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IMF구제금융 신청후 한국」/유상호(해외통신원 기고)

◎외국금융기관 시각 바뀐것 없다/“자구조치 실기·강도도 미흡”/대출회수 방침 쉽게 안바꿔/고질병폐 근본책 마련 촉구최근 영국의 언론 매체에는 지난 88년 서울 올림픽이후 한국에 관한 뉴스가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 마치 영국의 모든 관심이 한국에 쏠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정부가 마침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발 뉴스를 보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결정한 이후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한국계 은행들에 대해 대출금 만기를 연장해 주기로 결정한 듯이 보도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 현지 담당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이곳 전문가들 대부분은 한국의 금융위기를 누적된 한국기업의 잘못된 경영방식, 정부의 일관성 없고 무책임한 정책대응 등이 빚어낸 총체적인 부실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시각 또한 냉정하고 단호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정부가 취한 금융시장 안정화대책이나 IMF구제금융 요청등 일련의 조치들이 그 방향은 맞으나 시기상으로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 강도 역시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정부가 경제주권 상실에 대한 우려감이나 자존심, 또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시간을 끌어왔고 지금도 미온적이라고 보고 있다. 또 한국 정부가 요청한 지원규모 2백억달러는 위기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적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내년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채무규모가 약 7백억달러에 육박한다는데 2백억달러로는 얼마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국정부는 이 2백억달러의 자금으로 급한 불을 끄고 외국투자가들을 안심시키면 그 다음부터는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채권의 만기를 연장시켜 줄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일단 한국에 대해 여신회수방침을 세운 외국계은행들, 또는 한국내 투자비중을 줄인 투자가들의 경우 확신이 서기전까지는 쉽게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확신이 서는데도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여신회수의 속도를 줄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상황이 쉽게 반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각이다. 이들은 IMF의 자금 지원이 이뤄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그동안 한국이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처럼 냉담한 외국투자가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IMF의 지원과 함께 요구사항을 긍정적으로 수용,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믿음을 주어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의 급격한 감소와 대폭적인 구조조정등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들도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특히 이 위기를 과다한 차입경영, 과잉투자, 불합리한 산업구조, 막대한 경상적자등 한국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들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한국의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이곳 전문가들의 시각은 냉정하다. 완전히 부실화된 금융기관을 상대적으로 건실한 금융기관에 합병시키기 보다는 차라리 도산시키는 극약처방을 쓰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무리한 합병은 상대적으로 견실한 금융기관마저 부실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외국전문가들의 견해가 한국의 상황을 잘못 판단하거나 서구의 사고방식으로 한국 문제를 조명함으로써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 한국의 앞날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만큼 무시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한국인의 저력을 확인했던 이들 외국투자자들은 한국이 제살을 깎는 아픔을 각오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면 이번 시련은 능히 극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이 위기를 극복할 경우 전체 아시아경제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대우증권 런던법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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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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