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

오빠 권유로 화랑 밑바닥 일부터 시작 "감성경영·섬세함으로 일류기업 만들 것 "

'작자 미상' 민화 낙찰가 1억 넘었을 때 가장 극적

옥션 문턱 낮추고 입찰 주저않도록 시스템 개편

판매작품 책임운영 ·투명화·상생 통해 제2 도약



경매현장은 언제나 뜨겁다. 가을 메이저 경매가 열린 서울 평창동의 서울옥션 스페이스. 작자 미상의 '민화경작도'라는 고미술품이 2,000만원에 나오자 경매장 안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100만원을 호가하는 패(번호표)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기를 수십 회, 불꽃 튀는 경쟁에 작품값은 1억원이 넘었다. 최종 낙찰가 1억353만원을 알리는 망치질 소리가 울려퍼지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경매장 맨 뒤에서 이 모든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한 여성의 어깨가 그 순간 살짝 떨렸다.

국내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이자 미술계 유일의 코스닥 상장기업인 서울옥션의 이옥경(53·사진) 대표다. 화랑 밑바닥 일부터 시작해 국내 정상급 미술품 유통업체인 가나아트센터 대표를 거쳐 미술품 경매회사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그다. 지난 6월 서울옥션 CEO로 취임해 치른 두번의 메이저 경매와 다수의 온라인 경매를 성공적으로 치른 이 대표는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이 작자 미상의 민화 경매를 꼽았다.


"낮게는 1,500만원까지 추정가가 매겨진 작품이 1억원을 넘길 정도로 치열했죠. 우리나라의 옛 풍속화인데 그 잊힌 풍경을 많은 분들이 좋아하더라고요. 현대미술은 추정가가 비교적 분명하고 추정가 내 경합이 대부분이지만 고미술은 예측불허입니다. 특히 작자 미상의 작품은 모호한 부분이 있기에 가격 매기기가 더 어려운 반면 컬렉터(작품 수집가)의 확신과 안목에 의해 경합에 불이 붙죠."

서울여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이 대표가 미술계에 투신한 것은 의외였다. 9남매의 막내인 그에게 여섯째 오빠가 "화랑 일을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권해 가나아트에 입사한 것이 계기였다. 미술계에서는 입지전적 인물로 꼽히는 오빠 이호재 회장은 가나아트와 서울옥션의 창업주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술품 유통사업, 즉 '화랑 일'은 아는 사람들끼리 사고파는 알음알음 사업이었고 운영도 주먹구구식이 많았다. 이에 가나아트는 해외전시를 개척했고 전속작가제, 조각공원 조성,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 신규 사업 모델을 시도했다. 이 대표는 올해로 21년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고 성공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오빠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 2001년부터는 이옥경 대표가 가나아트를 이끌었다.

"이호재 회장은 저를 이끌고 가르쳐준 롤모델입니다. 가장 본질적인 '미술 애호'를 잊지 않고 사심 없이 문화에 대한 사명감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덕목이죠."

20년 이상을 미술판 최전방에서 있었던 이 대표지만 경매회사를 이끄는 게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 '할 일'은 있어 보였다.

"갤러리스트(화랑 종사자) 경험으로 볼 때 서울옥션이 손님을 대하는 섬세한 태도와 책임감 같은 것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온라인 구매고객에게 무료배송과 설치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대표적이죠. 게다가 온라인 옥션은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도 중점을 두는 중요한 분야입니다. 갤러리의 문턱이 높듯 옥션에도 존재하는 나름의 문턱을 낮춰 부담 없이 감상하고 주저하지 않고 입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고무적이게도 제가 취임한 후 열린 온라인 경매에서 수십 명의 신규 고객이 생겼는데요, 감사한 마음에 제가 한분 한분께 직접 편지를 써 인사를 드렸죠."

감성경영과 책임운영에 대한 이 대표의 확신은 '대성공'이었다. 8월의 온라인 경매는 낙찰률 76%, 낙찰 총액 6억6,165만원으로 당시까지 열린 온라인 미술경매 중 최고 낙찰률과 최대 낙찰액을 기록했다. 이어 29일 열린 온라인 경매에서는 고(故) 장욱진의 '진진묘'가 5억2,500만원에 팔려 온라인 경매 사상 최고가 낙찰작 기록을 다시 썼고 77% 낙찰률과 15억원 낙찰 총액으로 또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죽어 있던 고미술 시장과 판화 시장을 '기사회생'시켰다는 시장 평가가 뒤따랐다.

"온라인 경매에 대해 저가 작품 재고처리라는 부정적 인식이 있기에 이것을 깨는 게 급선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억대급 작품을 포함시켰는데 사실 내부에서도 '과연 온라인으로 고가 작품이 팔릴까'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온라인 옥션은 엄선한 미술품뿐 아니라 '디자인 옥션' 등 재미와 테마가 있는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해 운영할 생각입니다. 기술적 문제도 보완해 내년부터는 해외에서도 직접 입찰이 가능할 수 있도록 개선할 계획이고요."

