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월요초대석] 이헌재 금감위장

대담-柳晳基 정경부장우리 사회는 구조조정이란 화두속에서 지난 한해를 보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항상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구조조정의 모범생이라는 국제사회의 평가 속에 최근 주가가 속등하고 환율절상이 우려될 정도로 원화가치가 안정되는 등 각종 경제지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李위원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부실을 털어내는 양적인 구조조정에서 이제는 실력을 키워 참된 경쟁력을 갖추는 질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李위원장은 재경부와 금감위의 위상문제, 한국은행의 외환은행 출자문제, 재벌오너 문제 등 민감한 부문에 대해서도 막힘없이 의견을 표명했다. -통합금융감독원의 출범을 축하합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체제가 갖춰진 느낌입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시작일 뿐입니다. 외환위기는 어느정도 해소됐으나 은행이나 기업들이 제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건전성 감독도 하루 아침에 자리잡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문제를 정리했다면 이제는 차분히 시스템을 정착시킬 단계입니다. -98년의 화두는 구조조정이었다면 올해의 화두는 무엇일까요. ▲구조조정과 더불어 사회적 결속이 중요한 이슈로 대두될 것입니다. 실업증대 등에 따른 사회적 위화감과 상대적 박탈감의 치유가 주요 과제로 등장할 것입니다. 일방적인 시혜차원의 복지(WELFARE)보다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복지(WORKFARE)로 접근해야 합니다. 기업의 경쟁력이 회복되고 창업이 활발해져야 합니다. 지난해는 군살을 빼는 양적인 구조조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근육을 키우는 질적인 구조조정, 즉 소프트웨어의 개선에 역점을 둬야합니다. -거시지표는 호전되는 조짐인데 경제 전반이 제대로 모습을 되찾는 시기는 언제가 될 거로 보십니까. ▲거시지표는 일단 바닥을 친 느낌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업·근로자등 모든 경제주체들의 의식이 바꿔지기 전에는 고용안정이나 노동시장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인식 전환을 위해 교육투자 등 많은 것이 필요하고 시간도 몇년이상 걸릴 것입니다. 예컨데 부자들이 마음놓고 돈을 쓸 수 있게 하는 분위기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가난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고 부자가 될 기회도 얻을 수 있습니다. -외자유입 속도가 빨라 재경부가 고민인데요. ▲펀더멘탈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외자가 유입되고 있습니다. 직접투자(FDI)가 좋은데 대부분 주식시장투자 형태입니다. 정부가 함부로 개입해 환율이 현실과 괴리될 경우 헤지펀드가 몰려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제는 개방경제 운용이 눈앞의 현실로 닥친 것입니다. 개방경제하에서는 중앙은행과 재무부는 시장모니터링, 조사기능에 충실해야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눈치를 잘 봐야 합니다. 과거처럼 창구지도나 군림하는 방식은 곤란합니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 캐피탈사가 단기차익을 위한 공격적인 경영을 영위, 금융과 실물부문에 많은 파장을 던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뉴브리지사가 주식가치를 높여 돈을 벌기 위해서는 고객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어떻게든 일단 고객을 보호하려 할 것입니다. 고객에 대한 집착이 강할 것으로 봅니다. 또 기존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2년간 정부가 손실을 분담키로 약속함에 따라 무조건 털지 않고 가급적이면 가지고 갈 것입니다. 일부 부실은 털고 가겠지만 우량고객은 더 우대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뉴브리지가 공격적 지점경영 등을 통해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는 관측이 일리는 있으나, 경영전략은 새롭게 전개하겠지만 기존인력을 활용해야 하므로 「문화적 타협」이 일어날 것입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본점의 영업전략에 따라 경영하는 외국계 상업은행이 인수하는 경우와 뉴브리지같은 펀드가 인수했을 때 사이에, 고객보호 차원에서 어느 쪽이 유리한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제일은행 매각과정에서 추가로 부실을 정리해 줘야하고 기존 은행의 잔존부실을 정리하기위해 추가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관측도 많습니다. -▲현재로선 부족하지 않습니다. 25조원이 책정된 부실채권 매입대금중 아직 6조원이 남아있어 장부가 기준으로 15조원가량 매입 여지가 있습니다. 은행들이 초기자본부족 상태는 벗어남에 따라 자력으로 증자할 능력도 생겼습니다. 최근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빛은행이나 주택은행에 대한 투자를 시도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기업개선작업(WORK-OUT)등으로 부실자산이 늘어 BIS비율이 내려가겠지만 대부분 은행은 자력증자가 가능할 것입니다. 앞으로 기업개선작업이 얼마나 빨리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서울은행매각이 끝나면 지방은행과 조흥은행 등 일부은행 문제만 해결하면 됩니다. 외환은행 증자문제는 한국은행이 대승적 차원에서 풀어줘야 합니다. 정부가 증자에 참여하려면 대주주인 코메르츠은행 지분의 감자 문제가 걸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은행은 대주주로서 기존 투자자금의 보전을 위해서 투자에 나서야 합니다. 통화신용정책이나 한은 독립성과는 관계가 없는 문제로 봐야 합니다. 또 내년 1월1일부터 자산건전성 분류를 미래의 상환가능성을 기준으로 강화하게 되면 대손충당금을 더 쌓게 되고 BIS비율 하락때문에 자본금 문제가 다시 거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증자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자력증자가 어려워 정부에 지원 요청할 경우 감자로 인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기존 주주의 이익보호를 위해 시장에서 자발적인 합병을 통해 스스로 해결할 것입니다. 새로운 자산건전성 기준이 도입되면 감독당국이 대출서류를 일일이 직접 들여다 봅니다. 나쁘게 보면 관치(官治)가 강화될 수 있습니다. 