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서 1인 35역 지현준

"성·직업·나이 다른 35개 캐릭터, 자연스러운 몸동작 표현 애썼죠"

나치·동독 사회주의 체제서 살아남은 여장남자의 삶 모노드라마로 그려

자신을 지워버리는 배우 되고 싶어… 내년 뮤지컬·영화로도 관객 만날 것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35개의 배역이 무대에 오른다. 히틀러의 나치 시대와 동독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남은 여장 남자 샤로테, 미국 출신 게이 작가 더그, 샤로테의 난폭한 아버지…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는 더그가 연극을 만들기 위해 샤로테를 인터뷰하며 잊혔던 한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실화 기반의 작품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는 그러나 놀랍게도 단 한 명. 하나의 몸을 통해 35개의 얼굴과 사연을 그려내고 있는 배우 지현준(36·사진)을 만났다.

지현준은 지난해 '나는 나의 아내다'를 제안받고 몇 번이나 출연을 고사했다. "모노드라마 자체가 어려운 장르인데, 1인 35역이라고 하니 정말 부담이 되더군요. 여러 명의 감정과 인생을 표현하기엔 제가 많이 어리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오히려 선배들은 '지금이 모노드라마를 할 시기'라고 힘을 실어줬다. 체력적으로나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나, 30대 중반의 배우 지현준이 도전할 만하다는 이야기였다. 오랜 고민과 강량원 연출의 삼고초려(?) 끝에 출연한 이 작품으로 지현준은 지난해 데뷔 10년 만에 연말 연극계 주요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초연에 이은 재연이다.


35개의 인물을 소화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몸'이다. 강 연출과 수시로 '경계 없는 몸'을 화두로 연구하고 토론했다. "성(性)도, 직업도, 나이도 다른 35개의 인물이 경계 없이 한 사람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드나들어야 했어요. 특정 캐릭터를 시작하고 끝내는 포인트나 동작을 만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등장하는 '흐리기'를 표현하는 데 초점을 뒀어요." 동작에 있어서도 사람의 호흡에 주목했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어깨가 굽어 있고, 열정 많은 사람은 어깨부터 움직이듯 한 인간이 어떤 호흡으로 살아왔느냐는 그 사람의 행동에 반영되기 마련"이라며 "캐릭터의 호흡에 맞춰 몸을 쓰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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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선 초연 때 보지 못한 새로운 샤로테를 만났다. 재연이 안겨준 선물이다. "처음엔 샤로테를 보통 사람과는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해 표현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난 샤로테는 결국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었어요." 포장을 걷어내니 연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그는 "결국 샤로테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나치 시대 아래서 자기 삶을 나름대로 살아냈던 사람"이라며 "재연에선 캐릭터에 씌워뒀던 포장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현준은 올 한해 단테의 신곡과 나는 나의 아내다, 에쿠우스, 스테디 레인, 길 떠나는 가족 등 다양한 감정과 인물을 넘나드는 작품에 잇따라 출연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작품만 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시간이 지나며 저를 훈련 시켜주는 분들보다 제가 조언을 건네야 할 후배들이 많아졌어요. 어느 순간 두렵더군요.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만 하면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할까 봐." 남들 볼 때 '어려운 도전' 같은 작품을 고집하는 이유는 여기 있었다.

"연기할 때는 자신을 지워버리는, 형체 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데뷔 11년 차 배우 지현준. 그는 내년엔 장르의 경계를 넘어 뮤지컬과 영화로도 관객을 만날 계획이다.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는 2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공연한다.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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