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2부. 경제정책에 합리성을 입혀라 <6>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게 하라

독과점에 활력 잃은 시장… 진입문턱 낮춰 경쟁 춤추게 해야<br>식품·통신서비스 업종 등 상위 3개사 점유율 91%<br>세율 인하·시설기준 낮춰 신규 진입장벽 해소해야<br>담합 등 불공정행위 철퇴… 사후 규제도 더욱 강화를

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맥주를 구입하고 있다. 맥주는 상위 3개 업체가 시장을 100% 장악하고 있어 독과점이 가장 심한 업종 가운데 하나다. /서울경제DB

2011년 11월 국내 주류시장에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다. 1933년 조선총독부로부터 면허를 받은 동양맥주(오비맥주 전신)와 조선맥주(하이트진로 전신)에 이어 78년 만에 '제3의 맥주' 세븐브로이가 탄생한 것. 2010년 말 정부가 맥주 산업의 법적 진입규제인 시설 기준을 낮추면서 생긴 일이다.

하지만 '제3의 맥주' 앞에 놓인 현실은 만만치 않다. 도매 판매망은 대기업이 꽉 쥐고 있고 주류세 부담이 너무 커 가격 경쟁이 힘들다. 독일이나 일본이 생산량에 따라 차등적인 주세율을 적용하거나 세제지원을 통해 다양한 맥주 경쟁을 유도하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국가 시스템의 근본적 개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독과점 산업의 경쟁 활성화다. 독과점에 의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차단되면 개방과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우리 목표는 좌절된다. 소비자의 후생도 크게 저하된다. 정부는 꾸준히 진입규제를 풀었다고 하지만 시장에는 여전히 높은 벽이 남아 있다.

◇식품ㆍ서비스 분야 독과점 업종 진입 문턱 낮춰야=우리나라는 각종 산업에 독과점 구조가 만연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독과점 구조 유지산업이 47개이며 이들 산업에서 상위 3개사 점유율(CR3) 평균은 91.5%에 달한다.

물론 경쟁 활성화가 구조적으로 힘든 업종들도 있다. 정유ㆍ조선ㆍ자동차 등 대규모 장치산업들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 신규 사업자 진입이 힘들다.


하지만 맥주ㆍ설탕ㆍ커피 등 식품이나 통신ㆍ금융 등 서비스 업종은 얘기가 다르다. 장바구니 물가와 관련이 높고 독과점에 따른 폐해가 적지 않은데 막상 경쟁 활성화가 제대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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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는 실질적인 진입 문턱이 낮아지지 않은 탓이다. 맥주만 해도 신생 중소업체들이 수십년 사업을 영위한 대기업들과 같은 72%의 높은 주세율을 적용 받는다. 맥주 강국 독일의 경우 소규모 업체에 50~75%의 차등적인 주세율을 적용한다.

유통망도 확보해야 하는데 지역별 주류 도매업자 숫자는 국세청 관리 하에 철저히 통제된다. 신규 도매업자가 나오질 않으니 판로 개척도 어렵다. 전세계에서 주류 도매업자를 이런 식으로 세정당국이 관리하는 곳은 일본과 한국뿐이다. 주세법 개정을 추진 중인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은 "맥주 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해소되면 좀더 다양한 가격과 품질의 맥주를 맛볼 수 있게 된다"며 "중소업체들을 대상으로 세율을 인하하고 시설기준도 낮추는 등 실질적인 진입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과점 횡포에 솜방망이 처벌…억제력 없어=사업자들은 독과점 구조를 지키기 위해 신규 사업자들의 시장 진입을 방해한다. 정유ㆍ항공ㆍ비료 등 독과점이 고착화된 업종에서는 매년 굵직굵직한 담합이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사건이 발생한다.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방해하는 방법은 점점 교묘해진다. 2010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저가항공사와 거래한 여행사들에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독과점을 유지하려 하다 적발됐다. 2011년에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이 IPTV의 유료 방송 진입을 방해하기 위해 프로그램 제공업체들을 위협한 혐의도 드러났다.

학계에서는 독과점이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사업들의 경우 사후 규제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대손실보다는 기대이익이 크기 때문에 담합 등의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담합은 해당 행위에 관한 매출액의 10%,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은 매출액의 3% 수준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실제 사례에서는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과징금이 책정된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사건에서도 사업자들이 적자를 본다는 이유로 대규모 과징금을 감면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의 경우 우리보다 훨씬 사후 규제가 강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독과점 구조의 심화와 경쟁정책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독과점 규제들이 사업자들의 위반행위에 억제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성국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서 담합 행위 등을 하다가 적발돼 대규모의 과징금을 맞는 사례도 늘고 있다"며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보다 철저한 조치를 내려 기업들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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