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6월 13일] 쇠고기 파문, 신뢰로 해결하자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발목이 잡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쇠고기 문제를 풀어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비준을 얻어내려던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 자칫 FTA 비준 자체가 무산되는 게 아닌가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4월9일 총선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에 과반수 의석을 몰아준 민심이 어찌 이렇게 표변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경제적 실익을 고려할 때 한미 FTA 비준은 꼭 필요하고 이를 위해 최대 걸림돌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어떤 방식으로든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쇠고기 파문의 본질은 수입개방 명분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이명박 정부의 위기는 바로 신뢰의 위기다. 많은 국민들은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경영 경험과 능력으로 국가경제를 회복시켜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정부는 국민의 자존감과 생명ㆍ건강ㆍ안전ㆍ행복을 지키는 데 최우선의 가치를 둬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문제를 다루면서 이런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다. 이번 쇠고기 협상이 국민의 불신을 초래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국민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혔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를 며칠 앞둔 4월11일 쇠고기 협상을 개시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하루 전인 4월18일 협상타결을 전격 발표했다. 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하루 숙박비로 던져버렸다는 자괴감을 갖게 했다. 둘째, 건강 문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정서를 과소평가하는 정치적 무감각을 드러냈다. 건강 문제에서는 과학적 근거보다는 막연한 불안심리가 사람의 행동양식을 결정한다. 광우병은 다른 병보다 감염 위험이 훨씬 낮을지 모르지만 위험관리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국민이 느끼는 체감 위험은 훨씬 심각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돼 통관을 보류하는 등 법석을 떨던 정부가 ‘이제는 국민들이 질 좋고 값싼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며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를 국민은 납득할 수 없었다. 셋째, 조급함 때문에 협상의 기본원칙을 무시한 정부의 무능함이다. 국가 간 협상이든 개인이나 기업들 간 협상이든 조급한 쪽이 지기 마련이다. 우리 측은 처음부터 한미 정상회담 전에 쇠고기 협상 타결을 전제로 협상했다. 이런 식의 협상에서는 꼼꼼하게 수입 조건을 챙기기 어렵다. 실제로 우리 정부가 촛불시위로 촉발된 재협상 압박에 못 이겨 연이어 쏟아낸 보완책들은 당초 쇠고기 협상이 졸속이었음을 자인한 셈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쇠고기 문제를 어떻게 수습해나가야 할까. 쇠고기 파동의 본질이 신뢰의 문제라면 문제해결도 국민의 신뢰 회복으로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불신을 초래한 근본원인을 되짚어가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과감하게 취한다면 국민의 여론도 변하리라 믿는다. 먼저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을 잘못 보좌하고 정책과 언행에서 국민의 눈밖에 난 청와대 인사들과 장관들은 교체돼야 한다. 그리고 차제에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는 오명을 벗을 탕평인사가 필요하다. 또 쇠고기 협상의 원점으로 돌아가 잘못된 부분을 짚어보고 국민의 광우병 불안을 해소할 만한 보완조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공공연히 미국과의 ‘재협상’ 운운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실질적으로 재협상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와 향후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에 대한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그간 이명박 정부가 보여온 시행착오 및 국민과의 소통부족 등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변화 의지를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