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공명을 만나 천하삼분지계를 듣는다. 그는 제갈공명의 조언대로 촉나라를 세워 조조의 위, 손권의 오나라와 함께 삼각구도를 형성했다. 이렇게 중국의 삼국지는 전개된다.다 아는 이 얘기를 새삼 꺼내는 것은 세계경제전쟁시대로 일컬어지는 요즘의 형세가 삼국지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경제권은 미국을 중심으로 캐나다와 멕시코를 잇는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유럽연합(EU), 동남아시아 9개국의 동남아국가연합(ASEAN)으로 나뉘어진다.
세계경제대전 초반기인 지금은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을 당시인 삼국지의 도입부와 흡사하다. 경제력으로 볼 때 NAFTA는 위나라, EU는 오나라, ASEAN은 촉의 전신인 형주와 비유된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은 유비가 맞은 상황과 비슷하다. 아직 특정지역에 속하지 않고 이들 3개 경제권과 골고루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NAFTA와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를 통해, EU와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통해, ASEAN과는 9+3회의를 통해 각각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
지난 16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9+3회의는 동북아 3국이 동아시아 경제권의 상호협력 필요성에 대해 입을 모으면서도 내심으로는 동상이몽 상태에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일본은 유비의 길을 택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300억달러의 「미야자와플랜」을 무기로 삼아 우선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확보한뒤 세계경제지배를 노리고 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중국은 독자노선의 길을 걸으려 애쓰고 있는 인상을 보였다.
한국의 입장은 아직 확실치 않다. 김대중대통령이 9+3회의에서 「동아시아 경제협력 비전그룹」 결성을 제안하려다가 「검토」꼬리를 단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金대통령은 지난 3월 ASEM, 11월 APEC에 이어 이번에 9+3회의에 다녀옴으로써 경제외교를 일차 마무리했다. 청와대는 세 회의에서 모두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랑했다. 이는 전체적 구도에서 볼 때 특별한 성과가 없었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특별한 우위를 갖지는 못하지만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중간적 입장에 있는 우리로서는 국제경제정세가 양극화되는 것보다는 삼각구도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삼각구도의 한복판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야 비교우위를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단히 치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유비는 삼국지의 영웅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삼국을 모두 망하게 하고 진나라가 어부지리를 얻도록 만들고 말았다. 제갈공명은 처음에 지금의 중국처럼 독자노선의 길을 택했지만 결국은 유비를 도우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5000년 중국 역사상 제일의 전략가로 꼽히는 그도 따지고 보면 유비의 삼고초려작전에 당한 희대의 「멍청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