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동십자각] 더 이상 '국민'을 등에 업지 마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또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는 말도 있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이 말들에는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그 무엇이 있다.김대중 대통령, 특히 그의 참모들이 갖고 있는 상황인식이 단적인 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이 정부는 출범이래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단지 송파갑이나 인천 계양·강화 보궐선거에서 완패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고관부인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고급의상실에서 한벌에 웬만한 월급쟁이의 몇개월어치 봉급에 해당하는 비싼 옷을 사입었다는 사실때문만도 아니다. 알다시피 정권을 지탱하는 양대 축은 「정통성(LEGITIMACY)」과 「효율성 (EFFECIENCY)」이다. 부도 직전의 나라살림을 물려받은 이 정부에 효율성이 강조된 것은 당연하지만 국가경영의 동력을 그것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통성에서 우러나온 권위가 중심을 잡아줄 때만 효율성도 배가(培加)되는 까닭이다. 이 정부가 지금 맞고 있는 총체적 위기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신·구주류의 갈등 등 단지 위기관리능력의 부재정도로 파악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전 정권들과 김대중정부와의 차이점은 바로 정치적 순결성에 기초한 도덕성이기 때문이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다. 법논리를 따지기 이전에 민심이 어디에 있는 지를 살펴야 했다. 『법적인 잘못이 밝혀질 경우에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생각』이란 말속의 「국민」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김영삼 전대통령이 최근 보여주는 일련의 언행 가운데 「국민」이란 말이 갖는 뜻도 마찬가지다. 참으로 실망스럽다. 그가 얘기하는 말들이 모두 틀려서가 아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역사 바로세우기」는 결코 폄하할 수 없으며 하나회의 척결이라든지,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의 도입 등은 획기적인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金전대통령은 지금 말을 아껴야 할 때다. 누가 뭐래도 「6·25이후 최대의 국난」은 金전대통령의 재임중에 일어난 일이다. 게다가 이 정부는 아직도 그를 비롯한 전 정권의 시대를 거치며 쌓여온 적폐를 씻어내느라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 그가 金대통령을 독재자로 부르며 『국민이 심판할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도대체 金전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인가. 물론 여론이 다 옳은 것도 아니요, 국민의 뜻이 역사의 흐름과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생각을 거슬러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적지 않다. 또 그래서 최고 결정권자는 외롭고 힘든 것이다. 어쨌든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행동에 힘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이 남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보기 싫은 것도 보는 눈을 키웠으면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해 이 정부의 「권위」가 더 이상 실추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JWLEE@SED.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