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꿈이었던 적이 없는 배우. 고등학교 시절을 철학 인문학에 빠져 보내다 우연히 입학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그는 연기를 전공하면서도 한 번도 연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15년째 연기를 하고 있고 영화는 10편을 넘게 찍었고 드라마, 연극, 뮤지컬에도 꾸준히 출연 중인 배우 문정희에 관한 이야기다. 기자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숨바꼭질’주인공 주희 역을 맡은 그를 2일 서울 중구 스테이트 타워에서 만났다.
문정희는 주희 역이 한국영화에서 희소 가치가 있는 역할이라 생각해 욕심났다고 했다. 그는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어서 배우적 상상력으로 주희를 만들어냈다고 전했다.“돈이 없어 전전긍긍했을 것이고, 항구 도시에 살면서 몸도 팔았을 것이고, 마음의 상처가 있어서 꼬여있을 것이고, 사람도 똑 바로 못 쳐다 볼 것이고, 불안해서 산만하고 분주할 것이고, 그런 여자가 학력도 좋을 수는 없을 것이고, 원초적인 본능만 남아있었을 것이고….”
영화는 몇 개의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문 씨는 극 전체의 분위기에 몰입하기 위해 영화가 차용한 사건과 비슷한 사례를 찾아봤다. “노숙자가 들어와서 음식도 먹고 돈도 훔쳐가는 장면이 담긴 뉴욕 아파트 사건 동영상도 봤고, 초인종 옆 암호도 찾아봤고, 수 십 명을 살해한 예순이 넘은 일본 연쇄살인범 사진도 찾아봤는데 글로 쓰여진 시나리오를 시각화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됐다.”그는 이어 “사진 속의 일본 연쇄살인범의 눈빛은 공허했고, 잡힌 것이 피곤하고 빨리 이 상황이 끝나고 쉬고 싶은 그런 표정이었다”며 자료 속 주인공에 대한 느낌을 자세히 설명했다.
문 씨는 2009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인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을 연출했다. 인터뷰 형식이었다. 이번엔 기자가 한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여배우 판타지가 아니라 특권이자 선물 같다. 돈도 벌고(웃음).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 역을 통해서 나를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그는 촬영현장에서는 드라마 ‘여왕의 교실’ 마 선생님이었다. 아역들에 연기지도는 물론 직업이라는 개념을 알려줬기 때문. 예를 들면 아역들이 눈물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면 감독은 늘 문정희를 불렀다고 한다. 그럴 때 그는 눈물의 종류에 대해서 묻고 지금 어떤 감정일 것 같은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또 아이들이 촬영장에서 조는 것을 보면 일을 하면서 졸면 어떻게 하냐 프로페셔널해져야 한다고 따끔하게 가르쳤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지인들은 문정희에게 배우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무명시절 생계는 살사댄스 강사로 유지했고 오디션은 수도 없이 떨어졌다. 홍상수 감독의 ‘오수정’도 그를 퇴짜 놓은 작품이다. 배우가 꿈도 아니었고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연기를 끝까지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할 수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역할을 해보자라고 결심했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