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의 자율성/권홍우 정경부(기자의 눈)

지난 83년,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이던 위컴 대장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었다. 『한국인은 들쥐와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옳거나 그르거나 지도자만 좇아 움직이는 들쥐의 습성을 한국인에 비유했다. 파문은 컸지만 5공의 서슬퍼런 통제아래 우방국 장성의 발언은 유야무야됐다.그로부터 십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열망하던 대통령 직선제도 맛봤다. 군출신 아닌 대통령을 직접 뽑기도 했다. 일개 장성이 들쥐라고 깔봤던 한국인들이 직접 이룩한 성과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경제난국과 처방을 바라보면 과연 우리는 변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경제란 기본적으로 공급과 수요라는 시장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자본주의 경제는 특히 그렇다. 시장원리는 사회주의에서나 무시된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경제에는 시장원리나 정책이 없다. 단지 「구호」만 있을 뿐이다. 불과 두 달전까지도 『우리 경제는 위기가 아니다』했던 정부가 갑자기 「경쟁력 10% 높이기」를 제창한 이후 온 나라가 구호에만 매달리고 있다. 좋은 일이다.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자는데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 문제는 경쟁력 끌어올리기에 대한 맹신이 자칫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데 있다. 7일 한 시중은행이 금리를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은행들도 이에 뒤따를 예정이다. 이를 뒤짚어 보면 그동안 은행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 대목에서 은행들은 금리인하가 경제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게 아니라고 실토한다. 단지 경쟁력강화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뭔가 해야겠기에 금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같은 경험은 이미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당시 부총리의 금리인하 촉구발언 때도 은행들은 앞을 다퉈 금리를 내렸었다. 결과는 불과 3∼4개월 후의 극심한 자금난으로 나타났다. 그 당시도 부총리가 내세웠던 논리는 경쟁력 강화였다. 경제적 동기와 시장원리가 무시된 결정은 궁극적으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는 한가지 구호에만 매달리고 있다. 우리를 분노케 했던 한 미국 군인의 지적이 과연 맞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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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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