 카리스마, 그리고 뚝심의 리더십
지난해 말 경영에 복귀한 이후 김승연 회장이 거둬들인 성과는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다. 우선 지난해 11월 삼성그룹의 석유화학, 방산기업 부문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를 전격 인수하는 ‘빅딜’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빅딜의 성공에는 김승연 회장의 추진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으로 나오고 있다. 한화그룹이 지난 60년간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주력사업인 ‘방위사업’이었다.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부터 시작된 방산사업에 대한 애정은 아들 김승연 회장 체제에서도 계속됐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도 김 회장은 “방산과 화학 부문은 한화그룹 선대 회장과 제가 취임 당시부터 열정을 쏟았던 사업인 만큼, 남다른 사명감으로 회사를 일류기업으로 키워주길 기대한다”며 사업강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바 있다. 이번 빅딜로 방위사업 강화전략의 결실을 보게 된 한화그룹은 방위사업 분야에서 약 2조 7,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1위 기업으로 도약하게 됐다.

또 지난 7월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신규 면세점 사업자 입찰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꿰차는 성과를 올렸다. 사실 이는 의외의 결과였다.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같은 거대 유통공룡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유통업 경험이 부족한 한화가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점친 전문가들은 매우 드물었다. 이미 삼성과의 빅딜을 통해 주력사업 강화에 성공한 만큼, 면세점 입찰에 실패해도 크게 개의치 않으리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익히 알려진 대로였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HDC신라면세점과 함께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처럼 예상을 빗겨간 반전의 성공에는 김승연 회장의 결정적 승부수가 있었다. 바로 서울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여의도 63빌딩을 면세점 부지로 정한 것이었다. 63빌딩은 김승연 회장과 한화그룹에겐 상징적인 곳이다. 63빌딩은 지난 2002년 당시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와 함께 한화그룹으로 소유권이 넘어왔다. 당시 김승연 회장은 금융감독위원회를 직접 찾아가 입찰 제안서를 제출할 정도로 대한 생명 인수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이후 한화그룹은 대한생명 인수를 기반으로 금융업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재계 순위 10위로 등극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매년 가을 한화그룹이 개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불꽃축제 ‘서울세계불꽃축제’가 63빌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것 역시 63빌딩에 대한 김 회장의 남다른 애정이 작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63빌딩 면세점으로 서울 서부권 균형발전을 꾀하겠다는 한화그룹과 김승연 회장의 승부수는 적중했고, 또 하나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김승연 회장의 ‘필사즉생’ 리더십은 ‘마리한화’의 주역, 한화이글스 김성근 감독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정평이 나 있는 김 감독은 지난해 10월 취임식에서부터 뼈 있는 농담으로 취임 일성을 밝히기도 했다. “김태균은 3루에서 반쯤 죽었어요.”

김성근 감독은 훈련에 대한 강한 신봉자다. 훈련이 곧 성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다. 그의 훈련 스타일은 마치 고등학교 야구부 훈련을 방불케한다. 쉼 없이 이어지는 ‘펑고(fungo·수비 연습을 위해 배트로 공을 쳐주는 것)’는 김성근식 훈련의 백미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혹자는 그의 훈련방식을 놓고 ‘ 프로 선수들을 학생 취급하는 비정상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김 감독의 철학은 변함이 없다.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지옥훈련이 곧 성적 상승과 우승으로 이어진다는 그의 야구 철학은 현재 한화 이글스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스프링캠프가 열린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에서 이 같은 자신의 철학을 직설화법으로 밝히기도 했다. “분골쇄신(粉骨碎身·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는 의미로 전력을 다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합시다. 그렇게 한다면 우승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지옥 훈련…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한화 이글스는 지난해 최하위였다. 9개 구단 시대가 개막 된 지난 2013년에도 꼴찌였다. 이는 1군에 처음 진입한 신생팀 NC다이노스보다도 못한 성적이었다. 한때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뽐내며 통산 우승 1회(99년)·준우승 5회(88년, 89년, 91년, 92년, 06년)를 기록한 명문구단 한화 이글스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팬들은 패배주의에 찌든 선수들을 일으켜 세워줄 리더를 절실하게 요구했다.

해답은 바로 김성근 감독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전력이 약한 팀을 혹독한 훈련을 통해 강팀으로 키우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지도자로 통했다. 그가 야신(野神)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같은 성과 덕분이었다. 김성근 감독 역시 자신이 팬들의 요구가 관철돼 선임된 첫 번째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강력한 지옥훈련으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겠노라 선언했다. 당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 감독이 던진 한마디는 아직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꼴찌가 어디서 놀아요. 훈련해야지.”

