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주 말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재계의 지주회사체제 전환 움직임과 관련, “삼성그룹이 여러 가지로 중요한 위치에 있고 특히 삼성전자는 국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지 않느냐”며 “지배구조를 바꾸는 모범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과 파급효과를 내세우는 우회적 방식으로 지배구조 개선조치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은 재계의 리더이자 세계적 기업이다. 그런 기업의 움직임은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우리 기업의 경영투명성과 신인도도 좋아질 수 있다. 그러니 책임감을 갖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삼성이 권 위원장의 말처럼 모범을 보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주회사제는 순환출자 등을 통한 왜곡된 지배구조 개선의 바람직한 대안으로 꼽힌다. 지배구조가 지주회사-사업자회사로 단순 명료해지는데다 투자와 사업의 분리로 한 계열사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의 부실로 이어지는 폐해를 막을 수 있으면서도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경영권 불안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고 거기에 맞춰 많은 기업들이 이미 지주회사제로 전환했거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도 이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지만 자회사 지분보유 규정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지주회사 전환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의 경우 20%의 주식을 보유하도록 돼 있는데 이 요건을 충족하려면 삼성전자 주식확보에만도 10조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삼성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게다가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거느릴 수 없기 때문에 금융계열사 분리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기도 어렵다. 금융지주회사의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경영권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기업의 지배구조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