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중국이 위안화를 달러화나 유로화처럼 국제통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을 때 국제사회 대부분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금융시장의 개방성이 떨어지고 금융구조나 유연성도 부족한 '금융 후진국'이 국제화를 이뤄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
중국 정부는 뚝심 있게 위안화 무역결제 확대, 역외 위안화 시장 조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손해를 초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국과 통화스와프 계약도 늘려나갔다. 위안화는 결국 지난해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비중이 8.7%까지 늘어났다. 유로화(6.6%)를 제치고 달러화에 이어 세계 2위의 국제통화 자리에 올라서게 된 셈. 중국의 도전을 비웃던 국제사회들도 이제는 위안화 거래량 확대를 위해 중국 금융시장에 구애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허브의 계획을 내놓았다. 오는 2015년까지 아시아 지역 3대 금융허브로 발전시킨다는 게 골자다. 결과는 신통치 않다.
그래도 동북아 금융허브를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보기술(IT)이나 자동차 등 제조업 중심의 경제성장 모델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그 대안으로 서비스산업, 특히 고부가가치 영역에 속하는 금융서비스 부문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요구는 여전하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 역시 같은 흐름이다. 동북아 금융허브 달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과제를 해결하고 경쟁력을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금융허브의 역할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결해야 할 과제를 꼽고 이를 집중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먼저 법 체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금융업종 상품 간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금융시장에서는 은행·증권·보험 등 권역별로 구분돼 있는 법 체계를 기능별로 재편하는 것도 방법이다. 동시에 금융시장 진입 및 업무영역, 자산운용, 감독기구 등 기능별 법 체제의 구축이다.
감독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고 금융산업별 균형 있는 성장도 가능하다. 금융 관리·감독 체계의 선진화는 외국계 금융기관에 우호적인 투자여건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민간 금융회사의 경영사안에 대한 지나친 개입 대신 시장의 리스크 요인을 조기에 파악하고 이를 적절한 감독수단을 통해 해결하는 사전적 예방기능의 강화가 핵심이다. 감독 부문은 시스템 리스크 최소화와 규제 완화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도 유지해야 한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런던·더블린·룩셈부르크 등 금융허브 도시들은 각종 금융혜택을 제공하면서도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동일한 수준의 감독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며 "유연한 감독 집행이 규제 회피나 차익거래 목적의 자본을 필터링하고 금융허브 실현을 위한 투자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입 및 외환시장의 선진화도 중요한 과제다. 최근 국내 자금시장은 외국환은행의 하루 평균 외환거래량이 500억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유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외환자유화 조치 중 채권 회수 의무, 외국환 업무 취급 자유, 해외부동산 취득 자유화 등 추가 규제 완화의 목소리는 높다. 외국인의 자본거래 규제는 반드시 철폐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거주자의 원화증권 발행 제한, 원화차입 제한, 비거주자 간 원화거래 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박해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본자유화와 관련한 잔존 규제들을 철폐하거나 완화해 자본계정에 대한 태환성을 높여주고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국가 리스크를 줄여줘야 한다"며 "원화의 태환성이 보장될 경우 해외투자가들의 국내 참여는 물론 채권시장의 국제화 실현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