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국내 호텔 100년… 변천사 보니

현대사와 함께한 정치·경제·사교의 장… 이젠 관광산업 주무대

모던보이 아지트… 외화벌이 교두보… 한국 홍보대사… 나이트클럽 문화…

1970년 재개관 당시 조선호텔. /사진제공=조선호텔

국내 첫 민영호텔인 1950년대 금수장(그랜드 앰배서더 호텔 효시) 초기 모습. /사진제공=그랜드 앰배서더 호텔

1965년 금수장에서 개명한 '앰배서더'의 옛 프론트 데스크. /사진제공=앰배서더

1965년 금수장에서 개명한 '앰배서더'의 옛 객실 내부. /사진제공=앰배서더

1976년 지금의 서울프라자호텔인 '더 플라자' 개관 당시. /사진제공=서울프라자호텔

1970년 현재의 조선호텔로 신축 개관식 당시 이를 축하하러 온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테이프 커팅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조선호텔

1963년 워커힐 개관을 기념해 특별 초청된 재즈계의 왕자 루이 암스트롱이 워커힐 퍼시픽 무대에서 축하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워커힐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 패티 김은 어느 호텔의 전속 가수였을까. 무용가 최승희씨 사진에서도 등장하는 1930년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아지트는? 1960년대 엄앵란과 신성일 커플의 '세기의 결혼식'은 어디에서 열렸을까. 금발의 섹시 심볼 마릴린 먼로가 1950년 6.25 전쟁 때 주한 미군 위문공연단으로 방한했을 때 묶은 호텔은 어딜까. 워커힐 호텔이 '워커힐'인 이유와 건물 이름의 유래는? 천재 작가 이상의 다방 '낙랑파라'가 있던 장소는?

한국의 호텔이 벌써 100년 역사를 맞게 됐다. 10일로 개관 100주년을 맞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이 '100년 역사 호텔'의 첫 테이프를 끊으며 제2, 제3의 '100년 호텔'이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국내 호텔은 현대사와 궤를 같이 했다. 1960년대는 외화 벌이를 위한 주무대였고 1970년대는 국내 주요 재벌그룹의 각축장이 됐다. 올림픽이 열린 1980년 시대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홍보대사였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호텔이 마담뚜를 주축으로 한 맞선 장소로, 학생운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세대였던 X세대가 나이트 문화를 만들어 낸 요람이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호텔은 외국 관광객 1,200만명 시대를 맞아 관광산업의 핵으로 부상했다. 국내 관광 역사를 써가고 있는 지금 한국 호텔의 과거를 조명해 본다.


웨스틴조선호텔 10일 개관 100주년

패티김이 전속가수·마릴린먼로 묵기도


한국 최초의 호텔은 무엇일까. 개항 초기 이름 없는 소규모 호텔도 존재했지만 1888년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가 지은 '대불 호텔'이 한국 최초 호텔로 여겨진다. 1889년에는 청국인 인천 '스테워드 호텔'과 1902년 지금의 서울에 초대 러시아 공사인 칼 베버와 함께 내한한 처형 손탁에 의해 최초의 서구식 호텔 '손탁호텔'이 개관한다. 1912년부터는 부산 철도호텔을 시작으로 1914년 신의주 철도호텔, 1922년 평양철도호텔 등이 계속 문을 열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호텔인 조선호텔은 1914년 10월 10일을 기점으로 호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조선호텔이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호텔인 만큼 국내외 유명인들과 얽힌 에피소드가 다채롭다. 패티 페이지를 좋아해 '패티'라는 예명을 붙였다는 가수 패티 김은 가수로서의 시작과 끝을 조선호텔과 함께 했다. 그는 미8군 가수로 시작한 조선호텔 전속 가수였다. 조선호텔에서 눈에 띄어 실력을 인정받은 패티 김은 이를 기반으로 미국 진출에 성공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조선호텔에서 공연을 이어 나갔다. 은퇴 기자 회견 역시 조선호텔에서 가졌다. 미국 섹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한국에 방문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는 한국에 6.25 전쟁 때 주한 미군 위문공연단 일원으로 왔고 40년이 지난 1990년에는 마릴린 먼로를 빼 닮은 여배우가 공연을 위해 찾았다. 그들 모두 조선호텔을 택했다.

한국 호텔에도 1979년 정부의 봉사료 제도 시행령이 발표되기 전까지 팁 문화가 있었다. 해방 직후 조선호텔에 처음 투숙한 한국인인 이승만 박사는 323호에 투숙해 서비스를 담당하던 손수산씨에게 80원의 팁을 줬다. 그는 팁으로 쌀 반 가마를 샀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 당시 도어맨 권문현씨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만나는 모든 직원에게 당시 100달러씩 팁으로 줬다"고 기억했고 "미국 슐츠 국무장관이 왔을 때는 500달러를 받은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1930년대 한국 팜코트에서 커피를 즐기는 무용가 최승희씨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조선호텔은 이른바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즐겨 찾는 장소였다. 1924년 생긴 한국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 '팜코트(현 9th 게이트)'는 새로운 문화를 선보이는 만남과 사교의 장으로 통했다.