훈련은 2014시즌이 종료된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 대부분의 야구팀은 시즌 종료 후 마무리 훈련을 진행한다. 대상은 2군 선수, 부상 및 군 제대 선수다. 시즌을 치른 1군 선수들은 휴식 차원에서 마무리 훈련에 참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화는 달랐다. 김성근 감독은 이례적으로 1군 주력 선수의 마무리 훈련 참가를 지시했다. 국가대표 4번 타자 김태균, 프리에이전트(FA)계약으로 한화에 둥지를 튼 정근우, 베테랑 안방마님 조인성 등 대다수 주력 선수들이 합류했다. 주력 선수들의 합류는 단순히 훈련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고참선수들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통해 팀 사기를 높이려는 김 감독의 숨은 의도가 담겨있었다.

마무리 캠프 후 본격적인 스프링 캠프가 시작됐다. 김성근 감독은 더욱 혹독하게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강도 높은 훈련에 선수들의 유니폼은 금방 까맣게 변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느 선수 하나도 훈련 중 꾀를 부릴 순 없었다. 스프링캠프 현장을 방문했던 모 야구 기자의 말이다. “생각해보세요. 70세 넘은 노(老)감독이 직접 배트를 든 채 수 백 개의 공을 친다고요. 손자뻘되는 선수들의 훈련을 위해서 말이죠. 틈틈이 아령을 들고 운동도 하세요.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시선은 계속 훈련장에 고정돼있죠. 어느 순간부터 선수들 눈에서 무언가가 느껴지더라고요. 그건 바로 자기 팀 감독에 대한 존경의 눈빛이었어요.”

혹독한 훈련은 선수들을 변화시켰다. 무엇보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생겼다. 한화 이글스 주전 중견수 이용규(31) 선수는 말한다. “다들 열심히 (훈련)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열심히’가 아니라 ‘죽어라’ 했습니다. 지옥 훈련의 대가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든 저희는 무조건 가을야구를 해야 하고, 할 것입니다.“

승리에 대한 갈망,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의 의지는 ‘리더’ 김성근 감독의 노력과 혹독한 훈련이 가져다 준 또 하나의 부산물이었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한화 이글스의 변화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지금도 경기가 끝난 후 김 감독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몇몇 선수들과 마무리 펑고 훈련을 함께 한다.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한 김성근 감독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인사가 만사, 탁월한 인사 전략 ‘택재(擇材) ’
고대 중국 병법서 ‘ 손자병법’ 의 무경십서 3권 제13장에는 ‘택재( 擇材)’ 전략이란 것이 나온다. ‘다양한 부대를 편성하라’는 의미의 택재는 비단 전쟁에서만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물을 배치하고, 때론 외부 수혈을 통해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택재와 일맥상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승연 회장과 김성근 감독의 택재 역시 주목해볼 만하다. 리더로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수혈하고 배치하는 것은 기업 운영과 야구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능력이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의 인사 철학은 현장중심 성과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철저히 그만큼의 보상을 해주고,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최광호 한화건설 대표이사와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다.

지난 6월 한화그룹은 최광호 한화건설 해외부문장 겸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 (BNCP) 건설본부장을 한화건설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최 대표는 한화건설의 이라크 시장 진출의 초석이 된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인물이다. 특히 이라크 정부를 상대로 공사 관련 규제개선을 요청해 원활한 공사 진척을 이끈 점과 세계 최대 규모의 PC 플랜트 준공방식을 도입해 공정기간을 대폭 단축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번 최 대표의 선임은 비스마야 프로젝트의 추가수주를 포함해 해외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김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김동관 상무의 승진 역시 주목해볼 만 하다. 오너의 장남이라는 태생이 아닌, 실적으로 능력을 입증받아 얻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계열사 CEO 출신 B 씨는 말한다. “후계구도를 논하긴 한참 이르지만, 한때 내부에서 그 얘기가 나온 적은 있었어요. 당시 그룹 내부에선 장남보다 차남에게 무게를 싣는 분위기였죠. 차남이 김 회장님을 쏙 빼닮았거든요. 카리스마도 있고, 남자다운 호탕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김승연 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아들들이 특별한 사업적 성과를 내기에 이른 시점이었거든요. 김 회장님이 내심 차남을 후계구도 1순위에 두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건성과로 결정되는 거잖아요. 지금 한화의 태양광 사업 성장에 장남의 역할이 컸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김승연 회장님은 단순히 자식이라고 해서 꼬박꼬박 승진시켜주는 스타일도 아니에요. 이번 승진에는 김 회장님이 그만큼 장남을 인정한다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김 상무는 그동안 한화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인 태양광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혁혁한 성과를 거둬왔다. 적자기업이었던 한화큐셀의 전략마케팅실장으로 부임해 불과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의 통합법인 출범에도 적잖은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미국, 인도, 중국, 일본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사업 수주에 잇달아 성공하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큐셀의 남성우 대표는 대표적인 외부 수혈 인물이다. 한화에서 영입한 최초의 삼성 출신 CEO인 남 대표는 삼성전자 IT 솔루션 사업부장 출신으로 오랜 시간 경영혁신 분야에 몸담아 온 기업 혁신 전문가다.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한화의 태양광 사업은 남 대표 취임 이후 조금씩 활로를 찾고 있는 모습이다. 이 같은 긍정적 변화에는 지난 2월 한화큐셀과 한화솔라원의 통합을 진두지휘한 남 대표의 공이 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리더의 통찰력, 팀과 선수를 바꿨다
철저한 현장중심 성과주의가 김승연 회장의 ‘택재’라면,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의 ‘택재’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100% 끌어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김성근 감독의 취임식 발언 ‘김태균은 3루에서 반쯤 죽었다’ 의 의미도 김 감독의 택재와 일맥상통한다. 3루수는 1루수에 비해 민첩성과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다. 만약 1루수가 3루수 수준의 수비능력을 보유하게 된다면 감독의 입장에선 전술 운용의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주전 1루수인 김태균은 올해 단 한 경기도 3루수로 출전하지 않았다)

