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전문업체로 오픈소스(개방전략)를 강조하던 IBM이 국내 중소 반도체 업체들에게 경고장에 가까운 메일과 전화로 '특허장사'를 시작한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글로벌 경기 침체, 신 사업 부진 등으로 성장성과 수익성의 한계에 부닥친 특허왕국 IBM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은 '특허 라이센싱' 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IBM의 공격적 특허전략 대상이 반도체 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IBM 외에 특허를 많이 보유한 기업이나 연구소ㆍ대학들도 특허 대응력이 약한 중소ㆍ중견 업체를 대상으로 공격적 라이선스 요구에 나설 공산이 큰 만큼 특허 풀 구성 등 안전망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 특허 담당자는 "IBM이 업체를 선정하고, 업체별로 메일 내용을 달리하고, 전화까지 해서 확인하는 것은 상당히 준비를 한 것"이라며 "해당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2단계, 3단계 전략을 취해 나가고, 반도체 분야의 성과에 따라 다른 분야로도 공격적 라이선스 전략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심충섭 지해특허 대표변리사는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매출은 줄고 새로운 수익원이 없는 상황에서 남은 것은 결국 특허 밖에 없다"며 "IBM 마저 특허출원ㆍ보유에 필요한 비용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특허장사에 나선 만큼, 이번 일은 특허 돈벌이에 소극적이었던 다른 특허권자도 적극적인 특허 팔아먹기에 나서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기업들이 특허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미국에서 특허 1건당 출원ㆍ유지 비용은 평균 1만5,000달러 정도다. IBM 처럼 등록 특허가 7만 건에 육박할 경우, 관리비용만 매년 수 천억 원에 달한다. 여기다 특허 유지비(연차료)가 올해도 50% 오를 가능성이 높아 부담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반면 IBM의 특허료 수입은 5,000억원선에서 2,000억원 대로 낮아져 특허 관련 적자 폭은 커져가는 상황이다.
문제는 특허장사 타깃이 대기업이 아닌 중견ㆍ중소기업으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1년11월 IBM과 크로스 라이선스 체결을 통해 특허공격을 피했지만, 협력업체들은 고스란히 특허공격에 노출됐다. 한 특허업체 관계자는 "매출 100조원이 넘는 IBM 같은 글로벌 기업이 매출 1,000억원 수준의 중소기업에 경고장을 보내는 것은 권리남용"이라며 "특허 리스트를 살펴볼 인력도 없는 실정"이라고 답답해 했다.
전문가들은 중소ㆍ중견기업을 상대로 특허장사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박성호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 전략사업팀장은 "중소기업이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하는데 수십, 수백 개의 특허가 필요하지만 이를 매입하거나 일일이 라이선스를 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업종별로 필요한 특허들을 모아 원스톱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특허 풀과 같은 특허 대피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