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가족범위를 넓히는 명절

설 연휴가 다가왔다. 무려 3,100만명이 이동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 창궐하는 구제역 방역차원에서 농가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당국의 협조요청이 있지만 우리민족의 '귀성 DNA'를 어쩌지는 못할 것 같다. 민족의 대이동 뒤에는 많은 분이 수고한다. 사고위험 속에서 쉴새 없이 신호봉을 휘두르는 교통경찰관, 밤새워 눈 치우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과 도로공사 직원, 하루에도 수만 건씩 들어오는 긴급출동 서비스 때문에 고향을 향한 큰 절로 귀성을 대신한다는 보험사 보상직원. 이런 많은 분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최근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귀성길은 고행에 가깝다. 좁은 차 안에 갇힌 채 장시간 운전의 피로와 지루함을 견뎌야 하고 휴게소는 발 디딜 틈도 없다. 명절연휴의 절반을 도로 위에서 보내고 왔다는 운전자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교통질서를 지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설 연휴 교통사고 통계도 나아지지 않는다. 인사사고가 평소보다 42% 많으며 야간운전 사망자는 182%, 무면허운전 사망자는 76.8%나 증가한다. 힘든 귀성길일수록 뒷좌석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의연한 자세로 양보운전ㆍ배려운전을 하자. 그러면 평상시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교육효과가 있지 않을까. 최근 가족실태조사결과를 보면 할아버지ㆍ할머니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자녀는 10명 중 2명뿐이란다. 심지어 친부모는 가족이 아니라고 한 응답이 22%나 됐다. 놀라운 일이다. 연휴의 절반을 도로 위에서 보내야 한다면 도로 위 시간도 즐거운 명절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대화의 준비가 필요하다. 온 가족이 차 안에 오붓이 앉아 보내는 귀성길을 가족사랑을 다지는 기회로 삼자. 아내에게 미처 챙겨주지 못했던 생일, 주말 청소를 약속하고는 밤늦게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들을 털어놓고 용기 있게 사과해 보자. 아이들에겐 옛 중학교 시절,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저녁에 호롱불을 들고 시오리 길을 마중 나왔던 할머니에 대해 들려주자. 할머니는 길이 눈에 묻혀 보이지 않는 곳에 서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또 논밭을 치달리던 꿩 몰이, 쥐불놀이, 연날리기, 얼음 위 팽이치기 이야기도 들려주자. 아이들과 끝없이 나누는 이야기, 점점 다가오는 고향의 불빛, 점점 또렷해지는 별, 우리 아이들의 가슴속에 할머니 모습은 점점 크고 또렷하게 새겨질 것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 DNA는 상호협조와 여유로움이다. 개인주의나 조급증ㆍ안전불감증 같은 것은 본질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도로 위에서 양보하고 가족끼리 배려하며 정다운 대화를 통해 우리아이들에게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하나하나 심어준다면 이번 도로 위 설은 아름답고 즐거운 시간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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