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거병 소식을 들은 지 50일 가까이 지났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에도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가신이 적군의 칼에 베임을 당했다는 소식에도 움직임이 없었다.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적의 내부를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이에야스는 이를 위해 다이묘 82명에게 무려 180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 1600년 일본 역사를 바꾼 '세키가하라 전투'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사후 일본 전국 패권을 놓고 이에야스의 동군과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의 서군이 절체절명의 승부를 겨뤘던 세키가하라 전투는 6시간 만에 동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결과만큼 과정이 단순했던 것은 아니다. 이에야스의 편지를 받고 미쓰나리에 대한 배반을 약속한 다이묘들이었지만 정작 전투가 시작되자 쉽사리 결정을 못 내렸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가 칼끝을 돌리기 전까지 서군 진영의 그 어떤 다이묘도 거사를 결단하지 못했다. 순간의 선택이 자신은 물론 온 가솔의 목숨을 결정하는데 어찌 안 그럴까. 임진왜란 당시 조선 땅을 유린했던 무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조차 이에야스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승부의 추가 기울어지기 전까지는 자신의 본거지에서 한 발짝도 떼지 않다가 이에야스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군사를 이끌고 전장이 아닌 서군의 텅 빈 영지를 털었을 뿐이었다.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아버지와 아들, 형제·남매, 친족과 이사진 간 얽히고설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작 경영권을 둘러싼 오너 일가의 건곤일척 대치를 바라보는 롯데그룹 임원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자칫 줄 한번 잘못 서면 천길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 동군과 서군, 어느 쪽 줄을 잡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눈치만 보던 다이묘들이 이들의 모습에 오버랩돼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지나친 착각일까. /송영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