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자동차손배법] 국회서 변질.. 자보가입자 부담는다

일부 국회의원과 병·의원, 그리고 관련단체의 이해 때문에 1,014만명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부담이 늘어나게 생겼다. 지난 6일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 변질처리됐기 때문이다.이날 의결된 자배법은 규제개혁위원회,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된 정부개정안은 물론 당초 건교부안과도 딴판이다. 「파행」과 「날치기」라는 특수상황을 틈타 의원들이 입맛대로 법률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시간이 워낙 없다보니 검증과정도 전혀 거치지 않았다. 국회가 특정이익단체의 로비에 의해 놀아났다는 의혹이 적지 않다. 특히 형식은 여권 단독처리, 날치기 통과이지만 실제로는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여야의원들이 개정안의 내용을 슬그머니 바꾸는데 하나가 됐다. 여야가 로비에 말려 눈앞의 이익에 똘똘 뭉쳤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 변칙·변질 처리된 개정안이 예정대로 오는 7월부터 발효될 때 자동차보험료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결국 피해는 1,000만명이 넘는 자동차 보험가입자들에게 전가될 전망이다. 대신 전국의 병·의원의 이익이 늘어난다. 건교부도 산하단체인 교통안전공단과 신설될 의료보수심사원 등을 통해 「일감과 자리」를 확보하게 됐다. ◇핵심 쟁점= 파행국회에서 변질 처리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5가지. 이중 교통사고 유자녀 지원기금 조성 의료기관 진료비의 보험사 임의 삭감 금지 등 2가지 사안이 핵심쟁점이다. 교통사고 유자녀 지원기금이란 책임보험료의 일정률을 강제 징수해 기금을 조성, 사고로 부모를 잃은 유자녀를 돌보는데 활용하자는 것. 관리는 건교부 산하단체인 교통관리공단에서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 보험사의 진료비 임의삭감 금지 조항은 자동차사고 환자를 치료한 병·의원이 보험사에 청구하는 돈을 보험사가 마음대로 깎을 수 없도록 강제한 것. 이 안은 정부제출안과 건교부의 초안에도 들어 있지 않던 내용이다. 변칙통과 과정에서 여야의원들이 슬쩍 집어넣었고 날치기 과정에서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통과됐다. ◇경과= 이같은 핵심쟁점들은 이미 의견수렴과정에서 불가 판정을 받았던 사안들. 지난해 7월29일 교통문화운동본부 등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 건교부 입법예고안은 보험업계와 소비자단체에 의해 집중적으로 성토됐었다. 정부내에서도 건교부안은 현실성없는 것으로 지적됐다. 지난해 10월21일 규제개혁위원회 경제분과위는 교통사고 유자녀 지원사업을 없던 것으로 하기로 의결했다. 기금조성을 보험가입자들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며 정부예산으로 충당해야 한다는게 이유였다. 이같은 원칙은 11월20일 김종필총리가 참석했던 규제개혁위 본위원회에서도 의결됐다. 이어 열린 차관회의(11.26)와 국무회의(12.1)는 규제개혁위의 심사를 정부안으로 확정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배법 개정안이 순리대로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28일 열린 국회 건교위 심의를 분기점으로 개정안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국회건교위= 건교위의 자배법 개정안 심의과정에서 민간이 독소조항으로 지적하고 규제개혁위, 국무회의에서 삭제됐던 건교부 원안을 부활됐다. 뿐만 아니라 건교위는 애초 건교부 입법예고안에도 없었던 안까지 집어넣었다. 건교위 심의과정은 희극에 가깝다. 이정무 건교부장관조차 핵심쟁점들의 도입은 현실성이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나 의원입법안은 주무부처 장관의 기대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 보통의 경우 장관의 읍소와 설득에 미동도 하지 않는게 상례. 의원들이 개정안을 전향적으로 손질한 것은 로비 때문이었다는 의혹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건교위 심의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따로 없었다. 수정된 의원입법의 제안자는 건교위상임위원장인 김일윤의원으로 되어 있다. 이후 국회가 여야대립과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건교위의 수정입법안도 「날치기 통과」됐다. 당초 예정이던 법사위심의도 생략됐다. ◇파장= 보험사들은 병원의 고질적 병폐인 허위·과당진료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가뜩이나 늘고 있는 병원과 공모한 보험범죄도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교부도 혜택을 입게 된다. 정부부처 인원 감축이 있어도 보낼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게 됐다. 교통안전공단도 마찬가지. 일감이 새로 생겨 구조조정을 덜 겪여도 된다. 의료비를 심사할 의료심사원까지 설립될 경우 생기지 않아도 되는 수백명의 새 자리가 만들어진다. 건교부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금과 일자리 창출로 야기되는 부담은 보험료인상요인으로 직결될 수 밖에 없다. 이미 지난해중 가격자유화로 책임보험료가 15~20% 할인돼 보험사 마진이 아애 없는 상황. 따라서 이번조치는 그대로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부담으로 전가된다는 얘기다. ◇전망= 변질처리된 개정안의 법률적 효력 발생일은 오는 7월. 이를 제대로 잡는데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려는 3~4개법률안에 자배법 개정안은 아직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남은 방법은 위헌소송 제기를 통한 법률 무효화. 결국 대통령 거부권행사에 뒤늦게 포함되지 않는한 현실적인 대안은 위헌소송밖에 없다. 손해보험협회도 대통령 탄원과 위헌소송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최소한 2년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의 시행착오와 소비자 부담 증가라는 대가 지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권홍우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