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나토-러 칼 끝 대립… 동유럽 '신냉전 화약고' 되나

'러시아 팽창주의' 유럽 위협에 나토 종전 핵무기 전략 재검토

美 "동유럽에 軍 중장비 배치"

유럽 국제질서 변화의 기로에


발트 3국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일대에서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국과 러시아간 '신냉전'의 불씨가 점차 커지고 있다. 유럽을 위협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팽창주의와 러시아 견제를 명분으로 가시화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정책이 맞붙은 가운데 러시아와 서구의 팽팽한 군사 대치는 우발적 충돌 우려까지 낳고 있다. 날로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감 속에 냉전 종식 후 형성됐던 유럽의 국제질서는 변화의 기로에 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나토가 고조되는 러시아의 위협을 이유로 종전의 핵무기 전략을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이끄는 나토와 러시아가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하는 대립 구도를 보이면서, 나토가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전제로 수립했던 핵 전략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옌스 슈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최근 나토가 러시아의 군사 위협 등에 대응하기 위해 냉전 종식 이후 최대의 방위력 증강을 단행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도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을 비롯해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의 나토 회원국에 군용 중장비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미국이 냉전 이후 독립한 구소련연방 출신의 나토 회원국에 중장비를 배치키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 지역에서 줄곧 군사력를 철수하기 바빴던 미국과 나토가 연일 러시아를 겨낭한 견제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은 최근 군사기술포럼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이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 배치할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대응이다.

러시아가 실전 배치할 미사일로 유력시되는 "RS-24 야르스'는 개별 조정할 수 있는 3~4개의 핵탄두를 장착하고 최대 1만1,000㎞ 거리를 날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신형 ICBM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뚫을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 푸틴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와 유럽의 국경에 군사장비를 배치할 경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나토측 인사에 따르면 러시아는 서부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주에 전투기와 탱크 등을 주둔시키고 병력을 대폭 증강 배치하고 있다.


러시아와 서구의 관계가 이처럼 냉전 종식 후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데는 지난해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탄압받는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분 아래 크림반도를 병합, 냉전 종식 이후 유지돼 온 국제질서를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뜨린 사건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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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는 1997년 러시아와 체결한 협정에 따라 동유럽에 영구적 군사장비 배치를 피해 왔으나, 러시아가 협정을 먼저 위반했다는 판단에 따라 미군의 중장비 배치 등 냉전 종식 이래 가장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상태다.

러시아는 서구의 '러시아 위협론'이 유럽이 러시아를 적대시하도록 만들기 위해 미국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라며 관계 악화를 서구 탓으로 돌리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정신이 나간 사람"만이 러시아가 나토를 공격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동유럽에서 날로 고조되는 양측의 긴장감은 이제 상호 비난이나 위협적 수사의 단계를 넘어 군사력 증강과 우호적 관계를 기반으로 했던 전략 수정의 단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유럽의 러시아 국경 지대 일대에서는 동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나토 회원국들이 대거 참여하는 군사훈련이 러시아의 군사훈련과 맞대결을 하듯 전개되면서 전투기의 굉음과 포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나토가 수행할 연합 군사훈련은 작년보다 100회 가량 늘어나 총 300회에 달할 예정이다. 러시아와 나토의 정면 군사충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냉전 시대와 흡사한 수준의 대규모 군사훈련이 연일 계속되면서 우발적 군사충돌 가능성도 높아지는 실정이다.

미 보스턴 소재 터프츠대학 법·외교대학원의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학장은 최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아직은 우리가 냉전에 진입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냉전이) 슬슬 시야에 들어오고는 있다"고 경고했다.

BBC에 따르면 최근 유럽 순방에 나선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도 아직까지는 "냉전을 시작하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푸틴 대통령 이후에도 러시아와 갈등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군사적 대비를 하고 있다"며 러시아와의 대치상태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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