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건축, 권력자의 욕망? 시대의 아이콘?

■ 건축이라는 거대 욕망 (데얀 수딕 지음, 작가정신 펴냄)


히틀러의 베를린 총통관저는 나치 독일에 지배당한 수많은 국가 원수들이 이 총통관저의 끝없는 복도를 지나면서 히틀러의 권력에 위압감을 느끼고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사진제공=작가정신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로스엔젤레스의 디즈니 음악당

프랑스 베르샤유 궁전은 루이 14세의 별장으로 쓰기 위해 지은 건물이었다. 루이 14세는 그 자리에 호화로운 건물을 세워 지방 귀족들의 세력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로부터 200년쯤 후 나폴레옹 3세는 조르주 외젠 오스망에게 파리의 도시 공간 전체를 재설계하는 임무를 맡겼다. 폭동을 일으켰던 파리 시민들의 힘을 억누르고 그의 황제 칭호에 대한 의심을 없애는 정치권력의 도구로 도시 건축을 활용하려 한 시도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파리를 현대 유럽의 명실상부한 중심지로 만든다는 전략을 실현하려면 루브르 박물관 재건축과 라데팡스의 신개선문 건립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영국 출신의 유명 건축비평가인 저자는 20세기 이후 폭발적으로 진행된 거대건축의 역사를 조명하며, 가치중립적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건축의 이면에 숨겨진 역학 관계를 쫓는다. 책의 원제인 '거대건축 콤플렉스'는 거대 구조물을 건축해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고자 하는 심리를 뜻한다. 거대건축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진시황의 만리장성 건축이라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드러나는 인류의 보편적인 욕망이다. 단순히 규모가 크거나 높은 건물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라 도시계획이나 국토개발계획 수준의 광범위한 건축을 의미하기도 한다. 건축은 언제나 한정된 자원과 부족한 노동력의 분배에 의존하는 까닭에 자본과 권력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거대건축은 건축가의 창조적 욕구 때문이 아닌, 권력자의 욕망 때문에 지어지기도 한다. 권력자 입장에서 대규모 건축 공사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다 자신의 능력과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히틀러가 건축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스로 건축가가 되길 원했던 히틀러는 최측근이던 건축가 알레르트 슈페어를 통해 총통관저와 대규모 건물을 끊임없이 지었고 거대한 기념 건축물로 가득한 도시 게르마니아를 구상하기도 했다. 스탈린, 무솔리니, 마오쩌둥 등 거대건축에 집착했던 역대 권력자들과 이들에게 협조함으로써 역사에 남는 건축물을 남긴 건축가들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르 코르뷔지에가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과 협력하고 스탈린의 건축 설계 경기(競技)에 참여했던 비화, 히틀러에게 공감하고 파시즘 정당에 관여했던 필립 존슨이 뛰어난 처세술을 발휘해 건축계의 스타로 변신한 이야기 등은 흥미진진하다. 그렇다고 모든 건축이 권력자의 욕망 때문에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건축이 명확한 목적을 잃고 표류하거나 건축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영국의 블레어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밀레니엄 돔 건설이 '현대성 상징'이라는 당초 목적을 잃고 매각되는 지경에 이른 사례라든가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이 검찰 수사를 받을 정도로 과다한 비용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의사당 본연의 가치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평가받는 것 등이다. 이 밖에도 미국 대통령들의 기념도서관 건축 경쟁,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는 종교 건축, 아이콘이 되기를 바라는 미술관과 박물관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건축은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아울러 아시아까지 확대된 고층건물 경쟁을 다루면서 바벨탑을 지으려는 인간의 욕망도, 고층건물 신드롬도 지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저자는 "인류가 건물을 짓는 동기, 건축과 권력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한다면 우리의 존재에 관한 핵심적인 통찰을 얻을 뿐 아니라 건축을 이용한 악의적 조작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며 건축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조언한다. 2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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