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인종차별주의와 특허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는 다른 인종이 자신보다 못하고, 못할 수밖에 없고, 못해야만 한다는 우월적 믿음과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 속에서 인종차별주의는 항상 억압의 체제를 동반해 피지배 인종의 재산권은 물론 생존권까지 억압하거나 약탈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미국은 19세기의 남북전쟁과 20세기 인권운동, 법원의 판결에 힘입어 인종차별주의를 불식시켰다. 그런 미국에서 "특허라고 다 같은 특허가 아니다"라는 특허차별주의가 태동했으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인권운동 가장한 특허괴물 맞서 지난 1998년 인텔 사내 변호사였던 피터 뎃킨은 인텔을 특허 침해로 제소한 테크서치란 특허관리회사를 특허괴물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제조와 같은 생산적 활동은 하지 않고 소송을 통해 부당한 이윤만 추구하는 특허괴물은 불량한 집단"이라고 규정했다. 이후 미국은 산업발전에 이바지하는 제조업체의 선량한 특허와 제조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특허괴물의 불량한 특허라는 이분법과 특허차별주의가 자리잡게 됐다. 특허차별주의는 세계 각국으로 전파돼 제조업 국가인 우리나라와 일본ㆍ중국에서 각광 받았다. 자국 기업들을 특허침해로 제소해 거액의 벌금을 뜯어가고 기업들을 협박해 로열티를 챙기는 특허괴물들이 곱게 보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소프트 특허라는 특허제도의 사생아도 태어났다. 제조업체가 특허를 침해했을 때 특허권자가 제조업체가 아니면 적은 규모의 배상금만 물리는 방식이다. 이는 투표용지를 내미는 손이 희면 한 표를 주고 손이 노랗거나 검으면 0.2표만 줘도 된다는 논리와 같다. 이와 같은 중국과 일본의 원거리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특허차별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한 인권운동과 법원의 판결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우선 미국 정보기술(IT) 업계가 지난 수년간 특허괴물의 특허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특허법 개정안이 번번이 실패했다. 그 이유는 인권운동을 가장한 특허괴물들이 쟁쟁한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막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뒤에는 제약업계로 대표되는 미국 굴뚝산업이 자리잡고 있다. 제약회사는 신약 특허 하나만으로 20년간 엄청난 돈을 긁어모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보다 약한 특허권을 원하지 않는다. 매 분기 신제품을 출시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IT 업계와는 상황이 다르다. IT 회사들은 매년 수백 개의 신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알게 모르게 남의 특허를 침해해 갖은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특허차별주의를 불식하려는 미국 법원 측의 수장은 연방순회항소법원의 렌달 레이더 수석판사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레이더 판사는 "내미는 손의 색깔로 특허를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단언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특허괴물과 관련된 논쟁에 대해 명쾌한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그는 "앞으로 특허를 내미는 손의 색깔을 보지 않고 특허로만 특허를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또 특허제도의 아킬레스건인 침해 배상금 제도에 대한 개혁 의지도 피력했다. 지난해 수석판사로 임명돼 아직 임기가 6년이나 남아 있어 자신의 족적을 남길 시간은 충분한 상황이다. 특허 기반 둔 제품 생산 나서야 미국 남북전쟁의 이유가 노예제도 철폐만은 아닌 것처럼 특허차별주의를 불식하려는 레이더 판사의 염원 역시 제조업체보다 발명가를 선호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21세기 지식기반시대가 지식재산을 선진국들의 차세대 먹을거리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우리 기업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지 주판알을 튕기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 기업들이 남들이 밥상 차려줄 때 제대로 된 투표용지를 노란 손으로 내밀면서 자신의 한 표를 꼼꼼히 챙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1세기 지식기반시대에 우리 기업들이 특허에 기반을 둔 제품을 팔아 꿩도 먹고 알도 먹는 것을 보고 싶다. 그것도 빨리빨리, 환갑잔치를 하기 훨씬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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