특히 김성근 감독의 택재는 야수가 아닌 투수진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한화 팬들 사이에서 ‘불꽃투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중간계투 투수 권혁, 40세라는 나이에 전성기를 맞은 ‘ 노망주( 노인과 유망주의 합성어로 늦은 나이에 꽃피운 선수를 일컫는 은어)’ 투수 박정진, 그리고 제2의 불패신화를 꿈꾸는 마무리 투수 윤규진과 전천후 ‘ 마당쇠’ 투수 송창식이 바로 그들이다. 김성근 감독은 스프링 캠프 당시부터 이 네 명의 투수를 혹독하게 조련했다. 스프링 캠프 당시 이들 투수는 대부분 2,000개 이상의 공을 던졌다. 스프링캠프에서 투수들은 대부분 공을 많이 던지지 않는다. 시즌 내내 피로가 누적된 어깨에 휴식을 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더욱 많이 던지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많이 던질수록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느낌을 찾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호불호가 엇갈리는 훈련법이지만 김 감독은 이를 끝까지 고수했다. 정규 시즌 원활한 투수 운용을 위해선 필요한 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공만 빠를 뿐 제구력은 엉망이라고 평가받았던 권혁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제구력과 150km 강속구를 뿌리며 한화의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했다. 공은 좋지만 연투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정진도 올해 전체 투수 중 등판횟수 1위(70경기)를 기록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이 같은 변신에 대해 “그저 많이 던지다 보니 내 것을 찾았을 뿐”이라고 말하며 스프링 캠프 당시 훈련의 성과를 스스로 대견해 하고 있다.

또 다른 김성근 감독의 택재는 바로 트레이드에서 빛난다. 시즌 중 김 감독은 총 2건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넥센 히어로즈로부터 외야수 이성열과 포수 허도환을 받아왔고, 기아타이거즈에선 전문 대타 요원 이종환을 포함해 투수 2명을 영입했다. 세 선수 모두 기존 팀에서 자리를 잃은 상황. 대다수 전문가는 당시 트레이드를 ‘밑지는 장사’로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물음표가 가득했던 이 트레이드는 불과 한 경기 만에 느낌표로 바뀌었다. 이성열은 한화로 온 첫 경기부터 대타로 출전해 승리에 쐐기를 박는 홈런을 기록했다. 허도환은 주전 포수 조인성과 정범모의 연쇄 부상 속에서 안방 자리를 든든히 지켜냈다. 이종환 역시 지명타자로 붙박이 출전하며 쏠쏠한 성적을 거둬들이고 있다.

이처럼 과감한 트레이드로 선수를 영입해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김성근 감독의 택재는 한화 이글스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과거 김성근 감독을 보좌한 모 코치는 이렇게 말한다. “김성근 감독님은 선수를 읽어내는 눈이 탁월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실력을 보기보단 잠재된 능력과 이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를 먼저 보시죠. 재능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다고나 할까요. 과거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지도했던 최정(3루수), 김광현(투수), 김강민(외야수) 역시 이러한 김 감독의 통찰력 덕분에 지금의 대형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김승연 회장의 승부사 기질과 한화그룹의 성장.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 한때 유행했던 대표적인 언어유희(言語遊戱)다. 리더는 모름지기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 확신이 있다면 비록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해보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국내 재계 총수 사이에서 ‘상남자’로 불리는 김승연 회장 역시 포기를 모르는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뽐내왔다.

