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소외층이 아니더라도 억울한, 미묘하게 얽힌 사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 일을 잘 조명해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사회적 반향까지 일으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당대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전쟁 관련한 역사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모던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에 선정된 소설가 정아은(38ㆍ사진)씨가 10일 서울 광화문 부근에서 가진 몇몇 기자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그는 이번 모던하트의 앞 부분 '프리퀄'에 해당하는 교육에 대한 것을 집필 중이다. 대학 학부로 정해지는 '계급' 이전의 얘기다. 그는 이어 "사실 역사소설을 쓰고 싶어 작가가 됐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교육과 관련해 공간적으로 일정 지역을 조명하고 있지만 이를 시간적으로 벌리면 역사소설"이라고 덧붙였다.
수상작 모던하트는 굴지의 헤드헌팅 회사에 다니는 30대 중ㆍ후반 미혼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외양이야 번듯하고 화려하지만 속은 너절하고 치졸한, 볕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 같은 일상 속에서 이 시대 연애와 직장 풍속도를 그려낸다. 실제로 외국계 헤드헌팅 회사에 7년여 근무한 바 있는 그는 학벌중시 풍토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형식상 계급사회가 아니면서도 상대를 서열화하는 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도 반드시 상대의 직함과 나이, 대학, 집, 자녀관계 등을 캐나가는 과정을 거쳐 서로를 부르는 호칭과 존대 여부를 결정한다.
그는 "실제 헤드헌터 업계에서 학부가 가장 중요하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외국 대학이 아니면 유학도 소용없고 국내에서는 딱 'SKY(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만 인정해준다. 소설 속 외국계 회사가 요구하는 서울대ㆍ학점 등 요구사항은 실제 얘기다. 그래서인지 'SKY' 출신들은 첫 만남에서부터 본인의 출신 학부를 드러내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대체로 세태소설로 분류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장소설 혹은 사소설로도 읽힌다. 주인공은 전반부 복잡다단한 스트레스 속에 지리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과 좌절을 받아 넘기지만 대학로에서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밤을 보낸 후 한 꺼풀 성장한다. 소설 전반 부에 설정보다 다섯살쯤 어린 톤으로 근거 없는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가던 주인공은 그 밤 이후 갑자기 마흔 중반에 폐경을 맞은 듯한 무심함과 관조를 보여준다.
"물론 내게도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다운 봄이 다시 올 것이다. 살아 있기만 한다면. 그러므로 나는 돌아보지 말고 걸어가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 오하라가 영화 말미에서 중얼거렸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