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잇단불도·정책실패…“못믿겠다”/외국인들 한국경제에 왜 비관적인가

◎화의·법정관리·유예협약 등 이해도 부족/정부 해명 불구 대외채무 상환능력 의구심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경제나 증시 장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최근 외환위기의 본질은 외국 금융기관의 투자 기피와 이로 인한 외화자금 조달 차질에서 비롯됐다. 해외차입 봉쇄로 인한 외화유동성 부족은 결국 국내 금융기관의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한국시장에 대한 외국인투자가들의 부정적 평가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인투자가들의 비관적 시각은 최근 해외에서 보도된 일련의 기사내용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스위스 유니온은행(UBS)은 기아사태가 터진 직후 「아시아의 금융위기」라는 내부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외국인투자가는 한국시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 지난 8월이후 국내증시에서 외국인매도가 홍수를 이루는 단초를 제공했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는 지난 10월말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면서 특별보고서를 통해 『부실여신 규모, 자기자본의 적정성, 수익성 등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 은행들의 상태는 태국보다 열악하다』고 적시했다. 영국의 유력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 역시 지난 9월13일자에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한국정부는 위기의 본질을 해결하지 못한 채 단기적인 해결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마디로 「한국시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이며, 가급적 빨리 손을 털고 퇴각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주장이 골자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고 보도한 최근의 블룸버그통신 기사는 한국시장을 바라보는 외국인투자가들의 심정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시장에 대해 이처럼 철저하게 등을 돌리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해답은 간단하다. 한보 기아 등 대기업들의 부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경제 정책도 실책을 거듭하면서 그동안 재벌위주의 성장가도를 구가해온 한국경제에 대한 대외신뢰감이 크게 희석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아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리자 홍콩 일본등 국제금융시장에서는 『1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조차 부도를 내는 마당에 과연 어느 기업을 믿고 투자할 수 있겠는가』라는 부정적 시각이 팽배했다. 또 부실기업 회생절차로 인식되고 있는 화의 및 법정관리 부도유예협약 등에 대한 외국인투자가들의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도 불신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냉정한 경제논리에 익숙한 외국인투자가들에 「부도난 기업을 부도처리하지 않는」 편법들은 의혹과 불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외국인투자가들은 화의, 법정관리, 부도유예협약을 부도와 같은 의미인 「Default」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 이같은 회의론을 틈타 「한탕」을 노리는 해외 핫머니의 농간이 개입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물론 한국경제의 기본이 충실하면 이같은 회의론이 오래갈 리 없다. 하지만 이같은 회의론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질 만큼 우리 경제에 뿌리깊은 「질환」이 적지 않음도 부인키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재 가장 심각한 병의 뿌리는 금융기관의 대규모 부실화로 집약된다. 금융기관 차입에 의존해 외형을 부풀려온 국내기업들의 부실한 경영관행이 결국 은행을 비롯한 각 금융기관에 엄청난 부실채권을 떠안겼고, 즉각 외국인투자가들은 부실화된 국내 금융기관을 거래대상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 한국의 대외채무 상환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는 점도 큰 이유다. 미 경제전문잡지 비즈니스 위크지는 지난 10월 17일자에서 태국·인도네시아 다음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이 잡지는 한국이 IMF에 요청할 금액을 4백억 달러로 예상했는데, 이는 멕시코 위기때 IMF가 지원한 5백억 달러에 버금가는 규모다. 비즈니스 위크는 한국은 1년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 해외채무가 7백억 달러에 이르는데, 기간 만료에 앞서 상환을 연기하거나 다른 외채로 대체하지 못할 경우 IMF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한국 경제력이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등 동남아 4개국을 합친 규모이므로, 한국의 위기가 심화하면 일본에 충격을 주고, 그러면 미국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풍문이 나돌고 있다.<김인영 뉴욕특파원·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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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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