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예비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가 취학통지서와 예방접종증명서를 들고 내원했다. 아이가 어떤 접종을 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환자의 기록을 살펴 보니 만 4세 이후 추가접종이 하나도 돼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만 2세까지는 예방접종에 신경을 쓰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예방접종에 소홀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만 2세 미만의 경우 90% 이상의 높은 기초 접종률을 보이지만 만 2세 이후 추가 접종률은 40%에 그치고 있다.
만 4~6세부터는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를 통해 본격적으로 단체생활을 시작하고 영유아기 예방접종으로 획득한 면역이 약해지는 시기이다. 따라서 예방접종을 통해 개인의 면역은 물론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단체생활 중에는 단 한 명의 발병이 집단발병으로 이어진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학교 내 감염병의 집단발병을 막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예방접종확인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예방접종확인사업에 포함돼 있지 않은 다른 감염병에 대해서도 엄마들 개개인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단체생활시 위험이 높아지는 치명적인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이 놓치기 쉬운 대표적인 감염 질환으로는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이 있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뇌와 척수를 둘러싼 막이 수막구균이라는 세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세균성 뇌수막염의 일종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 10명 중 1명이 수막구균 보균자로 보균자의 목구멍이나 콧구멍 뒤에 잠복하고 있다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나온 타액을 통해 감염되거나 컵이나 식기를 돌려쓰는 등의 밀접한 접촉을 통해 감염된다. 따라서 위생관념이 철저하지 않은 초등학생이 단체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수막구균 감염에 노출될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
특히 이 질환은 진행속도가 빠르고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조기 진단과 치료가 쉽지 않다. 감염되면 초기에는 고열이나 두통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데 환자들이 감기로 오인해 감기약을 먹고 참는 경우가 많아 12~22시간 후 출혈성 반점이나 의식상실 등의 전형적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손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에 감염되면 10명 중 1명이 사망하고 생존하더라도 5명 중 1명은 사지절단이나 뇌손상 등 치명적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백신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미국·영국·호주 등을 포함한 21개국에서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 백신으로 포함시켜 집단감염을 관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백신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치명적인 질환인 만큼 개별적으로 예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