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美 "더 이상 참극은 안된다" 고조되는 총기 규제 목소리

정치권, 총기 소지 제한 법안 추진 불구<br>전미총기협 전방위 로비로 입법 쉽잖아<br>'정신질환자 구입 금지'선에서 마무리 될듯


"총기 소유의 권리는 신이 부여한 권리다. 정치인들이 함부로 제한해서는 안된다."- 에릭 프라트 전미총기소지단체(GOA)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총기 소유를 계속 허용하면 더 무시무시한 참극이 일어날 수 있다. 서둘러 더 강력한 규제안을 만들어야 한다." - 폴 헬름키 브래디캠페인 대표 가브리엘 기퍼즈 (애리조나주) 민주당 의원의 총격 피습으로 한 동안 잠잠했던 총기 화약내가 미국에 다시 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총기 규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도 다시 가열되는 모습이다. 총기 소유를 개인 고유의 권리로 명시한 수정헌법이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고 미 의회도 규제 법안 마련을 위해 분주한 행보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 언론들은 이미 미국의 일상에 깊이 뿌리박힌 총기를 걷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총기소유 옹호론자들이 수정헌법을 근거로 총기 소유를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주장하는 데다 막강 이익집단 전미총기협회(NRA)가 미 의회에 로비자금을 쏟아부으며 규제안 도입 통로를 원천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 동안 총기 규제에 열의를 보여왔던 민주당마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전문가들은 미시적인 수준에서만 제도가 정비되고 근본적인 총기 규제안이 안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시 수면위로 부상한 총기 규제안=한 동안 '휴식 상태'에 들어갔던 총기 규제 논의는 기퍼즈 의원 총격 사건을 계기로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현역 의원을 대상으로 총격이 이뤄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미 정치권은 어느 때보다도 서둘러 법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1993년 총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캐럴린 매카시 뉴욕주 하원의원(민주당)은 지난 9일실탄을 10발까지만 장착하는 탄창만을 판매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퍼즈 의원을 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제러드 러프너는 사고 당시 33발을 장착할 수 있는 탄창을 사용했었다. 피터 킹 롱아일랜드주 하원의원(공화당)도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주변 반경 1,000피트(약 330m) 이내에 총기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중이다. 총기소지 반대 운동을 주도해 온 미 시민단체들도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 최대 총기규제단체인 '브래디캠페인'은 총기 소유 규제 강화 법안 도입을 위한 서명 운동에 착수했다. 브래디캠페인은 지난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 당시 백악관 공보비서 제임스 브래디가 머리에 유탄을 맞아 반신불수가 된 후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단체다. 브래디캠페인은 지난 1993년 총기 판매시 구입자의 신원조회를 위해 5일간의 대기 기간을 의무화 한 '브래디법' 통과에 앞장서며 전국적인 단체로 거듭났다. 이 밖에 총기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것을 강령으로 내세우는 '백만어머니단체'도 총기 규제안 마련을 촉구하는 전국 시위에 돌입할 예정이다. ◇총기 천국 미국, 규제 도입 쉽지 않아=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총기 소유를 헌법에서 보장하는 데다 미 최대 로비단체 전미총기협회(NRA)가 의회에 전방위로 로비 촉수를 뻗치며 총기 소유를 보호하는 데 사력을 다하는 있기 때문이다. 1791년 제정된 수정헌법 제2조는 "잘 훈련 받은 민병들은 자유로운 주(州) 안보를 위해 필요하므로 무기 소지 및 휴대에 관한 시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라며 총기 소유를 개인 고유의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는 식민지시대와 독립전쟁을 거치며 총이 유일한 안전장치라고 여겨온 '건국의 아버지'들의 믿음이 반영돼 있어 함부로 비판을 제기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08년과 2010년 연방법원은 워싱턴 D.C 주정부와 시카고 시정부가 총기소유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에 잇따라 위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NRA는 총기가 미국에 끝까지 발을 붙이도록 만드는 중심축이다. 미국에는 총기 소지 옹호단체만 150여 개에 이르는데 이중 NRA는 회원수만 400만 명인 미국 최대의 로비 단체로 끔찍한 총기사고에도 개인의 총기 소지권을 정부가 침해할 수 없다며 총기합법화를 주장한다. 이들은 또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로비자금을 의회와 정치권에 쏟아 붓고 의원들을 단속해 '총기의 정치학'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들은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공화당에 로비자금의 대부분을 퍼붓고 있다. 미 로비 단체들의 정보를 제공하는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NRA는 지난 10년간 로비자금의 80%를 공화당에 건넸다. 이들은 조직적 로비를 앞세워 브래디법이 추진하려한 '총기 구입자 전과 조회 의무화' 조항의 위헌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NRA의 막강 로비력은 전통적으로 총기규제 옹호론을 펼쳐왔던 민주당의 손발마저 묶고 있다. 총기 규제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지난 1994년 '공격용 무기 판매금지법'을 발의한 이후(2004년 효력 정지) 민주당에는 총기 규제 논의가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심지어 이번에 총격을 당한 기퍼즈 의원도 "총기의 자유로운 소유는 애리조나주의 위대한 전통이다" 라고 말하기 까지 했다. ◇규제안착 가능할까=미 언론들은 이에 따라 이번 총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더 강력한 총기 규제안이 도입될 가능성은 적다고 전망한다. 총기 소지에 관대한 공화당이 지난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을 장악한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규제법안 발의를 준비중인 의원들도 자신들의 법안은 '총기 통제법'이 아닌 '총기 안정법'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 총기 구입 시스템 정비'선에서 규제가 마무리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러프너도 정신질환 경력에도 불구하고 총기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미 여론은 정신질환자 총기 보유 제한으로 초점을 맞추는 중이다. 현재 미국은 총기 소유 부적격자 정보를 연방수사국(FBI) 데이터베이스(NICS)에 저장해 부적격 판정자의 추후 총기 구입을 차단하고 있지만 각 주 당국이 이 부적격 판정기록을 NICS에 제대로 보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미시적 규제에만 집중할 경우 대형 총기사고가 언제든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몇몇 진보 언론들은 캐나다나 호주 등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해 총기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의회나 NRA가 희생자에 위로를 표하는 것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진정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려면 장난감이나 자동차처럼 총기에도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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