2008년 코스닥에 상장한 서울옥션은 그해 가을 터진 뉴욕발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 미술 시장이 침체 일로를 걸으며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일련의 공격적 마케팅으로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올 상반기 역시 흑자를 지속하고 있다. 6월 이 대표의 취임과 곧이어 열린 여름 메이저 경매를 기점으로 주가도 최근 3년 평균 대비 150%가량 급등했다.

"그래도 숫자에 연연하기보다는 주체적인 안목으로 시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봅니다. 서울옥션은 상장기업이자 문화기업으로 부담이 따르는 게 사실입니다. 경쟁사들 간에 하루이틀 사이로 경매가 열리고 당일 즉시 매출이 발표되는데 일희일비하며 휘둘리면 위험에 빠집니다. 일등도 중요하지만 순위의 최고가 되는 일등보다 일류기업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부분을 먼저 찾아내 섬세한 부분을 챙기고 신뢰가 구축되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더불어 이 대표는 침체에 빠진 국내 미술 시장 전반을 일으키는 것이 서울옥션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대전제라고 강조했다. 경매회사는 '시장 양성화' '책임제' 등 미술 시장의 보완적 요소를 실천하고 있다.

"처음에 미술 경매회사가 생겨난 것이 '판로 개척'을 위해서였어요. 갤러리에서 그림을 파는 것에 한계가 있던데다 미술품은 전시가격과 판매가격 불일치라는 '이중가격' 구조 등 시장 형성의 문제점이 있었거든요. 서울옥션이 15년 이상 꾸준히 경매를 진행하다 보니 '가격 데이터'가 형성돼 추정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됐습니다. 구매자들도 제값에 제대로 작품을 샀는지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게 돼 자연스럽게 미술거래 '투명화'가 이뤄졌고요. 서울옥션의 경우 판매작품에 대한 '책임운영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외국 경매회사는 감정 부분에서는 책임을 안 지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는 진위 문제까지도 책임질 정도로 자신감이 있고요. 타 화랑이나 딜러와 공생하는 '상생구조'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한편 서울옥션은 홍콩법인을 두고 연 2회의 대규모 경매를 현지에서 진행한다. 이 대표는 이를 연 3~4회로 늘리고 경매를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할 계획임을 밝혔다.

"홍콩옥션의 경우는 구매자의 80%가 외국인입니다. 해외에서 새로운 컬렉터를 개척할 수 있는 기회죠. 오랜 갤러리 경험으로 어떤 작가를 어떤 해외시장에 매칭했을 때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제 나름의 요령을 터득했습니다. 그 노하우를 과감히 경매와 연결해 홍콩·싱가포르·대만 등지에 적극적으로 한국 작가를 알릴 생각입니다. 다음달 24일 열릴 홍콩경매에 맞춰 '단색화'에 대한 컨퍼런스도 기획했고 다양한 'K아트' 확산전략을 기획 중입니다. 이게 성공하면 새로운 한국 미술품의 판로를 개척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거든요."

그의 반짝이는 눈은 대략 10년 주기의 미술 시장이 곧 만나게 될 '제2의 도약기'를 내다보고 있었다.


메이저 경매 연 4회… 온라인에선 내년부터 매달 열기로

●서울옥션 경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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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대한 동경과 거리감을 동시에 갖는다고 얘기한다. 미술품 경매회사는 이런 부담을 줄이고자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매에 대해 '어렵다' '잘 모른다'는 대중이 많다는 것에 이옥경 대표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서울옥션은 1년에 메이저 경매를 4회 실시한다. 메이저 경매란 회당 최소 120점에서 200점 가까운 다수의 작품이 나오는 대규모 옥션을 일컫는다. 보통 계절별로 3·6·9·12월에 경매가 열린다. 한번 열리는 경매에서 총 낙찰금액은 평균 50억원(지난해 기준) 수준이다. 많으면 60억~70억원 이상까지 이르는데 이 대표 취임 후 열린 지난 9월 메이저 경매는 83억원이 넘는 낙찰 총액을 기록해 2010년 이후 최대 성공을 거뒀다.

최근 들어 미술품 경매는 '온라인 옥션'에 공을 들이는 추세다. 미술품 구매의 저변 확대를 위해 시간과 장소 제약 없이 작품을 살 수 있게끔 기획된 서울옥션의 온라인 경매는 2011년까지는 두 달에 한번씩 열리던 것이 연간 2~3회로 줄어들었다. 그러던 것을 이 대표 취임 후 온라인 경매를 '이비드 나우(eBid Now)'로 새 단장하고 2개월에 한번씩 열고 있다. 내년부터는 매달 실시해 연 12회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술품 경매 수수료는 5,000만원까지 15%가 붙는다. 5,000만원 이상 1억원까지는 12%, 1억원 이상은 10%로 수수료가 계단식으로 적용되며 부가세는 별도다.



●이옥경 대표는

△1961년 서울

△서울여대 식품영양학과

△1994년 가나아트갤러리 입사

△2001년~2014년 4월 가나아트갤러리

대표이사

△2010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최우수상

(서울스퀘어)

△한국화랑미술협회 사업이사

△종로구 도시공간예술위원회 심의위원

△2014년 6월~ 서울옥션 대표이사 겸 부회장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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