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교황청 바티칸천문대(해외과학가 산책)

바티칸 교황청이 부설 천문대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종교기관이 천문대를 운영한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16세기에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 세우고 죠다노 브루노에게 화형을 명한 기관이 바로 교황청이기 때문이다.바티칸 천문대는 교황의 여름별장이 있는 로마의 남동쪽 카스텔 간돌포라는 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고 미국 아리조나대학의 스튜어드 천문대에 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바티칸 천문대는 다른 여느 천문대와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천문 관측을 빙자하여 무신론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관측대원들이 모두 예수회 수사 출신으로 월평균 4백달러 정도의 형편없는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다. 교황청이 천문 관측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500년께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한 예수회 수사들을 동원하여 당시 널리 사용되던 율리우스 달력을 개량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토록 한 것이 처음이다. 19세기 말께 교황 레오13세는 교황청이 고리타분한 교리를 고집하고 과학적인 사상을 배격한다는 비난에 자극을 받고 교황청은 진리, 곧 진실한 과학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격려하고 진흥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과학 연구기관을 설치할 것을 지시했다. 어떤 분야의 과학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진화론은 아직 논란의 불씨을 안고 있다는 판단 아래 천문학으로 결정됐다. 이에 교황청은 성베드로 성당 뒤에 천문대를 세웠다가 1933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으며 지난 93년 아리조나대학과 공동으로 지름 2m짜리 천체망원경을 제작,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비용은 3백만달러 정도 들었지만 미국의 독실한 신자 2명의 후원으로 대부분을 충당했다. 바티칸 천문대의 연구과제는 여느 천문대와 별 다를 것이 없으나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종교인으로서 과학을 연구하고 과학자로서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겪는 갈등을 손수 체험하며 종교와 과학간에 다리를 놓는 일일 것이다. 보기를 들면 최근 화성의 운석에서 생명체의 흔적이 발견됨에 따라 그들은 「외계인은 원죄 없이 태어난 것일까」 또는 「우리는 그들에게 세례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으며 과학의 새로운 발견에 종교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심하기도 한다. 이같은 활동에 힘입어 교황청은 갈릴레이가 죽은지 3백여년이 지나서 갈릴레이에 대한 탄압이 명백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시인하고 다윈이 죽은지 1백여년이 지난 지난해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진화론은 가설 이상의 것이라며 진화론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교황청이 과학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아마 가까운 미래에 교황은 무신론적인 과학기술의 홍수 앞에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는 무기력한 독백만 되뇌일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워싱턴=허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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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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