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정보유출 즉시통보 의무 폼으로 있는게 아니다

사상 최악의 고객정보 유출대란을 초래한 카드사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사태가 터진 지 23일이나 지났건만 피해를 본 고객들에게 정보유출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1억건 넘게 빠져나갔는데도 우편발송을 단 한 건도 하지 않은 곳이 있는가 하면 전송부담이 크지 않은 e메일조차 받지 못한 고객이 상당수다. 이쯤 되면 책임방기라는 비판조차 가볍다. 국민들에게 피해와 혼란을 준 것도 모자라 당연히 해야 할 후속조치마저 차일피일 미루는 카드사에 이젠 분노할 기력조차 없다.


변명이 더 가관이다. 카드사들은 결제일에 맞춰 순차적으로 보내고 있다고 했다. 한꺼번에 통보하면 상담이 폭주할 것을 우려해 일부러 늦추고 있다는 얘기다. 2차 피해를 막고 고객 불안을 잠재우는 것보다 업무 과부하 방지가 우선이라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고객이 실수로 단 하루라도 연체하면 득달같이 전화해 즉시 결제를 요구하는 모습과는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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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유출을 알았을 때 '지체없이' 고객에게 해당 항목과 발생시점, 경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알리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카드사의 업무편의를 위해 늦춰도 된다는 예외규정은 없다. 지금은 사고 뒷수습을 하는 데 정신없으니 시간이 날 때 천천히 해주겠다는 발상이 '즉시통보'를 규정한 법 규정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초법적 발상과 무엇이 다를까.

그렇지 않아도 혹시 내 정보가 유출되지나 않았을까 조마조마한 국민들이다. 정부와 카드사에서는 새나가지 않았고 모두 회수했다며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매일같이 쏟아지는 개인정보 불법거래 소식에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참에 아예 카드를 없애버리겠다는 사람들까지 속출하는 판이다. 정보유출 통보에 따른 업무 부담과 비용을 논할 때가 아니다.

신용카드 소비액이 민간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66%를 넘어섰다. 과소비를 부추겼다는 비판도 있지만 우리 경제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카드사가 기본적인 고객보호 조치까지 외면한다면 이런 평가도 사라질지 모른다. 시장안정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법에 규정된 대로 의무 불이행에 따른 책임을 해당 업체에 물어야 한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설에 불안한 차례상을 받게 한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려면 이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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