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돈 어디로 가나] 1. 갈길잃은 뭉칫돈

투신사 환매제한 등으로 증시가 불안해짐에 따라 투자자들이 갈곳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뭉칫돈은 초단기·부동화돼 방향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와 기관들은 신뢰감을 심어주지 못하고 그저 사태수습에만 급급,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방향감각을 상실한 뭉칫돈이 어디에 정착하느냐에 따라 한국경제의 진로가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종된 돈의 방향을 짚어보고 현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응책이 없는지를 시리즈로 조명해본다. 증시를 향해 한결같이 치닫던 뭉칫돈이 「무한상승」의 환상에서 깨어나면서 새로운 갈곳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증시 급등락에 당혹감을 느낀 개인투자자 중 일부는 은행의 단기상품을 기웃거리고 있으나 아직 금리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시장도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자금은 뚜렷한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관망하고 있다. 19일 금융계에 따르면 대우사태로 불거진 투신사의 환매사태, 이로 인한 유동성 문제가 시중 자금흐름에 심각한 왜곡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때 220조원을 넘어섰던 투신사의 공사채형 수익증권은 이달 들어서만도 9조원 가까이 빠진 것으로 추산된다. 자금은 대신 중장기상품을 「왕따」시킨 채 은행의 MMDA와 요구불예금 등 초단기 수신상품에 몰려 피난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투신사 환매제한 조치가 나온 후 은행권의 단기상품에 몰린 자금만도 주초 이틀 만에 2조원을 넘어섰다. 이른바 「자금의 역류현상」이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자금시장에 게릴라식 자금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투신사가 유동성 부족에 빠지면서 채권시장도 살얼음판이다. 매수자가 실종된 채 채권 유통시장은 사실상의 개점휴업 상태다. 회사채 수익률은 표면으로는 9%대이지만 실질 수익률은 이미 두자릿수를 넘어섰다. 유통시장의 위축은 곧 발행시장으로 이어지고 이는 금리상승과 맞물려 있다. 기업들의 투자의욕은 감퇴할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성이 상실되면서 외국인들의 이탈은 가속화하고 있다. 이달들어 보름 동안 벌써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순유출 규모가 10억달러를 넘어섰다.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증시를 뒷받침하던 개미군단들도 이탈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미련을 갖고 증시 주변에서 맴돌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언제 본격적인 투매현상이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금융시장 안정을 뒷받침해야 할 정부도 수익증권 환매와 관련해서는 일관된 정책을 내놓지 못한 채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행정편의주의만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기에 기관들의 이기주의마저 가세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증권·투신권에 대한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권이 충분한 현금유동성을 공급키로 했다고 했으나 지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수시입출금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환매를 놓고도 감독당국과 업계간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작 문제는 현재의 불안한 금융시장이 거시지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금융시장이 전형적인 악순환 국면에 빠져 있다』고 경고했다. 투신사의 유동성 부족사태가 심화돼 영업정지 등 최악의 상황에 처할 경우 금융시장은 대처하기 힘든 지경에까지 몰릴 수도 있다. 투신 관계자는 『환매규모가 20조원을 넘어서면 증권과 투신사도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게 된다』고 염려했다. 사태가 한계상황에 달하기 전 정부의 조치가 뒤따르겠지만 투자자들의 불안이 자칫 은행 신탁에까지 전염될 경우 그 파장은 짐작할 수 없다. 물론 아직까지는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 단기금리를 그리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추세대로 은행이 수신금리를 인상하고 채권시장의 마비상황이 지속되면 이는 곧장 장기금리 인상과 대출금리의 상승기조로 이어져 그동안 힘들게 지탱해온 저금리 기조를 해칠 수 있다. 한국 자금중개 관계자는 『자칫 인플레 우려상황에까지 몰릴 수도 있다』며 『무엇보다 시장에 확신을 주는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의 최공필(崔公弼) 박사는 『자금이 금융권 밖, 즉 부동산 등으로 옮겨갈 수 있다』며 『이는 실물경제 회복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불안한 시장에 신속히 차단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문이다. 김영기기자YG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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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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