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13일] <1267> 뉴질랜드


네덜란드 항해가 아벨 타스만(Abel Tasmanㆍ당시 39세)이 흥분에 몸을 떨었다. 1642년 12월13일, 남태평양에서 뛰어난 경관과 천혜의 항구 조건을 갖춘 땅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기쁨에 찬 그는 새로운 땅에 고향의 이름을 붙여 ‘새로운 제일란트(Nieuw Zeeland)’라고 불렀다. 감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주민 마오리족의 저항에 봉착해 선원 네 명을 잃은 그는 황급히 닻을 올렸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을 타고 일찍이 포모사섬(타이완)과 일본을 항주했으며 호주 대륙 남부의 섬 ‘태즈메이니아’를 찾아냈던 그는 다시는 니우 제일란트를 찾지 않았다. 2차 남태평양 항해에서도 호주 대륙 북서부 해안 탐사에 그쳤다. 니우 제일란트에 다시금 유럽인이 찾아온 시기는 1769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해안을 샅샅이 탐사하고 이름을 영국식인 ‘뉴질랜드’로 고쳐 부르기 시작한 뒤 선교사와 물개ㆍ고래 사냥꾼이 몰려들었다. 영국령 뉴질랜드의 초기 역사는 피로 물들었다. 마오리족과 영국은 ‘제국주의 역사상 가장 공정한 협정’이라는 와이탕이 조약을 1840년 체결한 뒤에도 두 차례의 전쟁을 거쳤다. 타스만의 발견은 백인중심 국가 뉴질랜드의 탄생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타스만은 서구인 최초의 발견자일 뿐이지만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그의 이름을 딴 빙하와 호수, 산과 강, 해안이 뉴질랜드 전역에 깔려 있다. 오늘날의 뉴질랜드는 자연보존이 잘된 나라로 손꼽힌다. 366년 전 타스만의 발견 당시와 큰 차이가 없다.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영화 촬영지로 각광 받는 것도 환경보존 노력 덕분이다. 인구와 일자리 부족으로 젊은이들이 호주로 떠나고 있다지만 청정국가로서 뉴질랜드의 경쟁력은 여전하다.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