그의 승부사 기질이 유독 빛났던 몇몇 순간이 있었다. 우선 지난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는 한화를 포함해 포스코, GS, 현대중공업이 뛰어들었다. 처음부터 상황은 한화 쪽에 불리하게 작용하고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주력 계열사의 상황도 그리 좋지 못했다. 내부에선 인수전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회의론까지 흘러나왔다. 이때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자. 사업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라며 인수전 완주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악재는 금방 찾아왔다. 포스코와 GS가 전격적으로 컨소시엄 구성을 발표한 것이었다. 인수 후보 1~2위의 두 회사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미 인수전의 승자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김승연 회장은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김 회장은 “2명과 싸우는 것보다 1명과 싸우는 게 훨씬 낫다”며 우직하게 대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상황이 급변했다. 포스코와 GS의 컨소시엄이 입찰 마감 며칠 전 갑작스럽게 깨졌고 통 큰 배팅을 한 한화에 우선협상권이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지 못한다.(엄격히 말하면 못한 게 아니라 몇 가지 문제 때문에 스스로 안 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김 회장이 참모들의 의견을 수렴해 인수전에서 빠졌다면 어땠을까? 아마 협상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후회를 했을지도 모른다.

김승연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드러난 또 하나의 사례는 바로 이라크 진출이다. 김 회장은 중동시장의 거점으로 이라크를 점찍었다. 대다수 건설사가 사우디아라비아 등 비교적 안전한 국가를 선택한 것과는 다른 결정이었다. 이라크는 여전히 내전으로 안전을 담보하기 힘든 국가다. 당연히 내부적으로 이라크 진출에 반대하는 의견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들 모두 중동시장 진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공통된 질문은 하나였다. “왜 하필 이라크여야 하는 겁니까?” 하지만 김 회장은 이라크 진출을 포기하지 않았다.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전쟁은 끝난다. 전후 복구사업의 핵심은 주택 건설이다. 이라크에서 공사 경험을 꾸준히 쌓는다면, ‘ 제2의 중동 붐’ 을 일으키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 회장은 망설임 없이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시간 비행이 건강 회복에 좋지 않다는 주치의의 만류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출국 전 공항에 모인 관계자들에게 ‘빈손으로 돌아오진 않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렇게 이라크에 도착한 김 회장을 반기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NIC) 사미 알 아라지(Dr. Sami R. Al-Araji) 의장이 예고도 없이 비스마야 현장을 찾은 것이었다. 당시 알 아라지 의장은 “내전 사태에도 철수하지 않고 묵묵히 현장을 지켜준 한화 임직원들의 헌신적 노력에 감사와 신뢰를 표한다”며 김승연 회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김 회장 역시 “최악의 상황이 와도 비스마야 현장을 마지막까지 지켜 공사를 완료하겠다”고 화답했다.

김 회장은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가 시작된 직후 안전과 치안 강화를 위해 경호경비 작전본부를 세우고, 건설현장의 안전을 유지하기 베이스캠프와 공사현장을 24km 길이의 안전망으로 둘러쌌다. 각종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김 회장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의 승부사 기질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대단한 게 뭔지 아세요? 지금까지 김승연 회장이 직접 발 벗고 나섰던 인수합병이나 신사업에선 크게 실패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대한생명 인수, 이라크 사업, 태양광 사업이 대표적이죠. 조금 늦더라도 결국은 빛을 본다는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김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 김성근의 일구이무 (一球二無)
이처럼 김승연 회장이 대규모 사업에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면, 김성근 감독은 매일매일 야구장에서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 있다. 승부사 김성근 감독의 야구 철학 중에는 ‘일구이무(一球二無)’라는 것이 있다.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는 정신으로 공 하나하나에 집중한다는 의미다. 김 감독 역시 한시도 쉬지 않고 그라운드를 응시하며 다양한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허를 찌르는 스퀴즈 플레이는 지난 6월 펼쳐진 삼성라이온즈와의 3연전을 모조리 승리로 장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 한화의 삼성전 스윕은 지난 2008년 이후 7년 만에 이뤄낸 값진 승리였다.

선수들 역시 김성근 감독의 일구이무 철학을 그라운드에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올 시즌 가장 많은 31번의 역전승을 기록한 한화의 저력도 여기에서 나온다고 볼수 있다. 실제로 9회 말 2아웃 상황에서 2점 차로 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은 지난 4월 25일 한화와 SK의 경기는 올 시즌 프로야구 전 경기를 통틀어 가장 짜릿한 역전승으로 회자 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말한다. “야구가 아닌 모든 인생 자체에서도 순간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지. 앞도 없고 뒤도 없어요. 매 순간 자체가 승부니까요. 야구에서도 매 순간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승연 회장과 김성근 감독, 비록 서 있는 위치는 서로 다르지만 추구하는 목표는 일맥상통한다. 김승연 회장의 한화그룹과 김성근 감독의 한화 이글스는 각자의 위치에서 매출 신장과 가을야구 진출이라는 당면목표 달성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두 사람의 리더십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지 아직은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김승연 회장과 김성근 회장의 리더십이 진정한 리더를 열망하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두 리더가 보여주고 있는 ‘마리한화 리더십’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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