38년 설립 반도호텔 신격호회장 인수

79년 37층 높이 롯데호텔로 재탄생


조선호텔은 고위관리 등 특수층에만 이용이 한정돼 직원들의 콧대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동경제대 공학부 출신 신흥재벌 노구치 시타가우는 어느 날 당고바지에 지가다비를 신은 허름한 차림으로 조선호텔을 찾았다 직원의 면박으로 되돌아 나와 1938년 조선호텔을 내려다 볼 수 있는 8층짜리 호텔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현재 롯데호텔의 전신인 반도호텔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미국 대사관과 미국 경제협조처 사무실 겸 직원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 초 반도호텔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해 한국 진출을 시작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에게 매각을 추진했다. 당시 법령이 41층 이상의 고층 빌딩이 허용되지 않는 바람에 37층 높이로 지어졌고 1979년 3월 현재 롯데호텔서울로 태어나게 됐다.


최초 민영호텔 앰배서더 전신 금수장

관련기사



"한국 대표 대사관 되겠다" 65년 개명


한국 최초의 민영 호텔은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이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5년, 휴전 후라 미군의 주둔과 UN 위원들의 방한으로 호텔 수요가 늘면서 관광호텔 설립이 활기를 띠었다.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의 창업주 고 서현주 회장은 그 해 10월 1일 민간자본으로는 국내 처음으로 '금수장'을 열고 호텔사업에 뛰어들었다. 1965년 8월 '앰배서더'로 호텔명을 바꿨는데 이 이름엔 호텔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사관이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1980년대 후반 미국계 대형 호텔 체인이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앰배서더는 프랑스 계열의 호텔 체인 그룹인 '아코르'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유럽식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작가 이상의 다방' 있던 프라자호텔

중식당 '도원' 故정주영 회장 등 단골


조선시대 하늘에 별이 떨어지거나 변고가 있을 때 왕이 친히 제사를 지낸 곳인 '지천사'가 있던 자리. 태종 8년 태평관이 가까워 중국 사신의 수행원 숙소로 이용했던 곳. 1932년 천재 작가 이상이 설계한 소공동의 '낙랑파라'는 다방 장소로 예술가들이 모여 고전음악을 감상하고 예술을 논하던 사교 공간. 모두가 역사의 향취가 녹아 있는 서울프라자호텔이다. 덕수궁, 경복궁, 정동, 광화문, 명동, 인사동 등 도보 가능한 지리적인 이유로 정재계 거물이 많이 찾는 호텔로 유명하다. 특히 1976년 호텔 개관과 함께한 유서깊은 중식당 '도원' 단골 중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표적으로 일주일에 3~4번씩 도원을 찾았다. 1992년 대통령 선거 직후 건강 악화로 서울중앙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호사를 동행해 도원의 자장면을 먹은 일화가 있을 정도다. 고 백두진 전 국무총리, 김명호 전 한국은행 총재는 탕수육을 특히나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60년대 미군 휴양시설로 탄생 워커힐

신성일·엄앵란 '세기의 결혼식' 올려


워커힐은 정부 주도의 관광사업 일환으로 1963년 4월 8일 문을 열었다. 우리 땅에 마땅히 위락시설이라고 할 게 없던 1960년대, 주한미군이 휴일이나 휴가 때 일본에 가지 않고 국내에서 외화를 쓰도록 하기 위한 종합유양시설로 탄생했다. 호텔 이름도 맥아더 장군과 함께 6.25전쟁의 영웅이자 북진작전 지휘 중 지프차 전복 사고로 전사한 월턴 H. 워커 초대 미8군 사령관을 기려 '워커 장군의 언덕'이라는 뜻의 워커힐로 지어졌다. 워커힐 호텔 안의 5개 동 건물도 더글러스, 매튜, 맥스웰, 제임스, 라이만처럼 한국전에 참전한 역대 유엔 사령관의 이름에서 따왔다.

워커힐은 해외 인기 연예인 초청 공연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미국 재즈계의 왕자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해 코코스시터스, 비어시스터스, 자니 브러더스, 수전 바렛, 코미디언 리오 데 라이언 등이 이 호텔 퍼시픽 무대에 섰다. 존슨 미국 대통령(1966년), 마이클잭슨(1996년)이 워커힐에 묵어 주목받았고,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때 요르단 국왕이 워커힐 숯불갈비 전문 레스토랑 '명월관'을 두 번 방문해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그는 요르단으로 들어가기 전 수펙스 김치와 갈비 75인분을 포장해갔다.

유명 연예인의 웨딩과 호텔은 불가분의 관계. 1960년대 엄앵란과 신성일 커플의 '세기의 결혼식'이 열린 곳도 워커힐이지만 그들의 데이트가 밝혀진 것은 조선호텔 무도회장이었다.

88서울올림픽 때 설립 인터컨티넨탈

아셈·G20 등 국제회의 대표 호텔로


조선시대에는 수산업, 일제강점기에는 양잠과 배농사가 성행하고 해방 이후에는 농지 개혁을 통해 서울 지역에 채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던 강남. 이 지역에 처음 들어선 호텔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남북한정상회담 때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부대시설 확충을 위해 세워졌다. 이후 아셈정상회의, G20 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등의 국제행사의 대표 본부호텔로 이제는 국내외 MICE(국제 회의·전시회·관광) 산업을 선도하는 호텔로 자리 잡았다. 1999년에 오픈한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는 G20 회의의 대표 본부 호텔로 국외 10여 개국 정상들이 투숙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