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그럴 것이 대선에서 제시된 105개 지역공약을 이행하려면 천문학적 재원이 소요된다. 동남권 신공항과 남해안 철도고속화 같은 공약들은 하나같이 수조원씩 들어간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지역공약 이행에 자그마치 200조원이 들 것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1차 공약가계부 135조원과는 별개다.
중앙 차원의 공약이행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11조6,000억원을 삭감해야 하는 판국에 천문학적 재원이 투입될 지역개발공약을 이행하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다. 나라살림을 거덜 내겠다는 심산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역공약을 일부 축소하거나 속도 조절하는 구조조정 정도는 해법이 못 된다. 정부 출범 100여일 만에 그 많은 지역개발공약의 타당성을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공직자의 책임과 의무를 내팽개치는 격이다. 탈락과 반영 사업 간 명암이 갈리면 지역갈등을 유발할 소지도 다분하다.
지역개발공약은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결코 백지화하자는 말이 아니다. 통상적인 예산편성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추진 여부를 결정하자는 얘기다. 내년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이미 검증이 끝난 계속사업은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추진하면 될 터이고 그렇지 않은 공약은 각 부처에서 예산편성 지침에 의거해 예비타당성 조사 같은 사전 심사절차를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하면 그만이다. 내년 나라 살림살이 짜기도 버거운 마당에 구태여 지역공약 가계부 숫자를 맞추느라 머리를 쥐어짤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