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노동자들 경영엔 한국혼 물씬/올해 사상최대 3,500억불흑자 예상/아연도금 강판 설비 등 현대화 박차쇠를 만드는 공장은 어디를 가나 그 무게에 짖눌린다. USSPOSCO INDUSTRY(UPI)도 마찬가지다. 육중한 선박이 강가에 만들어진 부두에 접안하자마자, 겐트리 크레인이 한개에 수십톤이나 나가는 핫코일을 번쩍 들어 땅에 내려놓는다. 그 사이를 트레일러들이 헤집고 다니며 핫코일을 공장으로 옮긴다. 거친 핫코일이 풀리면서 녹이 닦여지고 아연도금이 되는 공정은 굉음과 수증기로 덮여있다. 전공정을 거치고 만들어진 얇고 하이얀 냉연강판은 창고에 차곡차곡 싸여 고객을 기다린다. 한·미 합작으로 세워진 UPI는 마치 중간재인 핫코일의 시커먼 녹이 닦여지면서 캔의 소재인 은빛 냉연강판으로 제조되는 공정과 같다고나 할까. 합작한지 11년째인 UPI는 수천도의 열로 가열되고, 롤러 사이의 강력한 압력에 눌리는 신고의 과정을 거쳐 이제 아름다운 색깔의 고급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UPI의 탄생은 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84년말 포항제철이 미국 최대철강업체인 US스틸의 요청을 받아들여 도산직전이었던 캘리포니아 피츠버그 공장의 투자를 결정한다. 당시만 해도 국내기업들은 해외현지투자를 거의 생각지도 못했을 때였다. 포철은 마침내 86년 1월 US스틸과 공동으로 자본금 4억달러를 50대 50으로 투자, USSPOSCO를 출범시켰다.
UPI는 합작후 오랫동안 적자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미국 정부는 지난 92년 한미 혼혈기업에 수출하는 포철 핫코일에 반덤핑 예비판정을 내렸다. 덤핑율도 30%나 됐다. 미무역대표부(USTR)의 결정은 포철로 하여금 합작기업에 원자재를 공급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UPI에 근무하고 있는 미국인 간부와 한국에서 파견된 간부들이 공동으로 미국 정부를 상대로 덤핑 무혐의 판정을 위한 운동에 들어갔다. 이른바 회사살리기 운동이다. 이 운동에 더벅머리 미국인 현장 직원은 물로 노조까지 가세, 피츠버그의 쇼핑몰에 「USSPOSCO를 살리자」는 피킷을 들고 나섰고, 마침내 미국 정부는 포철의 핫코일에 대한 덤핑 예비판정을 없던 일로 할수 밖에 없었다.
덤핑 판정 위협이 사라지고 난후 UPI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경영정상화 노력이 빛을 발해 만성적자에서 벗어나 흑자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이 회사는 합작 9년째인 지난 94년 처음으로 2백80만달러의 흑자를 낸데 이어 다음해인 95년 흑자규모가 1천2백70만달러로 불어났다. 지난해엔 국제가격이 하락, 이익폭이 9백8만달러로 줄어들었으나 올해는 사상최대인 3천5백억달러의 흑자가 예상된다.
한미 합작의 모델로 세워졌던 UPI는 오랜 신고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모기업에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내려 캘리포니아 평원을 한시간여 달리면 공장지대가 나타나고 피츠버그에 도착한다. 미국 철강 줌심지인 동부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와는 스펠링이 다르지만 발음은 같다. 도시이름에서 UPI가 이 일대 공업단지에서 가장 중심되는 회사임을 알수 있다.
이 회사는 연간생산능력이 1백44만톤이지만, 지난해엔 생산능력보다 많은 1백55만톤을 생산했고 올해는 1백60만톤을 생산할 계획이다. 판매량은 94년 이래 생산량을 늘 웃돌아 재고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매출액은 94년 7억6천만달러에서 95년 7억7천3백만달러, 지난해엔 8억1천5백만달러로 증가 일로에 있다. 올해 매출목표는 지난해보다 4.7% 늘어난 8억5천3백만달러.
공장 내부는 포항이나 광양 제철소처럼 깔끔하게 정리돼 있고, 금발의 미녀들이 푸른 작업복을 입고 중장비를 운전하는 모습을 자주 볼수 있다. 직원 9백70명중 포철에서 파견된 직원은 12명으로 현지 미국인 직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최대의 철강회사가 합작회사를 세운뒤 처음으로 착수한 것은 현대화 사업. 낡은 기계를 현대식으로 뜯어고치는 현대화 공사는 86년 4월에 착공, 3년만인 89년 4월 완공했다.
UPI는 1차 현대화 사업에 이어 2차 현대화사업을 진행함으로써 수요자에게 높은 품질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올 6월말까지 타당성 조사를 통해 경제성 및 기술적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한후 1억달러를 들여 아연도금 강판 설비를 신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
UPI는 고객관리를 최우선에 두고 있다. 고객 서비스가 기업의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 존 유잉 사장의 경영철학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 수요자의 주문을 컴퓨터로 관리하는 「고객 재고 관리 시스템」이다.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계절별로 주문하면 컴퓨터에 의해 필요한 제품이 규격에 맞춰 생산돼 적기에 공급된다.
현대화 장비는 미국 서부지역에서 가장 질좋은 냉연강판을 만들어 내고 있고, 이제 남은 것은 판매기술, 즉 소프트웨어의 혁신이었다. UPI의 고객관리 노력은 미국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의 서비스 평가기관인 제이컵슨&어소시에이트는 최근 북아메리카에서 서비스가 가장 좋은 기업으로 UPI를 선정하기도 했다.
UPI는 이제 자타가 인정할 정도로 성공한 합작회사의 케이스로 꼽힌다. 기업이 일단 정상 궤도에 오르면 가속도가 붙는다. 2000년대엔 10억달러의 매출액을 올린다는 야심찬 목표다.<피츠버그(미 캘리포니아)=김인영 특파원>
◎인터뷰/존 유잉 UPI 사장/“한미간 경영조화 성숙단계 「고객만족」에 최대역점 둘것”
존 유잉 UPI 사장은 한미 합작 철강회사의 경영을 결혼에 비유, 『이제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 허니문 단계를 지나면 서로 자기주장을 하게 되고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결혼 11년째에 접어들면서로 이해하는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합작 초기에는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러나 이젠 서로(포철과 US스틸)의 오해를 해소하게 됐고,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유잉 사장은 합작이 성숙단계에 들어선 만큼 경영환경도 호전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지난 2년동안 UPI의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객과의 관계를 개선했고, 생산성을 향상시킨 덕분이지요. 특히 고객만족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부합니다. 최근 제이컵슨&어쏘시에이트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 회사가 미국을 포함해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서비스가 좋은 회사로 선정됐습니다.』
그는 직원과 고객, 기업 이익이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한게 UPI 성공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4분기에 벌써 지난해 이익을 상회했고, 올해 연간 3천5백만달러의 이익을 내 또다른 기록을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설비가 좋아야 좋은 제품이 만들어지지만, 단순히 설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신설비가 가동된후(89년) 3∼4년간 고전했습니다. 새로운 설비가 도입됐지만 효율적으로 가동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종업원들을 훈련시켜야 하는데, 이러는 과정에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따라서 신설비가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 94년부터 이익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유잉 사장의 요점이다.
존 유잉 사장은 『이런 계획들이 완공되면 기업의 수익력이 향상되고 자금 사정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면서 『USSPOSCO가 합작기업으로서의 좋은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