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금융 범죄와의 전쟁] <1> 저신용자 두번 울리는 대출사기

대출 미끼로 수수료 선입금 요구… 건당 수백만원 챙기고 잠적<br>피해 26억 넘어… 1년새 4배 급증, 명의 도용 대포통장 만들어 악용도<br>생활정보지 광고 등 단속강화 불구 소규모 업체까지 근절하기엔 한계



#1 A씨는 B캐피털에서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보낸 대출광고를 받았다. 문자에 찍힌 번호로 전화한 A씨는 2,000만원을 대출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신용조회기록들을 모두 없애야 하는데 이를 위해 대출금의 10%인 200만원을 미리 보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A씨는 은행ㆍ캐피털ㆍ저축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출신청을 많이 해본 터라 의심 없이 200만원을 송금했지만 대출금은 입금되지 않는다.

#2 C씨도 휴대폰 문자메시지 대출광고를 보고 대출을 받기 위해 전화했다. C씨 역시 신용대출을 받기 힘든 형편이었다. 사기업체는 C씨의 신용등급이 낮다면서 3개월치 이자를 미리 납부하면 대출을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C씨는 알려준 계좌로 대출이자를 미리 보냈지만 업체는 연락을 끊었다.


대출사기의 구조는 간단하다. 급전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 선(先)입금을 요구한 뒤 이자나 수수료 등을 받아 챙겨 잠적하는 것이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의 경우 대출 조건이나 절차가 까다롭고 번거로운 반면 대출사기범들은 전화 한 통화로 선뜻 대출을 해주겠다고 제안해 피해자들을 유혹한다.

최근 가계대출 부실 확대를 우려한 금융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대출사기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제도권 금융회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저신용자들이 사기당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소외계층의 피해는 결국 금융시장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되므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에 접수된 대출사기 상담은 총 2,357건으로 전년 대비 3배가량 급증했다. 피해금액도 26억6,000만원으로 네 배나 늘었다. 건당 피해금액으로 계산하면 지난 2010년 160만원에서 지난해 210만원으로 증가했다.


대출사기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통로는 휴대폰 문자메시지. 문자를 보고 전화한 피해자들에게 사기업체들은 보증료나 알선비, 신용등급 상향 등을 이유로 100만~200만원을 먼저 송금하라고 요구한다. 때로는 마이너스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입출금 거래실적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통장 사본을 보내라고 요구한 뒤 연락을 끊고 피해자 통장을 '대포통장'으로 다른 범죄에 활용한다. 휴대폰을 개통하면 대출해준다고 속여 휴대폰을 보내면 '대포폰'으로 활용해 통신요금만 부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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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사기는 다른 금융사기에 비해 피해액수가 적지만 사기업체들이 주로 타깃으로 삼는 대상이 저소득ㆍ저신용자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피해액수가 크지 않고 경찰에 신고해도 돈을 되찾기 쉽지 않아 굳이 신고를 안 하는 피해자들도 많다.

금융감독원이 대출사기를 악질범죄로 간주하고 집중 단속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달 초 금감원은 대출사기 근절과 피해 구제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핵심은 대출사기 피해자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부친 돈을 사기업체에서 빼내갈 수 없도록 전화로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기업자에게 속은 것을 알고 은행에 곧바로 전화하면 은행이 해당 계좌에서 돈을 뺄 수 없도록 지급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이전에는 서면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이제는 지급정지를 먼저 요청하고 3일 안에 요청서류를 보완하면 된다. 사기를 당했더라도 구제 받을 수 있는 길을 조금 더 넓힌 셈이다.

불법대출업자들이 광고수단으로 주로 활용하는 생활정보지와 지하철 무가지에 대한 단속도 강화됐다. 금감원은 생활정보지, 지하철 무가지 등에 '등록대부업체 통합조회 서비스'에서 불법대부업체를 확인하는 방법과 대출광고를 할 때 대부업 법규상 준수사항 등을 안내해 불법광고가 실리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대출사기 피해가 신고되면 즉각 광고 게재를 중단해달라고 전달했다.

또 인터넷의 경우 불법행위를 적발하면 수사기관에 통보하고 포털 사이트에 해당 인터넷카페 등을 폐쇄하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이 밖에 금감원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에 대출사기 관련 상담요청이 들어올 경우 하루 단위로 신속히 수사기관에 통보하는 등 사후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사금융업체들의 대출사기를 완전히 근절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금감원의 직권검사 대상은 자산 1,000억원 이상의 대형 대부업체로 상위 100여개 회사만 해당된다. 때문에 금감원은 올해 직권검사 대상이 아닌 자산 규모 5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인 대부업체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와 공조해 테마검사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인력과 조직을 감안할 때 그 규모와 강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 역시 피해금을 돌려받기 어렵다고 생각해 신분 노출을 꺼리고 수사기관도 증거 부족으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불법대출광고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수사기관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간접적인 대책으로는 대출사기를 근절시키기 어렵다"며 "새희망홀씨ㆍ햇살론 등 서민지원 금융상품을 다양화해 서민ㆍ취약계층을 위한 금융 이용 기회를 확대하는 노력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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