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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더 안좋다" 심각해진 MB
MB, 유럽위기 보고 받고 "예상보다 더 안좋다" 시종 굳은 표정[짙어지는 위기감 긴장하는 정부] ■ 심각했던 국무회의1월 무역수지 '비상등' 23개월만에 적자 가능성… 수출부진 우려 현실로"긴장 끈 늦추지 말라" 경제전망 재점검 지시성장률·물가전망 등 수정… 정책변화도 뒤따를듯
김현수기자 hskim@sed.co.kr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세종실로 입장하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유럽 재정위기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왕태석기자
17일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세종실로 입장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옆에는 평소와 달리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바짝 따라붙었다. 항상 수행하던 하금열 대통령실장은 한 걸음 정도 물러나 뒤를 따랐다. '신용등급, 무디스 발표, 휴장' 등 간간이 들리는 이 대통령과 박 장관의 대화는 유럽 재정위기의 파고가 한국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국무회의가 시작되고서도 이 대통령은 박 장관에게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 등 유럽 재정위기가 주변국에서 중심국으로 전이되며 한국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통상 법률안 개정 및 부처 보고 등이 이뤄지는 국무회의에서 이날은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보고와 대책논의가 이뤄질 정도였다.
국무회의 직후 이 대통령과 부처 장관들은 이례적으로 30분 동안 유럽 위기에 대한 보고와 토론을 진행했다. 보고와 토론을 들은 이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유럽 위기가 예상보다 더 나쁘다"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날 국무회의는 이렇게 곳곳에서 위기감이 짙게 배어나왔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소장은 이날 유럽 주요국 신용등급 강등 등 최근 국제 금융시장 동향 및 평가에 대한 보고를 했다. 이어 각 부처 장관들은 실물경제 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특히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1월 수출 전망이 좋지 않다"며 "23개월 만에 무역수지 적자가 날 수도 있다. 면밀히 대비하고 점검해나가고 있다"고 보고했다.
수출을 담당하는 주무장관의 이 같은 보고는 신규 수주 등의 변수에도 불구하고 1월 무역수지 적자 전망을 공식화한 셈이다. 관세청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10일까지 수출은 118억달러, 수입은 144억달러로 무역수지는 26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2010년 2월 이후 줄곧 흑자를 이어왔다. 그러나 유럽이 최대 시장인 조선ㆍ태양광 등의 수출이 유럽 위기로 지장을 받으며 흑자행진에 걸림돌이 됐다. 이와 관련, 이언 톰슨 스탠더드앤푸어스(S&P) 이사는 16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ㆍ싱가포르 등 수출 주도 경제는 이미 유럽 부채위기로 수요가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수지 적자 전환 전망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홍 장관은 18일 삼성전자ㆍ현대차 등 국내 대표업종별 대표기업 10여곳과 수출입 동향 점검회의를 개최한다.
문제는 무역수지 적자가 설 명절 등 계절적 요인이 작용하는 1월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경우 경상수지도 흑자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환율 등 금융시장은 물론 실물경제에도 바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의식한 듯 박 장관은 "1ㆍ4분기 경상수지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있고 신용평가기관들에도 충분히 설명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유럽 위기의 파고에 이 대통령은 올해 우리 경제전망도 재점검하라고 지시했다. 보고와 토론 이후 이 대통령은 "유럽 재정위기에서 촉발된 경제상황을 지금 상황에서는 예단하기 힘든 만큼 1ㆍ4분기가 지난 뒤 보다 명확한 경제전망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면서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정책을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말은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을 분석해 경제성장률ㆍ경상수지ㆍ물가 등 각종 거시경제 지표에 대한 전망 수정은 물론 경기상황에 따라 정책변화도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부에서는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되고 우리 실물경제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경우 정부 입장에서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확장적 경제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유럽 재정위기 여파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만큼 지나친 위기감 조성을 경계해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유럽 재정위기가 주변국에서 중심국으로 전이되는 상황이라 예의 주시해야 한다"면서도 "국내적으로 받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지금 위기상황을 잘 분석하고 긴장감을 갖고 정부가 대응하고 있는 만큼 국민들께도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잘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부분이 있으면 협조를 구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