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절벽시대… 중산층을 키우자] <2> 빚더미에 짓눌린 가계

주요국 빚 줄이는데 한국은 역주행… '돈 못쓰는 중산층' 늘어난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 10년새 34%P↑

소비·내수위축→저성장→빚 증가 악순환 위기


금리 오르고 집값 내리면 155만 가구 부실화 우려

점진적 디레버리징에 일자리 늘려 소득 증대 필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4개 선진국과 우리나라 간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세계적인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축소) 흐름 속에 4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02년 평균 79.0%에서 2013년 77.7%로 줄어든 반면 우리나라만 같은 기간 15.0%포인트 급증했다. 그것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대까지 둔화되는 가운데 가계부채가 늘어난 결과 올 1·4분기 평균소비성향은 72.3%(2인 가구 이상)로 역대 최저로 추락했다. 자칫 소비위축이 생산과 고용·소득 감소로 이어져 다시 소비위축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귀결되리라는 우려가 높다. 이렇게 되면 우리 경제의 기둥인 중산층 기반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이용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선진국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도약기 전후로 민간소비가 디딤돌 역할을 한 데 비해 한국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급격한 고령화, 고용 및 주거 불안 등으로 소비가 얼어붙은 판에 가계부채까지 더해져 실타래가 더 꼬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실장은 "한국 경제는 가계부채가 늘어도 경제의 전체 수요는 증가하지 않는 구조적 함정에 빠졌다"며 "가계부채를 줄이는 동시에 일자리를 늘려야 소비진작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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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에 씀씀이도 줄어…흔들리는 중산층=가계 현실은 사면초가다. 아이들 교육비에 노후는 불안하고 전세난으로 주거비용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여기에 실직·구조조정 등으로 소득 불확실성은 커져 빚에 더 의존하게 된다. 1년 새 75조원이 불어 올 4월 이미 1,100조원을 넘긴 가계부채 급증세가 여태껏 꺾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민간소비 증가율은 올 상반기까지 4년 연속 1%대에 갇혀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가계부채가 차입을 통한 지출로 이어지지 않을 만큼 수요부진이 구조적이라는 얘기다. 고가영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000년대 초중반과 달리 장기성장에 대한 기대수준이 확연히 낮아져 소비성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안정적인 수요확대 대책을 마련해 중산층 기반이 약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가계부채 비중만 봐도 중산층의 살림이 빚으로 얼마나 팍팍해지고 있는지 나타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149.7%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5년 뒤인 2013년 160.8%까지 뛰었다. 10년 전인 2003년과 비교하면 무려 34.3%포인트 올랐다. 문제는 미국의 금리인상 등과 맞물리면 중산층 위기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향후 시중금리가 2%포인트 오르고 집값이 10% 하락하면 대략 155만가구(전체 가구의 14%)가 부실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점진적 부채축소, 투자 장려책 절실=소비를 옥죄는 요인이 얽히고설킨 만큼 대응은 섬세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계부채 축소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임 실장은 "안심전환대출에서 보듯 분할상환대출 촉진 정책은 소비를 줄인다"며 "디레버리징 속도가 너무 빠르면 소비부진을 악화시키거나 자산가격의 하락 압력을 키울 수 있다"고 꼬집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행복기금에 취업·창업 기회 확대 방안을 넣은 것처럼 부실계층 지원은 소득창출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득을 늘리는 근본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고 선임연구원은 "관광·헬스케어 등 수요가 급증할 수 있는 서비스 부문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 교수는 "기업 이익이 일자리로 연결되도록 고용증대 정책을 펴야 중산층 토대가 넓어진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김정곤 차장(팀장), 최형욱 뉴욕특파원, 이상훈·이연선 차장, 박홍용·구경우·김상훈·이태규·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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