어느정도 수준으로 도입할 지가 문제입니다. 재량여지 많으면 투명성에 문제가 생겨 기업과 감독당국이 직접 다툴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를 완충시키기 위한 객관적 기준이 필요합니다. 은행과 기업에 대한 충격을 줄이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겠습니다. -금융정책을 둘러싸고 금감위와 재정경제부의 위상 재정립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시각에서 봐야 합니다. IMF등 국제금융사회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의 독립성과 기능 강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과 회계가 국제시장에 참여할 수 있느냐를 보장하는 장치인데 금감위가 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수준까지 돼야 합니다. 예컨데 IMF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대한 감독강화를 요청하는 이유는 국책은행들이 재원의 대부분을 시장에서 조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다른 상업은행과 똑같은 규율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같은 인식에 맞춰줘야 글로벌 플레이어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독립적인 감독체제는 이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한국은행이 물가억제 목표를 제시치 못하는 등 아직 기관간의 행동양식이 정립되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위기극복을 위한 초단기적·범국가적인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각 기관의 개별적인 기능이 중첩되기도 하는 초단기적인 혼선이 발생했을 뿐입니다. 어느정도 정리되면 고유권한으로 돌아가 정책조율이 가능할 것입니다. -투신사 구조조정에 시간이 더 필요한지요. ▲아직도 1년은 더 관찰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투신사는 자금조달과 운용의 미스매치가 심한 곳입니다. 환매 요구에 대응하면서 고유계정의 부실이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열심히 하고 주가상승과 금리하락으로 상당히 정상화됐습니다. 앞으로 운용을 과거식으로 하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하고 투신운용, 투자회사(뮤츄얼펀드)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다양한 금융상품이 쏟아지는데 대응해 감독역량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기술과 능력배양이 중요합니다. 세계적으로 100조달러가 넘는 파생상품시장에 뛰어들수 있어야 위험분산과 이익등이 가능한데 금융기관이나 감독당국모두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감독기능이 앞장서 갈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함꼐 가야합니다. 감독기능을 개발하지 못하면 규제 일변도로 가고 그러면 시장이 활력을 잃고 금융산업이 고용창출도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다소 모순된 것 같지만 건전성 규제는 하되 활동은 자유롭게 하는 수준으로 1~2년안에 가야합니다. 직원들을 닥달하는 이유는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경우 부담을 시장에 떠넘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금감원 인사를 파격적으로 실시하셨는데 의외로 뒷말이 적습니다. -국민에게 속죄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감독기관책임문제가 계속 거론되면 남아있는 직원들이 일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새로 태어난다는 인식을 줘야 미래를 준비하는게 가능합니다. 언뜻보면 특정지역이 부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달리 감독기구에 이 지역 출신이 많아 도리어 역차별을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은행이 직원들을 7개 직군별로 재편, 해당업무만 담당토록 하는 내용의 획기적 조직개혁안을 마련했는데 금감위는 어떤 입장입니까. -검사, 감독, 관리, 기획등으로 전문화할 방침입니다. 그러나 아직 프로(전문가)가 없습니다. 사람이 필요할 경우 경력과 학력을 따져 채용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대학, 대학원교육도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도입할 경우 다시 유야무야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인사전문가를 외부에서 찾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재벌총수의 오너쉽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재벌총수는 이제 과거와 같은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경영투명성이 확보되고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상당수의 지분을 확보한 상황입니다. 기업의 가치를 높여 시장에서 경영 능력을 보장받지 못하면 경영권 세습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5대그룹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립기업이 연합된 형태로 가거나 지주회사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지주회사로 갈 경우 연결재무제표작성등을 통해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동일인 여신한도에 걸려 기업성장이 한계에 달하므로 계열분리 등도 불가피해 질 것입니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이 차질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하면 독립기업화 등 재벌개혁이 단계적으로 달성될 것입니다. -지난 한해동안 아쉬웠던 점은 없었습니까. ▲IMF 등 국제기구가 보기드문 성공작이라는 평가하지만 구조조정을 직접 담당한 당국자로서 좀더 빨리 철저히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일부 기득계층이나 책임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닫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하거나 문제해결을 지연시키려 했던 까닭에, 소속 조직이 피해를 입고 국민경제가 전체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정리=최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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