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바베이도스로 이민가서 의사집안의 아들로 부유하게 자랐다. 컬럼비아 대학교 MBA를 졸업하고 모건 스탠리 등 화려한 미국 금융계 생활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0년대 세계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그동안의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추진하던 일들이 좌절됐다.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으며 개인의 행복이 세상의 흐름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불행의 근저에는 ‘세계 경제위기’로 대변되는 전 세계적인 사회경제 시스템의 붕괴가 있음을 알게됐다.
행복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데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면, 이것은 개인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한국 경제의 디스토피아 깡통 걷어차기(김동은·조태진, 쌤앤파커스, 2014)’는 행복론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현재의 경제위기들이 30년동안 복합적으로 쌓인 병폐의 결과물들이라고 진단한다. 제목인 ‘깡통 걷어차기’는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그저 당장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을 없애려 하는 것을 뜻한다. 임시방편적인 해결책을 빗댄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Stop Kicking the Can down the Road’라는 표현에서 비롯됐다. 길거리의 깡통을 주워 쓰레기통에 담는 것이 아니라. 걷어차서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는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작금의 경제위기가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닌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을 가리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이 엿보인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불균형’이다. 특히 실물경제와 금융경제 사이의 불균형을 지적한 부분이 인상 깊다. 실물경제는 시중의 재화와 서비스를 매개로 한 경제 흐름을 의미한다. 반면 금융경제는 주식, 채권 등의 금융자산과 부동산 같은 투자자산을 매개로 하는 경제를 뜻한다. 현재 세계경제는 미국 정부의 무제한적 달러화 발행과 파생상품의 무분별한 유통으로 인해 심각한 거품이 낀 상태다. 다시 말해 덩치는 커졌지만 실물경제 성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본질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금융경제의 비대화는 심각한 불균형을 내포하고 있다. 상위 10%의 미국인들이 증권, 채권 등 미국 전체 금융자산의 93%를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근로를 통해 돈을 버는 동안 상위 10%의 사람들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으로 소득을 창출해 낸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생산 없이 파생상품이라는 관념상의 장치를 통해 돈만 오고 가는 상태에서 경제가 성장했다고 보긴 힘들다.
저자는 한국경제에 ‘Back to Balance’라는 쓴 약을 처방한다. 번역하자면 ‘균형 찾기’, ‘바르게 살기’정도가 된다. ‘균형잡기’관점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만 통하는 신자유주의하에서는 창조경제가 실현되기 어려우니 개인과 기업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분석이 참신하다.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불평등 해소, 정부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통한 재정건전성 유지 등으로 확장시키는 작업또한 유의미하다.
그러나 균형을 잃은 이유가 우리의 ‘욕망’과 ‘이기심’ 때문이라는 분석은 다소 추상적이다. 저자 스스로 얘기했듯이 ‘윤리 교과서나 공자님 말씀과도 같은 도덕적 해결책’이라는 평가가 많다.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적 자본주의를 되살리자는, 동양적 가치에 기반한 듯한 주장도 의구심이 든다. 경제는 이미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다. 그러고 보면 원제가 “혼돈의 시대를 사는 지혜 Back to balance”였다는 역자의 말처럼 책은 지식보다는 지혜를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