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파헤쳐진 덕수궁 돌담길


샛노란 은행 낙엽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거리.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이 도시 한복판에서 깊은 숨을 들이쉬며 추억과 낭만을 느끼는 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 받는 산책로 덕수궁 돌담길이다. 덕수궁 대한문~정동교회~새문안길에 이르는 900m 거리를 문화시설과 돌담ㆍ은행잎으로 채색한 산책로는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이자 일상에 지친 시민들의 쉼터가 되기에 충분하다.


△거리는 문화와 예술의 산실이기도 하다. 원로 작사가 정두수씨는 1961년 한밤중에 이 거리를 거닌 뒤 '덕수궁 돌담길'이라는 가사를 일기장에 남겼고 이는 2년 후 가수 진송남씨를 통해 노래로 발표돼 큰 인기를 누렸다. 아직까지 국민 가요로 애창되고 있는 이문세씨의 '광화문 연가'를 작곡한 고(故) 이영훈씨가 생전에 가장 자주 찾았던 곳 역시 이곳이다. 지금도 그를 기리는 노래비가 이곳에 서 있다. 해마다 문화축제가 열리고 도심 속 예술쉼터 서울시립미술관이 여기에 자리 잡은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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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이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그 안에는 망국과 침탈의 근대사가 아픔을 숨기고 있다. 1920년 일제가 덕수궁 북문이자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 고종의 탈출로로 이용됐던 영성문(永成門)과 선원전(璿源殿)을 헐고 정동까지 신작로를 닦으면서 등장한 것부터 그렇다. 주위를 둘러봐도 마찬가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重明殿)에선 대한제국 국권 침탈의 아픔을 느낄 수 있고 길에 늘어선 미국ㆍ영국ㆍ러시아 영사관, 프랑스 공사관의 모습에서 옛 제국주의 열강의 야욕도 읽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도 이 부근에 터를 잡았다.

△덕수궁 돌담길이 또 한번의 시련을 겪고 있다. 서울시가 차로를 넓히기 위한 공사에 돌입하면서 보행로가 크게 좁아지게 됐다. 대형 관광차의 통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차로와 인도를 구분하던 경계석도 없애기로 했다. 노란 은행나무와 문화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찾은 많은 시민들은 낭만보다 달려오는 차량을 피하는 데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게 생겼다. 과거 일제와 열강에 빼앗겼던 거리를 이제 자동차에 넘겨주려니 가슴 한구석이 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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