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디지털 옷 입은 산수화

풍경 이미지 디지털 픽셀로 전환해 동양화 재해석<br>'올해의 대표작가' 황인기 개인전 아르코미술관서


몽유

디지털시대의 눈(目)은 사실 '속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 휴대폰 액정, TV화면을 통해 보는 이미지는 살아있는 듯 유려하지만 사실은 모눈종이처럼 나뉜 '픽셀(pixel)', 즉 작은 점들의 집합체로 눈이 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작가 황인기(60ㆍ성균관대 교수)는 이 같은 디지털 사유와 감성으로 동양의 전통화를 재해석해 '디지털 산수'를 이뤘다. 풍경 이미지를 디지털 픽셀로 전환한 그는 한 점 한 점 짠 실리콘부터 장난감용 레고블럭, 쓰다버린 못, 반짝이는 크리스탈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거대한 새 그림을 그린다. 한 걸음 뒤로, 좀 더 멀리 갈수록 생동감은 더 또렷해지는 게 작품의 묘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관장 김찬동)은 황 씨를 '올해의 대표작가'로 선정하고 미술관 전관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황인기는 서울대 공대 응용물리학과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하고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해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스스로는 "아주 잠깐이어서 공대에 다녔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고 말하지만 그의 디지털 실험정신은 이색 경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1층 전시장은 1992년작 '황새마을'로 시작된다. 나무판에 먹그림 같은 산수를 그린 다음 옹이가 빠진 자리를 금속으로 메운 작품이다. 서로 다른 물성간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후 작가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전통적 사유가 담긴 고전을 디지털 입자그림으로 확 바꿔버렸다. 2층 전시장은 최신작이다. 지하철 광고벽지 사이즈로 폭 60m 대작인 '훈풍이 건듯 불어(A Breeze Over Troubled Water)'에는 나한(羅漢)들이 그려져 있다. 광고판 위 수도승의 이미지가 상업주의를 꼬집는다. 이 나한의 시선이 응시하는 곳에는 가슴을 훤히 드러낸 '플레이보이'지 모델이 있다. 아름다워야 할 여인이 곰팡이에 둘러싸인 작품은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석회 위에 메주콩을 발라 붙인 다음 그 위에 부패하기 쉬운 우유ㆍ계란ㆍ바나나를 부어 배양한 '곰팡이 화판'에 그린 그림이다. 전통 명화를 작은 입자로 깨뜨렸던 그가 썩어없어질 그림에 도전했다. "곰팡이와 함께 결국 사라질 작품이라 과정이 기록으로 남을 '프로세스 아트'"라고 설명한 작가는 "지금 '명품'이라 불리는 것들의 가치가 얼마나 덧없는가"라고 되물었다. 반 고흐의 밤 풍경, 세잔느의 사과 정물을 '황인기식'으로 그리되 다양한 색을 사용하고 부조로 제작한 작품도 신선하다. 이번 전시는 또 미공개작 드로잉을 볼 수 있어 특별하다. 책장에서 책을 뽑아들 듯 트레이에 걸린 작품을 관객이 직접 빼 내 작가의 필력과 작업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황씨는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2003년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에 박이소ㆍ정서영과 함께 한국관 대표작가로 출품했다. 전시는 29일까지. (02)760-48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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