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에 이렇게 꼼꼼하지 그랬나.”
동양그룹 회사채에 투자했던 김모씨는 5일 상품 가입 당시의 녹취자료를 신청하기 위해 동양증권 지점에 들렀다 황당함에 혀를 찼다.
동양증권이 작성을 하라며 건넨 신청서가 ‘녹취 자료를 인터넷에 게시하거나 언론 등 제3자에게 제공하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내용의 경고와 함께 ‘이 같은 사항을 인식하고 있다’는 서약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불완전 판매로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이 피해자에게 법을 운운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마저 저버린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동양증권이 동양그룹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판매 녹취록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비밀유지 요구를 하고 있어 피해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동양증권이 피해 투자자들에게 작성하라며 나눠 준 녹취록 공개 신청서에는 투자자의 개인신상을 기재하도록 하면서 ‘계좌주 본인 및 대리인의 준수 및 서약 사항’을 신청서 절반에 가까운 분량으로 채워놨다. 신청서에는 ‘제공된 통화내용을 명시된 신청목적(청취, 분쟁조정신청 및 소송제기용 제공) 이외의 활용(인터넷ㆍSNS게시ㆍ언론매체 제공 등) 및 통화상대방(당사 임직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해당 녹취파일의 분실ㆍ유출로 피해가 발생할 경우 민ㆍ형사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향후 이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당 녹취파일의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을 서약합니다’라고 적혀있다. 준수사항 마지막에는 이에 대해 본인 서명을 요구하고 있고, 신청 후 고객에게 교부하는 접수 확인서에도 같은 내용이 명시돼 있다. 파일의 무분별한 유포ㆍ게시로 인한 상품 판매 직원들의 개인정보 유출과 마녀사냥, 혹시 모를 파일 악용 및 피해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동양증권측 설명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시선은 차갑다.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효과적인 법적대응을 하기 위해 인터넷이나 언론 등을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금지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사기판매’의혹을 받고 있는 동양증권이 피해자들에게 법적책임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괘씸하다는 분위기다.
동양그룹 계열사 CP에 투자한 한 투자자는 “상품을 팔 땐 형광펜으로 표시된 부분에 사인만 하면 된다더니 녹취파일을 줄 땐 (준수사항을) 잘 읽어보고 사인하라고 한다”며 “진작에 상품을 팔 때 그렇게 꼼꼼하게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