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침체 징후를 보이자 대기업들이 현금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영업활동에 따른 현금흐름이 나빠지면서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줄어드는 반면 회사채를 비롯한 빚 상환시기는 속속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요 대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늘리는 등의 방법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17일 금융정보업체 Fn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상장사 101개 기업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60조원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말(78조7,000억원)보다는 18조7,000억원 줄었고 석 달 전인 3월 말과 비교해서는 8조3,000억원 감소한 것이다. 현금성 자산에는 정기예금 등과 머니마켓펀드(MMF)를 비롯, 단기 금융상품이 포함된다. 기업별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1ㆍ4분기 현금 보유액이 117조원을 넘었지만 2ㆍ4분기에는 92조원으로 15조원 이상 떨어졌고 현대차 역시 83조원에서 66조원으로 급감했다. 기아차는 25조원에서 18조원으로, 현대중공업도 28조원에서 23조원으로 내려갔다. 이에 따라 전체 101개 상장사 중 보유현금이 줄어든 곳은 65개사에 달했다. 전체 상장사의 64%가 보유현금이 줄어든 것이다. 현금이 늘어난 곳은 36곳에 그쳤다. 현금 순유입액을 나타내는 현금흐름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올해 2ㆍ4분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를 제외한 100개 상장사의 현금흐름은 28조6,000억원에 달했다. 올 3ㆍ4분기에는 25조8,000억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 3개월 만에 3조원 가까이 현금 순유입액이 줄어드는 것이다. 특히 현금유입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영업활동에 따른 유입액 감소는 눈에 띄는 대목이다. 실제로 한국전력, LG전자, SK C&C, 두산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9개 기업은 3ㆍ4분기 영업활동을 통해 현금이 유입되기는커녕 오히려 빠져나갈 것으로 추정됐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들의 현금 보관창고가 비어가는데 빚을 갚아야 할 시기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은행채ㆍ카드채 등을 제외하고 내년 만기 도래하는 순수 회사채 규모는 37조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중 1ㆍ4분기에 갚아야 할 금액만도 무려 13조원에 달한다. 그렇지 않아도 보유현금이 줄어드는데 현금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최근 대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크게 늘리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회사채 발행규모는 약 44조6,000억원 수준. 지난해 같은 기간(33조1,000억원)에 비해 34.9%나 늘어난 것이다. 이중 대기업들의 발행액은 44조원이나 된다. 한 대형 증권사의 회사채 발행 담당자는 "최근 회사채 발행물량은 금리가 좋은 우량 대기업들이라고 보면 된다"며 "이중 상당수는 미래 회사채 상환을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발행되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최근 발행되는 회사채는 미리 자금을 확보하려는 선발행 수요들"이라며 "글로벌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금리가 유리할 때 미리 현금을 마련해두자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발행수요에 비해 매수세력들의 투자심리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당분간 회사채 발행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증권사 회사채 발행 담당자는 "기업들이 금융경색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많기는 하지만 기관투자가들이 몸을 사리면서 쉽게 참여하지 않고 있어 발행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며 "신용등급 AA급이라도 기관들이 선별적으로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이 이런 이유"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