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가 동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선진국 은행들이 동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신규 대출을 동결하는 등 자금 회수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2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중앙은행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자국은행의 현지 대출을 제한하는 새로운 규제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의 에르스테은행과 라이파이젠은행, 뱅크오스트리아 등 3개 금융회사는 동유럽 현지에서 유치한 예금을 초과해 대출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오스트리아 금융당국이 동유럽에 대한 익스포져(위험노출) 단속에 나선 것은 투기 자본의 다음 타깃이 동유럽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규제안 발표에 앞서 헝가리는 21일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역내 자본시장의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두 달 전만해도 7%를 밑돌았던 헝가리 10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8.46%까지 치솟았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체코 등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특히 동유럽 국가에 대한 대출 규모가 커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재정위기 도미노가 동쪽을 향해 쓰러질 경우 자국 금융 시스템마저 흔들릴 수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신규 대출이 제한된 오스트리아 3개 은행의 동유럽 익스포져 규모는 작년 오스트리아 국내총생산(GDP) 3,760억달러보다 많다. 동유럽 국가 중 한 곳이라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거나 그리스와 같은 대규모 부채 탕감을 요구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에발트 노보트니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이번 대출 제한은 오스트리아와 역내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역내 은행의 대출 제한 조치가 동유럽 국가들의 목을 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들은 유로화나 스위스프랑 대출을 통해 외화를 조달해왔는데 이런 자금 창구가 사라진 셈이기 때문이다. 다른 유럽은행 역시 내년 6월말까지 의무 자기자본비율(Tier 1) 9% 선을 맞추기 위해 위험국가에 대한 대출을 끊을 수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을 받은 동유럽 국가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결국 돈줄이 말라 위기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