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부출연연구소의 현주소를 한마디로 말하면 시장경쟁력 부재(不在)다.정부 각 부처의 우산 아래 있다 보니 산업계 등 고객을 발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주무부처의 눈치만 잘 살피면 경영은 땅짚고 헤엄치기다.
치보기란 주무부처의 입맛에 맞는 연구과제 수행. 여기에 낙하산 인사 수용도 양념으로 곁들여 진다.
시장경쟁력이 생길리 없다.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부으면서도 성과없는 연구결과물만 양산함은 물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데 따른 정책적 오류까지 빈발하고 있다. 제때 외환위기를 경고하지 못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맞게 된 일이 대표적 사례다.
기획예산위원회가 정부출연연구기관법 제정을 추진한 것도 바로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즉, 각 부처에 소속돼 있는 정부출연(연)을 총리실 산하로 끌어 모아 5개의 연구회(연합이사회)로 다시 구성함으로써 주무부처의 입김을 차단, 자율성을 보장해 주되 대신 시장경쟁 개념을 도입한 책임경영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입법 취지는 공청회, 행정개혁위원회, 당정 협의, 관계부처 협의, 법제처 심의를 거치는 동안 타당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로 넘어가기 직전인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제동이 걸렸다. 법무장관을 비롯한 일부 장관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지난 7일 「각 부처는 원하는 연구과제 및 소요예산을 기재한 의견서를 총리실에 제출하고, 그 결과를 통보받는다」는 조항을 끼워 넣어 통과시켰다. 알쏭달쏭한 말이지만 알맹이는 결국 각 부처가 갖고 있는 영향력의 「끈」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말만 개혁이지 변한게 없는 셈이 되고 말았다.
자율성과 책임경영은 동전의 앞과 뒤다. 자율성은 주지 않으면서 책임경영을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국회라는 관문이 하나 더 남아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난 여야(與野)의 심도있는 검토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